고무다라이(고무통) 버들치는 생각만큼 오래 버티고 있다. 하지만 이번엔 엄마의 잔소리가 문제가 되었다.
「안 갔다 버리나, 온 집안에 혼잡질은 다하고 다니재.」
「알았어, 주면 되잖아.」
엄마가 사용하는 고무다라이를 반납해야 했다. 온 집안을 뒤져, 겨우 찾은 빈통은 기존의 크기의 반도 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 계속되는 엄마의 요구에 새로 물을 받고, 모래와 돌을 옮기고, 도망가는 버들치와 한참을 씨름한 후에야 엄마에게 고무통을 돌려줄 수 있었다.
옮겨준 집이 작아져서 그런가, 위쪽에서 버들치가 입을 뻐끔거리는 걸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당장은 어쩔 수 없다.
아오리 사과가 한창 익어갈 때쯤이라 부모님은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요즘 온종일 과수원에서 지내신다.
점심까지 챙겨가시는 날이 많았다. 동생과 나는 일 도와준다는 핑계로 가서 점심만 먹고 오는 날도 종종 있었다. 반찬이 부실해도 밭에서 먹는 밥은 언제나 입맛을 돋웠기 때문이다.
이 맘 때쯤 또 하나의 즐거움이 있다. 바로 가재가 산란할 시기가 된 것이다. 해터까지 먼 길을 가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그 또한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해터는 마을에서도 한참,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하는 오지나 다름없는 곳이다. 할머니 한 분이 밤이 되면 호롱불을 켜고 혼자 지내신다고 들었다. 전기도 수도도 없는 곳, 맑은 물과 산속의 초가집 한 채만이 전부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금까지도 그대로였다.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 귀를 기울여 봐야 들리는 건 물소리와 보이는 건 산이 전부인 곳, 해터는 마을 사람만이 아는 아지트 같은 곳이기도 했다.
경운기도 차도 들어가지 못했기에 오롯이 두 발로 그 먼 길을 걸어가야 했다. 아부지가 꼬맹이 때 자라던 곳이라고 했다. 6.25 전쟁이 한창일 때, 이곳 해터에는 탄광이 있었다고 하셨다.
우리 아버지는 그렇게 그렇게 밀려나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아직 살고 계신다.
이곳을 떠나 본 적 없었던 아버지가 처음으로 외지를 나가 경험한 곳은 바로 군대였다. 가끔 군대 이야기를 해 주실 때 아버지의 눈은 언제나 반짝였고, 목소리 또한 평소와 다르게 흥분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아버지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자 추억의 시간이었고, 이야기를 듣는 나 또한 그 시간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해터는 나 또한 쉽게 올라오지 않는 곳이다. 이 맘 때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바로 산속 개울물에만 살고 있는 민물가재를 잡기 위해서다. 평소에도 잡을 수 있지만, 산란 시기에 맞춰 잡는다면 이제 막 부화 시기가 되어 부화 장면과 새끼 가재까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화 시기에 딱 맞추기란 쉽지 않다.
어쨌든 오늘도 장비를 갖춰 출발 준비를 한다.
동생과 소근이 금미, 옥희가 지영, 이렇게 한 손엔 빈 음료수병과 맨손만 있으면 오늘은 끝이다.
오늘은 두 발로 열심히 걷는 게 우선이다.
「너무 멀지 않나?」
「나는 갈꺼야, 천천히 걸어가면 되잖아.」
「아직 손 시릴 걸.」
오늘이 아니라도 산속 물은 언제나 차갑다. 다행히 깊은 물이 아닌 낮은 개울의 겨울 내 떨어진 나뭇잎과 작은 돌만 들추면 가재는 보일 것이다.
한참 망설이던 아이들을 한참 설득 후에 그렇게 우리는 출발했다. 마을을 벗어나 느티나무를 지나 해터 입구까지 도착했지만, 지금부터가 진짜다. 혼자는 걸어 다니기 무서울 정도로 외진 곳이라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걷고만 있다.
어른들이 말하는 ‘사람 사는 동네’라는 뜻은 그만한 의미가 있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다. 산속의 고요함은 어른에게는 평온한 침묵일 수 있지만, 아이에게는 소리가 사라진 공간은 낯설고 불안함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냉이풀을 꺾어 맨 위 흰꽃은 날려버린다. 하트 모양의 잎은 씨앗을 머금고 있어, 떨어지지 않을 만큼 꺾어 버리고 줄기를 귀 가까이 대고 흔드니 딸랑딸랑 소리가 들린다.
발은 앞으로만 나아가고, 할 일 없이 손이 계속해서 움직인다.
보이는 애기똥풀도 한 번 꺾어보지만 이름 그대로 애기 똥이 손에 묻은 것 같은 유액을 다른 풀에 비벼 없앤다. 노란 꽃은 이쁘기만 한 것이 몸에서는 똥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산에서 벌레에 물렸을 때 유액을 바르면 진통 효과가 있다고 들었다.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여기서부터 시작할까? 내려가보자.」
우리는 시작점을 정하고 산속 골짜기 개울가 아래로 천천히 발을 옮겼다.
다행히 신발을 벗지 않아도 되는 잔잔한 곳이었다.
큰 돌 위에 발을 올려두고 허리를 숙였다. 겨우내 떨어져 이끼가 낀 나뭇잎과 작은 돌들을 들쳐 가며 개울 위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숨을 죽인 채, 우리는 천천히 위쪽으로 올라갔다.
「천천히 소리 나지 않게 해래이.」
「한 두 번 하나, 니나 잘해라.」
「지금부터 말하기 없기.」
「찾았다.」
그렇게 한 마리를 시작으로 계속해서 눈에 들어온다.
「오. 야, 알배기다.」
「내 통, 내 통.」
꼬리에 검은 알들이 탱글탱글, 금방이라도 부화할 것만 같다.
깜짝 놀란 가재들은 뒤걸음질 치며 도망가기 바쁘다.
가재 꼬리에 머금고 있는 새까만 알들이 이제 새끼가 나올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처음 들어갈 때 흥분하던 가재도 이내 통 아래 부분에서 꿈쩍하지 않는다. 버들치 잡을 때와는 다른 즐거움이었다. 나는 10마리 정도 되었을 때,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이제 가자.」
「벌써, 벤또 있잖아.」
「아 맞다 먹어야 재.」
「저 위에 큰 바위 있다.」
맞다, 도시락이 있었지 싶다. 역시나 동네 개울에서 먹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맛있다. 경치가 그 이상이니 당연한 거였다.
그렇게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돌아와, 알배기 가재를 제외한 나머지는 버들치 통에 넣어 두었다. 역시나 뒷걸음질로 돌틈을 찾아 숨어 버린다. 그런데 뒤로 도망가며 돌이 있는 곳은 어떻게 잘도 찾아낸다 싶다.
이제 잘 보이는 세숫대야에 물을 넣어 알배기 가재를 넣어 두고 잘 관찰한다. 때만 잘 맞춘다면 부화 과정을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5월의 마지막, 기분 좋은 햇살과 함께 나는 마당에서 세숫대야만 한 시간째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니 거서 뭐 하노?」
「가재 잡아 왔어. 알배기야 알배기.」
「암만 기다려 봐라, 나오나.」
지나가던 오빠도, 언니들도 한 마디씩 하고 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야에 집중하고 있다.
잠깐 정말 잠깐 동안 변소에서 일을 보고 왔는데…
이게 웬일인가! 그 사이 대야의 작은 검은 물체들이 움직이고 있는 게 보인다. 알에서 깨어난 가재 새끼는 형태도 없이 2mm 정도, 눈에 겨우 들어올 정도다. 온몸의 전율이 스쳤다.
마당 한켠 세숫대야를 바라보며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온 집안사람들이 들었으면 해서였다.
「봐봐, 봐봐! 가재 새끼다!」
사실 나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눈으로 부화 장면을 목격한 건 아니지만, 이 정도 타이밍도 지금 생각하면 대단하다 싶다.
하지만 가족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또 하나의 추억이 머릿속에 스며들었다. 물론 나 혼자만..
그렇게 이번에도 가족 모두가 사용하는 세숫대야였기에 그대로 반납하고, 가재와 새끼는 엄마의 권유로 빨래터 도랑에 방생했다.
좋은 기억만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잘 살아.”
마음속으로 잘 자라길 바라며….
빨래터 도랑이니 가끔은 다시 볼 수도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 작은 생명이 태어났다는 흥분을 그대로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부지가 저녁에 군불을 때시고, 버들치 통에서 가재만 건져 올려 잘 달궈진 장작불에 내 가재를 그대로 넣고 계시는 게 아닌가….
「내 꺼야.」
빨갛게 익어 가는 가재를 보며, 아부지가 웃으신다.
「먹으라고 잡아 온 거 아냐.」
「뭐야, 내 껀데.」
울상이 된 건 아니지만, 어이가 없었다.
방생과 함께 감동적인 기분은 온데간데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아부지 옆에 붙어 앉아, 아궁이 속 석쇠에 나란히 얹혀 장작불에서 익어 가는 가재를 멍하니 바라봤다.
「자 먹어봐. 맛있대이.」
그때 아부지가 건넨 가재는 어느새 내 입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입가에 묻은 검은 재와 함께 오드득, 오드득 고소한 맛이 입안을 자극한다. 저녁 간식이 되어 버린 가재, 아부지와 그렇게 한참 앉아 식어 가는 재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