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과 입맛 사이

by 수연

이제 곧 크리스마스다. 교회에서 성탄절 준비가 한창이었다.

동생과 나는 일요일마다 예배에 참석하는데, 엄마는 영 못 마땅해하신다.


부모님은 일 년에 몇 번, 정확한 날은 알 수 없지만 때가 되면 산에 올라가 기도를 드리신다.

산에 올라가시는 날짜가 정해지시면, 며칠 전부터 모든 것을 조심하셨던 기억이 난다. 주변의 사고나 좋지 않은 소식을 들을까, 마실도 잘 나가시지 않으셨다.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조상님과 산신에게 안녕과 건강, 풍요를 기원하기 위한 산신제를 지내셨던 것 같다. 부모님도 정확히 설명해 주시진 못하셨다. 민간신앙의 산신제 같았는데, 어쨌든 교회와는 담을 쌓으신 분들이었다.


동생과 나의 교회 방문 목적은 단 하나였다. 바로 간식이다. 그리고 예배 때 부르는 찬송가, 즉 노래를 큰소리로 부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간식도 먹고 스트레스도 풀기 위한 수단이었다고나 할까.

부활절이면 달걀을 주고, 크리스마스 때는 선물도 줬으니, 어린 우리들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일요일은 아니지만 성가대(聖歌隊)와 연극연습으로 친구들과 교회 방문한 길이였다.


「니는 이번에 무슨 역할하노.」

「난 성가대만 하는데.」

「니는.」

「나는 연극 땜에 자주 댕겨야 될 것 같아.」


연습이 늦어지는 날이면, 시내에서 마을까지 그 어두운 밤을 후레시 하나에 의지해 걸어 다녔다. 물론 힘들진 않았다. 곁에는 항상 친구들과 마을 언니, 오빠들이 모여 함께 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염소가 새끼를 두 마리 낳았다.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일 중 하나가 염소가 새끼를 낳았을 때였다.

이미 낌새가 있는 며칠 전부터 아부지는 어미를 따로 분리해 짚을 새로 깔고 보온까지 마쳐 놓은 상태였다.

아부지는 아궁이에 군불을 때신 후 장작불을 조금 밖으로 꺼내 두신다.

추운 날씨에 새끼가 얼어 죽을까, 어제 태어난 새끼 염소를 데려와 엉덩이와 몸을 번갈아 가며 따뜻하게 녹여 주셨다.


「이 시키야, 가만 안 있나.」

「나도 만져 볼 거야.」


‘음메~ 음메~’ 새끼 염소는 눈이 동그래져 죽을 듯 몸부림을 치며, 어미를 불러 본다.


「암놈이야, 수놈이야?」

「두 놈 다 암놈이데이.」


이번에 태어난 새끼는 한 마리는 모두 검은색에, 또 다른 한 마리는 귀만 하얀색을 가진, 모두 암놈이었다.

염소 새끼는 자기를 위해 하는 행동임에도 모르고, 연신 어미 염소를 불러보는데, 새끼 울음소리에 어미 염소도 안절부절못하고 울어댄다.

아직 사람 손을 타지 않아서인 것도 있고, 어미와 떨어져 본 적이 없어서인 것도 있다.


며칠 지나 조금 익숙해질 때쯤, 엄마는 염소 새끼를 방 안에까지 넣어 두었다.

처음 한동안 어리둥절하던 새끼도 시간이 지나 온 방을 헤집고 다니는 건 물론, 종이며 이불이며 입에 넣을 수 있는 건 모두 넣어 본다.

호기심은 어린아이 못지않다.


염소의 똥은 검은색의 동글동글하고, 냄새도 거의 없다.

마치 한약재를 뭉쳐놓은 환(丸) 같다고 할까…

하지만 새끼 염소의 변은 달랐다.

샛노란색의 어린아이의 변과도 같았는데, 겨울이면 엉덩이에 그대로 얼어붙기까지 했다.

우리는 가끔 나무 꼬챙이를 들고 새끼 엉덩이의 변을 떼어주기도 했었다.


그렇게 염소는 오랜 시간 우리와 함께 했다.

소도 키워보고, 개와 고양이, 토끼도 키워봤지만, 내 기억으로 끝까지 함께한 동물은 염소가 유일했다.

시간이 흘러 부모님이 농사에 손을 떼시고도 염소를 키우셨는데, 그때는 돈 때문이 아닌, 정말 염소가 익숙하고 친근하셔서 키우신 것 같다.


오늘도 새끼염소를 바라보는 아부지 눈에서 꿀이 떨어진다.

그렇게 따뜻한 불을 한 차례 쐬고 나서야 어미에게 돌아갔다.


엄마는 아침부터 길고양이에게 잔소리를 시작하셨다.


「이 놈의 고냉이 새끼, 그새 호메이고기 다 물어갔네, 저리 안 가나.」


부엌 부뚜막에 걸어놓은 역걸이(양미리)를 그 높은 곳에서도 뛰어올라 몇 마리 훔쳐간 것이다.

엄마의 모진 잔소리에도 멀리 가지 않고 근처에서 아쉬움의 눈치만 보고 있다.


호미고기 또는 양미리는 짚으로 엮어 놓았다고 해서 역걸이로 불리었는데, 반찬은 물론 간식으로도 겨울 내 별미였다.

석쇠에 얹어 장작불 위에서 구워 먹곤 했었다.

암놈의 뱃속에는 초기 상태의 하얀색 말랑말랑한 알과 배아가 진행된 노란색 단단한 알을 골라 먹는 재미도 있었다.

소금간만 해서 호호 불어 먹는 그 맛은, 석쇠도 장작불도 접하기 쉽지 않은 지금은 머릿속에서나마 그 맛을 기억하고 있다.


겨울방학이라 늦잠과 내 시간을 즐길 시간은 많았다.

하지만 그럴 수만은 없었다.


아침이면 부모님은 새벽부터 일어나 아궁이에 군불을 때시고, 아침밥을 준비하기 바쁘셨다.

자연스럽게 나의 하루 일과도 정해진 시간에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부지런을 떠셔야만 하셨는지 모르지만, 항상 바쁘게 움직이셨다.

오늘도 어쩔 수 없이 방에서 띵구는 건 포기했다.


오빠가 만들어 준 나무썰매를 가지고 논으로 향했다.

한파가 계속되는 바람에 논뿐만이 아니라 계곡까지 모두 얼어붙어 우리는 논에서 계곡으로 향했다.

논은 다칠 위험이 많이 없었지만, 얼음이 얇기도 하고 뼈짚과 흙이 삐죽 튀어나와 걸리는 것이 많았다.

반면 계곡은 얼음이 두껍고 매끄러워 속도감을 즐기기에 그만이었다.

하지만 얼음이 깨질 수 있는 위험이 있었다.


썰매를 가져오지 못한 아이들도 두 다리를 이용해 뛰어다니며 미끄럼을 즐기기도 하고, 두 사람이 밀어주고 끌어주며 한파도 잊고 얼음 위에서 한 겨울을 즐겼다.

계곡 위 폭포까지 올라가자, 차가운 겨울 공기가 코끝을 시리게 스쳤다.

아직 녹지 않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계곡 사이로, 폭포에서 흘러내리던 물줄기가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투명하게 얼어 반짝이는 고드름들이 폭포 아래로 길게 늘어져 있었고, 햇살에 반사되어 마치 작은 수정 조각들이 빛나는 듯했다.


발아래, 위 전부 얼음이었다.

조심스럽게 발을 디디며 얼음 위를 지나, 손으로 뾰족한 얼음 고드름을 ‘톡’하고 떼어냈다.

차가운 손끝을 통해 전해지는 얼음의 냉기가 몸을 한층 더 깨어나게 했다.

그리고 입으로 가져가 쪽쪽 빨아먹으니, 단단하게 얼어 있던 물이 혀 위에서 사르르 녹아 시원하고 달콤하기까지 했다.

이 한철만 허락되는, 자연이 준 겨울 과자였다.


볼은 빨갛게 얼어붙었고, 콧물도 얼어붙는지 더 이상 흘러내리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후에야 집으로 향했다.

오늘도 역시나 엄마는 분주하게 움직이고 계신다.


「엄마 뭐 해?」

「염소 한 마리 잡을라고 한다.」

「어?」


날을 확실히 잡으신 모양이었다. 엄마가 닭 잡으셨다는 이야기는 한번 들어본 적 있지만 염소까지..

충격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방에 가 있어.」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엄마 말씀대로 난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얼마쯤 지났을까.

진짜 죽을 듯 염소 한 마리의 울음소리가 마당을 가득 채웠다.

이전에 좀처럼 들어 본 적 없는 울음소리였다.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난 몰래 방문을 살짝 열었다.

그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이게 웬일인가?


우리 집 단 한 그루 사과나무 그곳에, 염소의 목이 매달려 있었다.

엄마도 그 장면을 보고 싶지 않으셨는지, 아버지와 함께 염소를 겨우 묶어 놓은 뒤 부엌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울음소리가 잦아들고 난 뒤에야 부모님은 다시 밖으로 나와 다음 준비를 이어갔다.


말 그대로 그 시간은 지옥이었으리라.

염소에게도, 그리고 그 소리를 들으며 숨죽이고 있던 우리에게도.


난 거기까지였다.

그보다 더한 장면은 보지 못했고, 보고 싶지도 않았다.


염소를 잡는 일은 길고 험난한 과정이었다.

그 일을 해야 했던 부모님께도 쉽지 않았겠지만, 내게는 그 긴 순간이 평생 잊히지 않을 충격으로 남았다.

얼마 뒤, 염소를 나무에서 내리고 엄마는 냇가로 향했다.

초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손질된 고기를 가지고 돌아오셨다.


어린 기억 속에 그 일은 딱 두 번 있었다.

모든 첫 번째가 충격으로 다가오는 법, 두 번째는 냇가까지 쫓아갔던 기억이 있다.


얼음을 깨고, 차가운 물 위에서 엄마는 장갑 하나 낀 맨손으로 고기를 씻고 다듬었다.

아버지가 도와주긴 했지만, 그 일의 중심은 엄마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였다.


고기야 돈 주고 사면 그만이지만, 염소고기는 약이라고 하셨다.

몸에 좋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그 한 가지 이유로, 엄마는 잔인해질 수 있었다.

그땐 모두가 엄마를 두고 잔인하다고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부모니까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잔인하게, 어렵게 손질된 염소고기는 엄마의 권유에도 언니와 동생은 입도 대지 않았다.


「한번 먹어봐.」

「싫어, 엄마나 먹어.」

「꼴값 떨고 있네, 가시나.」

「찔겨, 냄새가 왜 이래?」


부모님과 나, 오빠 그리고 이웃들과 함께 나눠 먹었다.


사실 나 역시 그 고기를 즐기진 못했다.

맛은 둘째치고 특유의 염소고기 냄새와 질긴 육질 탓에 입맛에 맞지 않았다.


설명할 순 없지만, 맛으로 기억되는 것보다 냄새로 그날의 모든 것이 회상될 만큼 강했다.

어른들은 ‘잡내’라고 표현했지만, 내게 그것은 냄새라기보다 기억 그 자체였다.


동물의 누린내, 가끔 맡았던 염소 털에서 나는 특유의 쿰쿰한 체취라고 표현해야 하나.

아무튼 고기 구울 때 그 연기가 온 집안을 뒤덮었다.


요리를 잘했다면 좀 달랐을까?

대부분 장작불 석쇠에 구워 소금간만 해서 먹었다.


기름기는 적어 느끼함은 없었지만, 냄새는 끝내 맛을 눌러버렸다.


그렇게 염소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고 갔다.

살아있을 때도, 죽어서까지…


비슷한 경험이 하나 더 있었다.

언제였는지 또렷하진 않지만, 내 기억임에는 분명했다.


홍역으로 며칠째 앓아누웠을 때였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때 느낀 고통은 지금도 어렴풋이 남아 있다.

'죽다 살아나는 게 이런 건가?'

그런 생각을 할 만큼 힘들었다.

고열에 정신은 없는데 붉은 발진까지 가려운데 긁지 말라 하니 더 곤욕이었다.


겨우 정신이 들었을 때, 엄마는 집에서 키우던 토끼 두 마리를 잡아 나를 위해 잡아주셨다. 밥솥에 삶은 그대로 내게 건네셨다.


「아나, 먹어 볼래.」

「이거 뭔데.」

「그냥 먹어봐, 몸에 좋은 거야.」


아마 여섯 살쯤 되었을까.

나이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때의 상황만큼은 또렷이 기억한다.

나는 혼자 그렇게 토끼 두 마리를 모두 먹어치운 기억이 있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가끔 가족들도 그때가 충격이었다며 일화를 이야기해주곤 했지만, 분명 내 기억에도 남아 있었다.


기억보다 더 또렷한 건, 고기의 부드러운 질감과 냄새였다.

염소와 마찬가지로 ‘잡내’는 있었다.

씹을 때마다 코끝으로 올라오던 그 익숙한 냄새가 내 기억임을 증명하는 듯했다.


냄새도 맛도 염소와는 달랐지만 말이다.

내 몸이 회복하려는, 그저 생존의 본능이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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