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던 동네가 달라졌다는 건
by
수연
Feb 3. 2026
내 기억으로 아마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였던 것 같다.
부모님은 한동안 분주하게 시내를 오가셨다.
그러던 어느 날 이사 이야기가 오갔다.
이해도 생각도 하지 못한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우리 식구들 모두 ‘왜?’ 의아해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전적으로 모두 엄마 생각이셨다.
「갑자기?」
「마을 아들하고 같은 학교 다니는데 뭐가 걱정이고.」
「학교도 가까워지고 좋제.」
「그래도 싫어.」
「싫으면 어째, 집다 얻어놨는데.」
부모님이 마을 사람들과 트러블이 있다거나, 평소 낌새라도 주었다면 이렇게 놀라진 않았을 것이다. 정말 갑작스럽게 모든 일이 벌어져, 좋고 나쁨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물론 엄마와 이미 결정을 끝낸 아버지는 별말씀 없으셨지만, 우리는 모두 반대였다.
난 이사가 얼마나 큰일인지, 그리고 내 삶이 어떻게 바뀔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내가 독립하고 부모님과 함께하는 동안,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이사였던 셈이었다.
소꿉친구들이 모두 여기 있었고, 과수원도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었다.
그 모든 것을 감수하시고 내린 결정이었겠지만, 어린 나 역시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결정하신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어느덧 우리 가족 모두 이사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솔직히 이사 당시에는 기억나는 게 없다.
다만 떠나고 싶지 않다는 감정은 아직도 강하게 느껴질 만큼 선명하게 남아 있다.
아쉬움이랄까, 미련이랄까.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리고 예상한 대로 그 후 난 친구들과 점점 멀어졌다.
오빠 친구들은 이미 중학생이니 상관없었고, 언니 또한 또래 친구라 해도 두세 명이 전부였다. 하지만 난 달랐다. 또래만 여섯 명이나 되었던 것이다. 이는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엄마 말씀이 틀린 건 아니었다.
주소로 말하자면, 겨우 5리에서 4리로 이동하는 거였다. 도보 30분, 2km 조금 넘는 거리였다.
하지만 사람과의 거리는 그 이상이었다.
시골에서는 단순히 집 사이의 거리보다, 마을 단위의 결속이 훨씬 중요했다. 1리와 2리는 면 단위 체육대회만 열어도 서로 그룹을 지어 나눠 앉아 경쟁을 벌였다.
친구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놀이 방식까지 달라지니, 사람만 바뀌어도 세상은 완전히 달라진 듯했다.
그렇게, 나는 이사를 통해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의 유년기 시절 가장 큰 전환점은 이사였던 것 같다.
물론 때가 되면 가서 물고기도 잡고, 부모님 따라 자주 과수원을 오갔지만, 심리적 거리감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천천히 이사를 준비했다.
언니들은 집구석구석을 사진으로 남겼다.
정재(正齋, 부엌)도 한 컷, 아궁이도 한 컷, 부뚜막도 한 컷.
마당 한구석 사과나무도 한 컷, 마루도 한 컷, 다 쓸어져 가는 변소도.
어느 곳도 추억이 서려 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사과나무를 타고 올라가 지붕 위에서 바라보는 나의 첫 번째 집과 그렇게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사한 집은 시내 중·고등학교 바로 정문 앞집이었다.
예전 살던 사람이 가게를 한 듯한 공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물론 삼그레이집과는 다른 분위기의 집이었다.
마당과 변소가 뒤로 밀려나 있었으며, 학교 정문과 너무 가까운 출입문 탓에 오가는 사람들이 그대로 보였다.
삼그레이 집은 마을입구의 회관 옆, 이사한 집은 학교 정문 바로 앞이라는 점에서 닮아 있었다. 즉 오가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다.
가장 크게 다가온건 부엌이었다. 삼그레이 부엌은 아궁이에 불을 떼야하는 부뚜막이 있는 전통 그대로의 부엌이었다. 그리고 신발을 신고 들어가 흙을 밟아야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방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가스레인지 사용이 가능한 주방이었다.
여전히 난방은 아궁이에 불을 넣어야 하는 구조이긴 했지만, 생활면에서 훨씬 편해진 건 사실이었다.
아궁이도 세 곳에서 한 곳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변소는 푸세식이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 이 집도 구조가 많이 변경되긴 했지만,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집과의 인연을 이어갈 차례인가 싶었다.
한동안 여기 내려와 동생과 시간을 많이 보냈다.
학교 가는 길은 10분으로 줄었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밖으로 나아가도 바로 뛰어놀 수 있는 산이나 들은 이제 없었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기도 했지만, 아직은 어색한 분위기와 친구도 없었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새로운 논도 생겼으며, 삼그레이와는 정반대 방향이었다.
논을 오가기 위해, 항상 경운기만 타시던 아버지께 오토바이가 생겼다.
그만큼 논은 집에서 꽤 떨어진 곳에 있었다.
아부지 허리를 감싸 안고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오토바이는, 느리디 느린 경운기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새집, 새로운 동네에서 새 봄을 맞이했다.
한동안 가족 모두 이래저래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아직은 모든 것이 어색했지만,
그 어색함마저도 나의 시간으로 또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환경이 변화한다는 것은 성장하는 나에게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삼그레이, 나의 유년시절은 이렇게 끝이 났다.
나는 이곳에서 사춘기를 맞으며, 새로운 추억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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