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 고무줄, 꼬맨 오재미 하나

by 수연

어제저녁에 경운기 한가득 사과를 따다가 놓은 터라, 우리 가족은 아침부터 젓가(사과 꼭지 따기)에 열중하고 있다.

젓가는 사과 포장 때 사과끼리 부딪쳐 흠집이 나지 않게 하기 위해 하는 작업이다. 어린 내가 생각해도 농사는 정말 손이 많이 간다.

수확만 하면 끝일 줄 알지만, 사과를 따고 옮기고 싣고 내리며, 꼭지를 따고 크기에 맞춰 포장한다. 또 박스에 넣어 쌓고 옮기고 내리기까지 정말 뭐 하나 쉽지 않은 작업이다. 떨어진 사과는 다시 주워 낱가 상자(나무 괴짝)에 담아 헐값에 내다 판다.

그래서일까? 육남매 중 농사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경험이야말로 최고의 무기인가 보다.


새벽부터 일어나 작업을 시작한 부모님은 포장 준비에 바빴다. 아침 식사도 모든 작업준비가 끝나고 나서야 하셨다.


마당 한가운데 파란색 포장지를 펴고, 아버지와 오빠가 따온 사과를 경운기에서 내려주면 우리는 자리를 잡고 사과 꼭지를 따기 시작했다. 가족 모두가 작업에 투입되었으며, 학교 시험 기간에도 예외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판장이 열리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 그만큼 시간이 다투는 일이었기에 모두 불만은 없었다. 사과농사는 우리 가족의 생계였으니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안 일어나나.」

「얼른 밥 먹고 나와.」


이른 아침부터 엄마의 잔소리는 쉬지 않고 계속된다.


「흠집 안 나게 해래이.」

「엄마, 언니가 사과 찝었어.」

「까불고 있다, 너무 높게 쌓지 말고.」


포장하는 날은 나까지 정신이 없다.


엄마는 손을 바쁘게 움직이며, 크기에 맞춰 박스에 담는다. 하루에 한두 번 정해진 시간에 맞춰 경매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공판장 작업시간에 맞추려면 시간이 없나 보다.


「아이고 이 보소, 크기도 안 맞는걸 거기다 넣네.」

「눈는 감고 있나, 니나 잘해라.」


그때 또 시작이다.

직장생활로 치면 동료나 다름없는 두 분은 오늘도 의견이 맞지 않는다. 남 같으면 뒷담화나 관두기라도 할 텐데, 부부 아닌가… 결국 오늘도 어쩔 수 없이 함께 일해야 한다.

하지만 두 분 중 어느 누구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린 나이임에도 두 분이 정말 부지런하게 생활하신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다.


오전 내내 사과 포장작업에 몰두했다. 점심때가 되어서야 아부지와 엄마는 경운기에 포장된 사과를 싣고 공판장으로 떠나셨다.

이제 내 시간이다. 아침상이 그대로 놓인 상태에서 밥만 새로 담아 동생과 나는 끼니를 대충 때웠다.

오빠, 언니도 그제야 자유시간을 누리고 있다.

밥을 먹자마자 동생과 나는 마을회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로 코앞이지만 말이다. 회관은 조용했다. 아무도 없으니, 동생과 나는 가까운 지영이네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지영아, 뭐해.」


내 친구이니 내가 불러본다.


「지영 옥희이네 갔는데.」


이번엔 옥희이네로 발길을 돌렸다. 옥희이네가 동네 마지막 집이었기 때문에 동생과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오냐. 옥희야 친구 왔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마을회관으로 내려와 고무줄놀이를 시작했다.

세 명은 되어야 고무줄놀이가 가능한 건 아니었다. 가끔 나와 동생만 있을 때, 우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회관 국기 계양대에 고무줄을 묶어 두고, 한 사람은 잡고 한 사람은 고무줄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집으로 쫓아 들어가, 엄마가 우리 허리춤에 넣어 주신 시커멓고 굵다란 고무줄 몇 줄을 가져다 이었다.

우리 세명은 그렇게 고무줄놀이를 시작했다.

놀다 보니 어느새 양 옆에서 모두 편을 나눠 한 줄, 두줄 그리고 세줄까지 고무줄놀이에 빠져들어 있었다.

고무줄놀이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갈 때마다 부르는 노래가 달라졌으며, 입은 노래를 부르고 그 노래에 맞춰, 발은 쉴세 없이 움직인다.


“월계, 화계, 수수, 목단, 금단, 초단, 일.”


“장난감 기차가 칙칙 떠나간다

과자와 사탕을 싣고서~

엄마방에 있는 우리 아기한테 갖다 주러 갑니다.

장난감 기차가 칙칙 떠나간다.

사과와 포도를 싣고서~

공부 많이 하는 우리 언니한테 갖다 주러 갑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나라~~

방망이로 두드리면 무엇이 될까

금 나와라 와라 뚝딱.

은 나와라 와라 뚝딱.”


“딱다구리구리 마요네즈

마요네즈 케찹은 맛있어

인도인도인도사이다

사이다사이다 오땡큐~”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철 따라 고운 옷 갈아입는 산

이름도 아름다워 금강이라네

금강이라니~~”


“삼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면~

유관순 누나가 생각납니다.

옥 속에 갇혀서도 만세 부르며

푸른 하늘 그리다 숨이 졌대요 ~~”


당연히 노래 가사의 의미는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그저 놀면 그만이었으니까..

내용이야 알 수 없었지만, 반복되는 리듬으로 ‘입에 붙는다’는 말처럼 자연스럽게 우리의 몸과 입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니 밟았데이.」


숨이 턱끝에 차오를 때쯤 죽어버렸다.


「야, 우리도 하께」


남자아이들이 구슬치기 하다 말고, 옆에서 방해를 한다.


「우리 쫌 쉬었다 하자. 힘들어 죽겠다.」


고무줄 하던 여자 아이들 모두 회관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편 나눠.」


지금부터는 남녀 모두 편을 나눠, 한 줄 고무줄로 무조건 고무줄을 넘으면 되는 게임이다.

실수를 하지 않고 동작을 완료하면, 고무줄 높이는 점점 높아진다.

발목부터, 무릎, 가랑이, 허리, 겨드랑이, 목, 머리, 위, 만세, 까치발까지 조금씩 올리며 놀이를 계속한다.

줄의 높이가 겨드랑이에 이르면서부터는 뛰어넘기가 어려워지므로, 물구나무서기로 줄을 넘기도 한다.

재주를 부려서라도 넘으면 그만이다.

가장 높은 단계의 동작을 해내는 편이 이긴다.


「야, 니 빤스 보인다.」

「어째든 나 넘었다.」


다리가 찢어져라 넘어 보지만, 역부족이다.


「뭐하노, 염소 몰고 들어와.」


골목으로 들어가시던 엄마가 부르신다. 벌써 저녁 시간인가 보다.

우리는 놀이를 끝내고 약속이나 한 듯, 내일을 기약했다.

동생과 나는 고추밭의 매어둔 염소를 풀어 바로 옆 동물 우리에 넣고, 저녁 먹을 준비를 한다.


낮에 공판장에 가져갔던 사과 금(값)이 좋지 않았나 보다. 아부지와 엄마는 내일도 사과를 따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계셨다.


오늘도 밭일과 집안일에 엄마 손과 마음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부지는 땔감을 패던 마당 한켠에 나무 궤짝을 쌓으셨다.

잘 만들어진 사과 상자를 살 수도 있지만 금액이 비싸, 대부분 직접 만드셨다.

아부지는 못과 망치, 그리고 구매한 나무판자를 준비하고 마지막으로 못이 휘지 않도록 쇠판자를 아래 깔아 두신다. 틈틈이 만들어 놓아야 필요할 때 바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저녁상이 차려지고 한참 후에야 아부지가 들어오셨다.


「아 여보소, 안들어오니껴. 밥 다 식니더.」

「아부지, 뭐 해, 밥 잡숴요.」

「당신은 그 버릇 좀 고치소. 꼭 밥상 들어오면 없어지지.」


누가 뭐라 하든 아부지는 아랑곳하지 않으신다.

덕분에 우리는 다 식은 저녁을 그제야 먹을 수 있었다.

신기한 건, 농사일을 하지 않는 지금도 아부지는 밥상이 차려질 즈음이면 꼭 화장실에 들어가신다는 것이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도 더 이상 기다려 드리진 않는다.


재미있는 건, 아부지가 밥상에 늦게 앉는 게 문제라면 우리 엄마는 가장 늦게까지 식사를 하신다는 것이다.


「참말로 니 엄마 먹는 거 봐라, 언제까지 먹을래.」


아부지가 한마디 하시지만, 엄마 또한 아랑곳하지 않으신다.

세월이 흘렀지만 두 분의 식사 습관은 여전하다.

아부지는 엄마에게 핀잔을 듣고, 엄마는 아부지에게 놀림을 받으면서도 말이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두 분 모두 집에 계셨다.

마루에서 점심을 먹고 엄마는 시내 일 보러 나가시고, 아부지는 망가진 가고(사과 담는 바구니)를 수선하려 하신다. 비료포대로 만드는 가고는 농사에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다.

떨어진 낱과 사과를 주워 담을 때도 사용하고, 수확한 사과를 담아 경운기까지 옮기기도 하고, 간식 가방이 되기도 했다.

아부지는 밭에서 가져온 해진 가고를 모두 모아, 굵은 실에 바늘을 꿰시고 구멍 난 곳을 꼬매기 시작하신다.

가고는 빈 비료포대를 반으로 접어 철사를 둥글게 구부려 입구를 만들어주고, 바느질로 고정한다. 아래 부분은 다시 접어 바느질해 바닥을 고정해 주고, 마지막으로 손잡이를 만들어주면 된다.

말이 좋아 바느질이지, 큰 힘이 들어가는 작업이라 엄마도 손대지 않으셨다. 다만, 엄마의 잔소리가 몇 번 계속되어야만 그제야 작업을 하시는 게 문제였지만, 한번 손대시면 모든 마무리까지 정말 꼼꼼하게 하시는 게 울아부지시다.


바늘과 실을 보니 오재미가 생각난다. 나는 얼른 방으로 들어가 구멍 난 양말과 묵은 콩을 꺼내 아부지 옆에 자리를 잡았다.


「머할라고.」

「나 오재미 만들라고.」


아부지와 나는 마루에 앉아 한참을 바느질에 집중했다.

엄마였다면 바로 ‘홈잡질’(쓸데없는 짓) 한다고 뭐라 하셨겠지만, 아버지는 큰일이 아니라면 뭐든 받아주셨다.

하지만, 아직 고사리 손이 아닌가 잘 되지 않는다. 콩이 여기저기 삐져나와 마루리가 쉽지 않다.


「줘봐, 내가 해줄께.」


그렇게 오재미 마무리는 아부지 몫이었다.


오재미는 여러 사람이 모여야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놀이다. 배신데이 갈 때 가져가야겠다.

피구와 비슷한 오재미는, 양쪽에서 상대편이 오재미를 던지면 단지 피하면 끝이다.

몸에 맞으면 선 밖으로 나가야 한다.

마지막 한 사람이 남았을 때는, 날아오는 오재미를 잡으면 한 사람씩 살아나는 규칙을 정하곤 했다.


한 사람이 남았다는 것은, 그만큼 부담이 크기 때문에 잡기 쉽지 않다.

오늘은 콩을 넣었으니 맞아도 많이 아프진 않겠지만,

가끔 모래를 섞어 만들 때는, 그만큼 고통이 커서 더 열심히 피하기 일쑤였다.


엄마가 오시기 전에 아부지는 마루를 정리하고 나는 자른 양말과 콩을 정리했다.


엄마가 마루에 쌓인 잘 만들어진 가고를 보시고 아부지를 칭찬하신다.


「아이고, 웬일이껴. 마이도 만들어놨네.」


정말 드문 일이 아닐 수 없기에, 나까지 뿌듯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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