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랑에서 쫓겨난 버들치

by 수연

며칠째 비가 계속해서 내리고 있다.

이런 날도 학교는 걸어가야 한다. 발에 맞지도 않은 장화를 꾸역꾸역 밀어 넣어 신고, 동생과 작은 우산에 의지해 학교로 발길을 돌렸다.

가는 길에 몇몇 아이들과 함께한다.


「야 저거 봐, 우와 물 넘치겠는데.」

「장난 아니다.」

「수업이나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바람 엄청 분다.」


걸어가는 길 곳곳에 바람에 꺾인 나뭇가지들이 떨어져 있었고, 흙바닥은 어느새 도랑인 듯 빗물이 우리와 나란히 흐르며 함께 걷고 있는 듯했다.

시골은 대부분 흙길이라 일 년에 한두 번 뚝이 무너지고 개울이 넘치기 일쑤였으며, 몇 안 되는 다리가 끊기기도 했다.

그럴 때면 온 동네가 떠들썩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신경은 온통 비바람에 집중되어 있었다.

아직 수확을 앞둔 사과가 떨어질세라, 이제 막 자라는 벼가 쓰러질세라, 밭과 논을 오가며 사과나무 아래에는 짚을 깔고, 쓰러진 벼들은 서로 묶어 의지할 수 있게, 없는 일도 만들어주는 날씨 바로 장마철이었다.

동네 어른들은 얇은 우비에 의지해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길가의 풀들과 나무들은 바람에 휘날리며 ‘휙휙~’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원치도 않은 춤을 추고 있었으며, 잔잔한 비가 오면 보이던 흙길의 지렁이도 바람에 날아간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삐쩍 마른 나는 날아갈 세라 휘날리는 머리카락 때문에 앞은 보이지 않고, 바람과 맞서지지 않으려 우산 하나에 의지해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그렇게 비바람을 뚫고 학교에 도착했다.


학교안도 어수선 했다. 비가 많이 온 터라 확정되지 않은 단축수업 결정에 아이들도 선생님도 모두들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농사일에 지장이 있을까? 걱정하시는 어른들에 비해 우리는 바로 코앞에 수업이 중단 되어 집에 가길 바라는 마음이 우선이었다.


그렇게 1교시가 시작되었지만, 수업은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교실의 모든 아이들도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주목해래이.」


시선은 선생님을 향해 앞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귀는 스피커와 창밖의 빗소리에 쏠려 있었다. 비는 여전히 거세게 내리고 있었고, 창문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선생님의 설명도, 책 속의 내용도, 그 순간에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저 하루빨리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었다.


그때,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또다시 수업의 마지막 종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려 퍼졌다. 아이들의 함성 소리와 함께 선생님은 교무실로 향했다.

모두들 흥분 그 자체였으며, 집으로 돌아갈 걱정 따윈 하지 않았다. 그저 이 순간을 즐기면 그만이었다.


수업 시작과 함께 이어지는 종례시간, 전교생이 모두 학교를 빠져나왔다.

갈 때도 우산 하나에 의지해 우리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아뿔사, 이거였구나. 건널 다리가 그 사이이 없어졌다. 이제야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졸졸졸 소리를 내며 평온하던 개울이, 무서운 속도로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소리를 내며, 형태를 알 수 없이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맑은 물은 새커 먼 진흙물로 변해 쓰러진 나무와 농사에 쓰이는 집기들과 함께 건너던 돌다리도 같이 집어삼키고 있었다.


몇몇 부모님들도 걱정이 되어 나와 계셨다. 개울의 작은 다리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고, 흙길도 비에 떠내려가 있었다.

길가 바로 옆 과수원의 뚝방이 무너져 길을 덮친 곳도 있다. 즉, 평소에 다니던 길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한데 모여 있었다. 그리고 어른들을 따라, 평소 다니지 않던 먼 길로 우회해 겨우겨우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도 한동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리고 오후가 되어서야 비는 비로소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아부지와 엄마는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또 밭일을 하셔야 했다. 우비 하나에 의지해 밭마다 다니시며, 경운기에 사과 상자를 가득 채운 낙과(落果)를 주워 오셨다. 힘들게 농사지은 보람도 없이 안타까운 표정이 역력하셨다. 하지만 이 또한 농사일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두 분 다 잘 알고 계시리라.

예측할 수 없는 자연 앞에서도 두 분은 말없이 감당해 내는 법을 이미 알고 계셨을 것이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만을 바랐을 뿐이었다.


늦은 점심 식사와 함께 그렇게 비 때문에 우리의 일과는 일찍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노는 데 비는 우리에겐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동생과 나는 잦아진 비에 우산 하나씩을 들고 마을회관으로 갔다.


비바람도 마음도 조금 진정되었을 때, 우리는 다시 밖으로 발길을 돌렸다. 회관 마당에는 작은 웅덩이마다 물이 고여 있었고, 우리 집 텃밭 고랑으로도 물이 흐르고 있었다.


동생과 나는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우산 두 개를 겹쳐 작은 지붕을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흘러가는 빗길에 양손으로 흙을 쌓으며 우리만의 길을 만들어 낸다. 마지막 길을 따라 흐르던 빗물이 고일 수 있게 다시 웅덩이를 만들어 준다.


바닥에 있는 우산 집으로 돌아와 흐르는 빗길을 멍하니 바라본다. 쪼그리고 앉아 다리는 저려 왔지만, 우산 안은 어둑하니 아늑했고 떨어지는 빗소리에는 낭만이 묻어났다.


바닥에 앉아 바라보는 풍경의 운치 또한 남달랐다. 그렇게 만든 빗물 길은 작은 강처럼 흘러가며 우리만의 작은 세상이 되어 주었다. 비는 이슬비로 바뀌어 계속 내렸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놀이를 찾아내는 데 익숙해졌다. 결국 마당에 흐르던 빗물은 우리의 손끝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봐봐라, 잘 흘러간다.」

「금방 또 무너질걸.」


그러거나 말거나, 나도 동생도 흐뭇함이 묻어 있었다. 회관 마당은 잔잔히 흘러갔지만, 바로 위 도랑의 빨래터 개울물은 넘쳐 있었다.

마을 위 산에서부터 흘러내려온 물은 빨래터와 오가는 길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고, 마을 흙길 또한 엉망이었다.


손에 뭍은 흙을 씻고자 올라온 터였는데,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우와! 이거봐, 버들치다.」

「어디 어디.」

「야 고기가 땅을 기어 다닌다, 주서 주서..」

「깡통 주서오께.」


이게 웬일인가? 마을 빨래터인 도랑에 평소 보이지 않았던 종류의 미꾸라지며 버들치며 가재가 산에서부터 흘러내려온 게 아닌가.

장마로 인해 빨래터도 넘쳤으니, 산에서부터 밀려 떠내려온 고기들이 그대로 길가에 누군가 버린 듯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냥 주우면 그만이었다. 평소 사발무지가 아니면 잡기 어려운 고기들이 제 발로 기어 온 셈이었다.

나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물속에 있어야 하는 고기가 내 발밑에 있는 것보다, 어린 내가 처음 겪어보는 이런 상황이 더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버들치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인 듯, 계속해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우와! 이런 일도 다 있네. 야 웃긴다.」

「집에 가져갈 거야?」

「아니 그냥 물에 던져 주자.」


오늘이 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장마가 끝날 즈음이면 마을에서는 수로를 정비하며 물길을 터주는데, 그때 빨래터의 물까지 전부 빠진다.

마을의 도랑 물이 전부 빠지면 직접 도랑 안으로 들어가 걸어 다니면서도, 물이 없어 헤엄치지 못하는 물고기들을 마냥 잡아채면 그만이다. 사발무지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랄까.

이미지 삽입(도랑의 넘친 비 그리고 넘친 물고기,,)


잦아든 가랑비에 흠뻑 젖어 생쥐 꼴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이 순간의 호기심과 신기함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걸까. 가끔 오늘과 같은 장면이 꿈속에서도 나타나곤 했다.

넘쳐흐른 도랑, 흙길로 올라와 발버둥 치는 버들치들….


아무튼 어렸을 적 시골에서의 장마는 매년 그렇게 정신없이 찾아와 마을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나가 버리곤 했다.

그 뒤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장마는 늘 나 몰라라 하듯 사라져 버리곤 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엄마가 배추 전을 하고 계셨다. 엄마는 돈을 주고 과자를 사주시는 것보다, 언제나 있는 재료로 간식을 만들어 주는 일이 많았다.

정신없이 논과 밭에 상황을 살피시고 또다시 집안일을 보시고 계셨다. 그렇게 우리 엄마는 언제나 바쁘게 움직이셨다.


엄마가 배추 전을 뒤집는 사이, 나는 물에 담가둔 감자를 보고 옆에 앉아 강판에 감자를 열심히 갈아본다. 배추 전보다는 감자전이 내 취향이었으니, 손을 보태 본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배추전이 우선이 됐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담백한 맛이 당길 때문 특별한 날이 아님에도 식탁의 오를 때가 많이 있다.


톱니처럼 올라온 뾰족한 강판에 감자를 갈다 보면 언제나 손도 함께 가는 건 당연한 일상이다.


「손가락 피난다.」

「어지가이 갈아.」


그렇게 엄마가 구운 첫 번째 배추 전은 밖에서 궤짝(사과 상자)을 짜고 있는 아부지에게 먼저 가져다준다.

어린 나이에는 알 수 없었지만, 우리 집의 눌이 있다면, 먹을 것은 아부지 다음 오빠 그리고 여자들이었다.

이것만 봐도 우리 집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시키니 그래야만 하나 보다 싶었지만 말이다.


가마솥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뜰 때도 잘 섞인 밥은 무조건 아부지 다음 오빠 순이었다. 그다음은 아무나 상관없었다. 그보다 더 이해 안 되었던 건 아부지나 오빠가 집에 없을 때는 엄마는 무조건 첫 번째 밥은 아랫묵에 잘 묻어 두셨다. 엄마 말씀으로는 밖에서도 굶지 말라는 뜻으로 그렇게 한다지만, 이해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남아선호 사상과 맞닿아, 남성을 우선시하는 문화가 생활 속 깊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모든 건 우리 엄마의 실천이었다.

다음 식사 때는 어김없이 엄마는 아랫묵에 묻어둔 찬밥을 스스로 드시곤 하셨다.

그래서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으리라. 우리 엄마는 여자라는 이유로 그렇게 살아오셨다.


잔반 처리는 물론, 유통기한도 그냥 지나가는 날짜에 불과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엄마는 늘 스스로를 낮추어 묵묵히 집안일과 가족 돌봄에 바치셨다. 하지만 그런 헌신 속에서도, 잔소리는 늘 따라다녔다. 엄마의 몸이 힘든 만큼, 잔소리도 함께 따라다녔던 것 같다.

그렇게 오늘도 엄마는 바쁘게 움직이셨다.


아부지는 마루 한켠에 나무 궤짝을 만드시고 계신다.

장마가 끝난 터라 낱과 주울 때 많이 필요하실 터였다.

아부지는 이미 쌓여있는 사과상자 한켠에서 새로운 판자에 못과 망치질을 하고 계셨다.


나는 옆에 앉아 양속을 움직이는 아부지를 대신해 따뜻한 배추 전을 아부지 입으로 가져가 넣어 드렸다.

아부지가 못을 다 박을 때쯤, 나는 한 손으로는 다음 나무판자 하나 아부지에게 가져다주고, 다른 손은 젓가락을 들고 아부지 입이 멈추면 또다시 부침개를 넣어드렸다. 그렇게 오랜만에 아부지와 시간을 보냈다.


「나도 해볼 거야.」


그런 우리를 아부지는 언제나 성가셔하지 않으셨다. 나는 자리를 잡고 조그마한 망치 하나를 건네받았다.


「해볼끼야? 그래 그럼 해봐. 한 손으로 못 잡고, 살살 때려봐.」


아부지가 큰 못으로 상자 틀을 만들어 주시면, 나는 옆에서 작은 못으로 상자를 고정시켰다.


「재밌다.」

「재밌어? 그럼 계속해봐.」


힘 조절을 못할 때면 못은 고개를 숙이고 휘어졌다. 그렇게 실수하면 아버지가 못을 빼고 새로 박아 주셨다. 물론 내 손을 망치로 치는 일도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못 박는 일도 하나의 놀이처럼 즐겼을 때가 있었다.


조금 더 시간이 흘러 톱질하는 방법도 나는 아버지한테 배웠다.

우선 힘을 뺀 상태에서 톱을 나무 위에 올려 두고 살살 밀어준 다음, 당길 때는 힘 있게 당겨 주는 것이 포인트다.

즉, 무턱대고 힘만 주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 사이의 일도 마찬가지로, 무작정 힘을 앞세운다고 해서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망치도 톱도 모두 힘의 강약이 중요하다는 것, 지금 또래 친구들도 아는지 모르겠다.

괜스레 뿌듯해진다.


어느새 무섭게 내리던 비는 그치고, 오늘은 어제보다 어둠도 빨리 찾아왔다.

마루에 불을 켜고, 아부지는 계속해서 궤짝을 만드시고, 엄마는 또다시 저녁 준비로 분주하셨다.

두 분 다 손은 바쁘게 움직이셨지만, 사과가 많이 떨어졌을까 노심초사하시는 게 느껴졌다.


내일 학교 가는 길이 얼마나 어설플지는 모르겠지만, 한동안 어른들은 길 복구에 정신이 없을 것은 불 보듯 뻔했다.

나야 학교는 안 가면 좋겠지만, 이제 수확철이니 경운기가 오가는 길은 빠른 시일 내에 복구되어야 했다.

아무튼, 오늘 꿈에 낮에 봤던 개울에서 넘쳐나던 버들치가 보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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