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이 부른 낭패, 매미 성충

by 수연

장마는 끝났지만 아직 길은 어설펐다. 장마가 휩쓸고 간 자리는 자연이 복구하는 것도 있지만, 사람 손을 거쳐야만 제 모양을 찾는 곳도 많았다.

그건 모두 어른들의 몫이었다.


오늘은 마음먹고 아침 일찍 나선 터였다.

비가 그치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매미가 탈피하는 시기였고, 그 환경을 생각하면 지금이 딱이었다.


항상 나무 위에서 탈피준비 중인 성충을 찜해 두고 다음 날 와보면, 어느새 껍질만 남긴 채 나를 농락하듯 사라져 있었다.

일찍 나온 터라, 배신데이 도착과 동시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나무에 몇 개 안 남은 까칠 복숭아였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나무에 몇 개 안 되는 복숭아 중에서도 그나마 먹음직스럽고 상처 없는 것을 찜하고 있었다.

털이 있어 만지기만 해도 두드러기가 나는 친구도 있었지만, 나는 정말 타고난 시골 출신인가 보다. 옷으로 대충 비벼 수확기가 지나 말랑말랑한 복숭아를 털만 없앤 후 입에 넣어 버린다. 우리 밭은 아니지만, 수확이 끝나고 장마도 지나 이제 익을 대로 익어 떨어질 때만 기다리는 복숭아라 상관없었다.


그렇게 배신데이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과수원은 가끔 아이들의 간식 창고가 되었다. 물론 들키지 않고,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그땐 그럴 수 있었다.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매미는 대개 비가 그친 직후나 습도가 높은 여름밤이나 이른 아침에 탈피를 많이 한다고 한다.

밤은 아니지만, 비 온 뒤라 습도가 높아 껍질을 벗기 좋은 아침, 바로 오늘 같이 이슬이 가시기 전이 적기다 싶다. 동생과 친구 몇몇이 모여 과수원을 헤매고 있다.


나무에 매달려 맴맴 거리는 매미를 손으로 잡는 맛도 있었지만, 탈피 전 성충을 잡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태어나는 생명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듯한 기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오늘이 처음이다. 처음이니 더 기대되고 설레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렇게 재미를 붙인다 쳐도 몇 칠이면 끝나는 일이었다. 딱 일 년에 한 번, 며칠 세 모든 일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찾았나.」

「아니 니는.」

「빈 껍데기만 있는데.」


친구들에게도 소리쳐 보지만 찾았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만큼 순간을 잡기란 쉽지 않았다.

하기야 몇 년을 땅속에서 묻혀 있다가 이제 막 날개를 펴는 순간인데, 우리에게 잡히고 싶지 않은 마음도 이해된다.


땅을 기어 다니다 때가 되면 나무 위나 나무뿌리, 풀줄기 주로 몸을 단단히 고정 할 수 있는 곳을 찾기 때문에 우리는 나무 아래 부분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땅 아래에서는 탈피하는 경우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다 보니 어느새 신발은 진흙이 가득 묻어 걷기도 힘들어졌다. 시커먼 흙덩이가 그대로 무게가 되어 달라붙었다.

비가 그치고 아침이라 질퍽거리는 흙이 그대로 신발에 쌓여 가는 중이다.


「이거봐, 신발 다 배랬다.」

「안 보인다. 그냥 집에 가자.」


발밑의 떨어진 나뭇가지 하나를 짚어 신발 밑창의 두껍게 쌓인 검정색 흙덩이를 제거해 본다.

꼬챙이로 열심히 신발을 정리하고 있던 그때, 고개를 숙인 그 높이의 사과나무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보이는 게 아닌가.


‘찾았다!’ 마음속으로 환호를 질렀다.


「야 나 찾았다.」


이미지 삽입(배신데이 나무, 매미 성충,,)


그렇게 외치고, 얼른 준비해 온 흙과 나뭇가지 몇 개를 찔러 넣은 깡통에 조심스럽게 성충을 넣어 주었다.

친구들 몇몇도 찾은 듯하지만, 내 성충은 이제 막 나올 준비가 끝난 것 같은 느낌에, 나는 혼자 얼른 집으로 돌아왔다.


「나 먼저 간다. 좀 있다 봐.」


그리고 식구들이 보이지 않는 장소인 변소 뒤 화단에 깡통을 두고, 그렇게 한참을 지켜보고 있었다.

정확히 서너 시간은 흐른 것 같다. 물론 그 자리에 그대로 기다릴 인내심 따위는 아직 없었다.

집을 오가며 몇 번 요리조리 만져도 본다. 그게 화근이었을까.


잠깐 사이 일이 벌어졌다. 겨우 탈피한 매미는 날개가 쪼그라들어 있었다. 날지 못할 정도로, 한쪽 날개가 구겨져 있었다.

괜스레 미안해진다. 살아는 있다지만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한 달 정도 살다 죽을 운명을 내가 망친 것 같아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족히 5, 6년은 땅속에서 오늘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그렇게 아쉬움과 안타까움에 나는 매미를 고이 들어, 화단의 제일 큰 꽃나무에 조심스럽게 놓아준다.

그렇게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매미 성충에 호기심은, 껍질만 보면 그때 생각이나 다시 시도하진 않았다.


매미는 울음소리만 들어도 어떤 종류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잡았다.

가장 흔한 말매미부터 참매미, 유지매미 등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정말 다양한 매미들을 배신데이 느티나무에서 잡았다 놓아주기를 반복했다.


매미뿐 아니라 잠자리부터 반딧불이까지, 숨을 죽이고 잡았다 풀어주기를 반복한다.

말 그대로, 순간에 잡는 즐거움 때문이었다.

숨을 죽이고 발끝으로 살금살금 다가가 빠른 속도로 잡아채는 그 순간을 즐기는 거였다. 흔히 손맛이라 하지 않는가.


잠자리채도 있었지만 손으로 감각을 느끼는 즐거움이 더했다.

긴 막대기에 굵은 철사를 돌돌 말아 고정시키고, 마지막에 빨간색 양파망을 철사에 꿰어 다시 한번 막대기에 철사를 고정시켜 주면 잠자리채 완성이다.

매년 만들고 버리기를 반복해도 된다. 사방에 널린 게 막대기고, 집 어딘가에 버려진 철사며 양파망은 쉽사리 구할 수 있는 물건들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매미 성충은 그렇게 몇 년을 땅속에서 살다 오늘 이른 아침부터 우리에게 잡혔지만, 반대로 반딧불 유충은 물속에서 다슬기 등을 먹고살다가 늦은 저녁에 우리에게 잡혔다.


혼자는 절대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을 만큼 달이 없는 깜깜한 밤, 개울 근처 풀이 수북한 곳을 찾다 보면 반짝이는 빛이 보이곤 했다.

하지만 찾아다닐 필요는 없었다. 몇 번 잡다 보면 항상 그 장소, 그 위치에 나타난다는 걸 몇 해 잡다 보니 알게 되었다.


깨끗이 씻은 페트병에 물기를 제거하고 반딧불이를 넣어 집까지 다다를 때면, 어김없이 몇 마리는 죽어 있었다.

반딧불이는 보기에도 약해 보이지만, 정말 예민한 곤충이라 오래 두지 않고 바로 날려 보낸다.

손에 잠깐 쥐어 꼬리 쪽 불빛만 한 번 더 보고, 그대로 손을 놓으면, 날아가는 내내 반짝이는 빛 때문에 눈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반딧불이는 지금 눈 씻고 찾아봐도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매미 울음소리는 들려도, 고향에 내려가 여기저기 돌아다녀 봐도 반딧불이는 보이지 않았다.

민감하다, 예민하다 표현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깨끗한 물도, 풀숲도 사라져 버린 것일까?


매미 탈피의 실패로 아쉬움만 남는 오전 시간을 보내고 엄마가 있는 구메로 향했다. 물론 동생과 함께…

구메는 다른 밭보다 멀기도 하고 제일 큰 밭이었다. 마을을 벗어나면 온통 사과밭이었다.

여기저기 마을 어른들은 나무에 올라 사과를 따고 옮기며 바쁜 한철을 보내신다.

사과나무의 나뭇잎이 무성해 과수원의 사람은 보이지 않아도, 음악 소리로 밭에 누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과수원마다 라디오나, 뭐라 알아들을 수 없는 가사의 뽕짝을 틀어 놓은 터라 누군가 있음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여름엔 급할 게 없다. 지나가는 길에 따먹는 열매도 맛나고, 우리 사과밭에 보이지 않는 과일은 냅다 슬쩍 하나 정도 서리하는 맛도 이때는 허용되었다.


「야 빨리 와, 들킨다.」

「누가 오나.」

「몰라 빨리 와.」


그렇게 복숭아 베어 물고 또다시 걷기 시작한다.


한철 잠깐 피는 참나리꽃 꽃술을 따다가 손톱에 마구 비벼 물을 들여본다. 손 한 번 씻으면 없어지겠지만, 순간을 즐기는 즐거움도 있으니 아쉽지 않았다.


마치 달걀 프라이를 닮은 계란꽃(개망초)은 어렵게 찾을 필요가 없었다. 여기를 가도 저기를 둘러봐도, 여름 들녘은 계란꽃이 점령한 듯, 언제나 바람을 따라 끝없이 퍼져 나갔다. 여름부터 가을이 시작될 무렵까지 늘 우리 곁에서 피고 지고를 반복했다.


나는 눈에 보이는 아카시아 나뭇잎을 꺾어 줄기만 남긴 채 잎은 모두 제거했다.

그리고 앞머리를 나눠 아카시아 줄기로 돌돌 말아준다.

밭에 도착할 때쯤 풀어주면 파마한 것처럼 앞머리만 꼬불꼬불거렸다. 물론 금세 풀어지긴 했지만..


내가 꼬맹이 때 언니들은 눈도 머리도 노란 나를 재미 삼아 온 머리에 아카시아 줄기로 파마를 시켰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생각은 나지 않지만, 언니들은 그때와 지금의 내 얼굴을 비교하며 놀려대기도 했었다.


「니도 할래.」

「안 해.」


동생은 내가 앞머리 감는 동안 옆에서 토끼풀을 내려다보며, 이제 막 번져가는 세 잎 클로버 중에서 돌연변이인 네 잎 클로버를 찾고 있었다. 뚫어져라 눈동자만 움직이면서 행운을 찾고 있다.


그렇게 경운기 한 대 지나갈 정도로 좁고, 돌들이 팍팍 박힌 흙길을 걷고, 가파른 언덕을 지나 다시 평지를 걷다 보면, 어느새 부모님이 계시는 일터인 목적지 구메에 다다를 수 있었다.


매번 그렇듯 “엄마”를 크게 불러본다. 우리의 도착을 알림과 동시에 부모님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가고 갖고 와.」


* 가고 : 사과바구니로 비료포대 밑을 바느질한 후 반을 뒤집고 접고 철사로 둥근 모양을 잡아 손잡이를 만듦


「다 들고 갈까?」


밭 입구에서 우리는 손에 잡히는 대로 빈 가고(바구니)를 양손에 몇 개씩 가지고, 계속 말을 걸며 고개를 숙인 채 눈은 엄마의 다리를 찾고 있었다.


「사과 안 떨어지게 조심히 온내이.」

「여기, 가고.」


비가 많이 온 터라, 여기저기 떨어진 사과를 줍기 위해 두 분 다 허리를 굽혀 가고에 담기 바쁘시다.


아부지는 가고를 들고 경운기로 가져가 사과상자에 낱과를 쏟아부으신다.


「살살 담으소, 멍 다 드네.」

「어차피 다 똑같은데 뭐 어떻노.」

「아, 이보소, 낱과도 금액이 틀리니더.」


그러거나 말거나 울 아부지는 바쁘게 그리고 빠르게만 담고 계셨다.


「밥은 먹었나?」

「응, 먹고 치우고 왔어.」


동생과 나도 고사리 손을 보태 떨어진 사과를 가고에 담고, 가득 담기면 경운기까지 가져가 상자에 고이 쏟아붓기를 반복했다.


「댕기다가 멍 안 들고 괜찮다 싶으면 가져와.」


나무에서 막 딴 사과는 한 알 한 알을 상자에 고이 담아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낱과는 쏟아부으니 금세 경운기 한가득 채워져 일이 수월히 끝났다.


그러고도 부모님은 다른 일을 찾아 한참을 바쁘게 움직이신다.


동생과 나는 밭 아래 자두를 따 먹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비를 맞은 자두는 생각만큼 달진 않았지만 요긴한 간식거리가 되어 주었다. 아직 한참 익어 갈 때라, 우리는 손이 닿을 만한 높이에 겨우 익은 자두 몇 개만 골라 손에 쥐어 보았다.


「엄마, 자두 먹을래?」

「먹을 만하나?」


아부지, 엄마 입으로 자두를 가져다 넣어 드린다. 그제야 나무 밑에 앉아 잠깐이나마 휴식을 취하시며 입으로 들어온 자두를 한 입 베어 물으신다.


그러고도 계속해서 두 분은 밭일에 대한 이야기만 주고받으신다.


그러고 어김 없이 아버지는 담배 한 대를 태우신다. 지금이야 누가 옆에서 담배를 피우면 바로 도망가 버리겠지만, 그 시절 아부지가 피시는 담배는 냄새도 연기도 모두 그 자체가 울 아부지 냄새로 여겨져 거리낌이 없었다.


아부지 옆에 딱 붙어 앉아 자두를 한 입 베어 물어본다. 아부지는 땅에 떨어진 아오리 하나를 주워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깎아 나에게 건넨다.


「아나, 하나 먹어봐. 맛있데이.」

「안 먹어.」

「니는 과수원 집 딸이 사과 안 먹나.」

「응, 난 안 먹어.」

「이 지지바 웃기네.」


아부지가 허허 웃으신다. 지금까지도 그리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 나를 주위에선 더 적극적으로 권하는 편이었다. 몇 번을 더 싫다고 해야 권하지 않을 건지 알 수 없다. 자두도 따는 재미지, 한 입 베어 물고 바로 아부지 입으로 가져간 거였다.


그렇게 우리는 축축한 사과나무 아래서 한참을 얘기하다 집으로 갈 준비를 했다. 물론 아부지는 한참을 더 일에 집중하셨지만, 나와 동생은 이미 사과 상자 한가득 실린 경운기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쌓아 놓은 상자 맨 위에 엉덩이만 겨우 걸터앉아 아부지가 오기만을 기다려본다.


엄마도 밭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고들빼기와 씀바귀를 가고에 담고, 집으로 가실 준비를 끝내신다.

그때는 써서 못 먹었던 풀들이, 지금은 약으로 먹으려고 해도 귀한 풀이되어 버렸다.


「아나, 이거 깔고 앉아.」


엄마가 빈 가고를 눌러줘 우리는 엉덩에 가고를 깔고 앉았다. 한결 편해졌다.


「가시더.」

「간다.」


“가긴 가겠지, 오늘 안에..” 엄마처럼 화가 나는 건 아니지만,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시작할 시간이라 조바심이 들긴 한다. 하지만 어쩌랴, 탈탈이(경운기)는 아부지 외 아무도 몰 수 없으니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경운기는 탈탈탈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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