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먹었다. 토기도, 개구리도
by
수연
Jan 29. 2026
밤새 눈이 내렸다. 위 마을과 아래 마을, 그리고 산 전체가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겨울철, 부모님도 이때만큼은 농사일에서 벗어나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셨다.
아부지는 오늘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아침 일찍 눈 덮인 산에 올가미를 몇 개 놓아두셨다고 한다.
이전 날 아부지가 철사를 구불려 올가미를 만드시는 걸 봤다.
눈 내린 이후, 아무도 올아가지 않은 뒷산, 알 수 없는 동물들의 발자국만 남아 있다.
그중 토끼 발자국을 찾아 나무 밑에 올가미를 놓아두고 내려오신 터였다.
그리고 그날 점심 무렵, 아부지는 친구분들과 다시 산에 오르셨다.
이번에는 빈손이 아니었다.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포대에 토끼 몇 마리를 잡아 오셨다.
설마 했는데…
언젠가 익숙하게 맡아본 그 냄새가 집안 가득 퍼져 있었다.
왜 하필 우리 집에서 이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모든 건 엄마가 주도한 일이 분명하다.
아부지가 계시지만, 대부분 마을 분들은 엄마를 만나기 위해, 그리고 엄마의 요청에 따라 우리 집으로 마실 나오시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 와서 말이지만 아부지는 한 인물 하시는 편이셨고, 엄마는 얼굴보다는 성격이 좋으셔서 마을에서 사교성이 좋은 편이셨다.
경제권도 엄마가 가지고 계셨으니 말 다 한 거 아닌가.
처음부터는 아니셨다고 한다. 언니, 오빠가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식구가 늘어나면서 당연히 돈 들어갈 일이 많았던 터였다.
농사일도 처음부터 우리 땅을 가지고 시작하지 않았던 터였다.
들어오는 돈은 적고 나가는 돈은 많았으니 머리가 아프신 것도 당연한 결과였으리라 생각된다.
「빨리 돈 주소, 아들 학교가야 데니더」
「맨날 뭐 한다고 돈 달라노.」
「아, 이보소. 학교에서 사 오라 카는데..」
「니가 해라 고마.」
이런 일이 반복되자 아버지는 손을 놓고 결국 그날로 엄마에게 넘기셨다고 들었다.
우리가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아부지가 슬쩍 엄마에게 다시 넘겨 달라고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그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이제 한숨 돌릴까 하는데, 누군들 다시 넘기고 싶을까…
지금까지도 여전히 엄마가 경제권을 쥐고 있는 터였다.
마당 한켠에 자리를 잡고, 이웃들과 함께 술을 곁들여 장작불에 익은 토끼고기를 안주 삼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연숙아, 얼른 온나.」
「안 먹어.」
「안 먹기는 니가 토끼를 얼마나 잘 먹었는지 아나.」
안다. 하지만 그때는 살려고 몸이 반응한 터였지, 내 마음은 아니었다.
그 순간, 그 냄새가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두 번은 용서할 수 없었다.
나뿐 아니라 가족 모두 잘 먹지 않았다.
엄마는 아부지와 오빠 몸보신해 주신다는 핑계로 이것저것 많이도 시도하셨다.
한 번은 뱀인지 두꺼비인지, 엄마의 권유로 힘겹게 먹었던 날 아버지는 밤새도록 토하시며 열이 나고 난리가 나셨다고 하셨다. 뱀술도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듯했다.
내 눈으로 보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엄마였다면 분명 가능했을 듯하다.
아부지는 큰 병은 없으셨지만, 엄마는 정말 정성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부지 또한 웬만하면 거부하시지는 않으셨다.
어쨌든 오늘도 토끼 고기는 엄마 외 여자들은 입도 대지 않았다.
남은 두 마리의 토끼는 염소 우리 바로 옆에서 살게 되었다.
산토끼라 그런지 성격이 장난이 아니다. 이빨도 얼마나 센지, 손으로 먹이를 주려다 피를 보기도 했다. 하기야 동족을 잡아먹는 것을 봤으니 이해가 되기도 한다.
늦은 오후, 동생과 나는 어김없이 썰매를 들고 논으로 향했다.
얼음 위에 눈이 조금 남아 있어 썰매는 잘 나가지 않았지만, 우리는 하루 일과처럼 썰매를 타고 있었다.
겨울이 끝나면, 이 또한 끝이다.
얼음 위 썰매에 두 다리를 꼬아 접고 앉았다.
나무토막 끝, 못 박힌 막대를 잡고 노 젓듯 방향을 조절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미지 삽입 (논 썰매, 책상다리 두 손으로 방향 잡는..)
오빠는 저 멀리서 날이 하나인 썰매를 아슬아슬하게 타고 있었다.
요즘 놀이에 빗대자면, 우리는 롤러스케이트를, 오빠는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셈이다.
이제 겨울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즐길 수 있을 때 하루라도 더 즐기려는 듯 열심히였다.
「야 비켜.」
「부딪친데이.」
넘어져도 타격감은 없었다.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면 그만이었다. 어느새 볼은 새색시 마냥 빨갛게 얼어 있었으며, 장갑을 끼지 않은 손은 막대와 혼연일체가 되어, 썰매를 앞으로 밀고 있었다.
「내 손 깨지는 거 아니나.」
「얼어붙었데이. 감각도 없다야.」
손등은 빨갛게, 그리고 금이 간 듯 갈라져 있었다. 겨울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몸은 아닌가 보다.
집에 도착했을 때, 언니는 아궁이에 군불을 때고 마지막 장작을 넣고 있었다.
나는 언니가 일어난 자리에 얼른 앉아 불을 쬐기 시작했다.
온몸이 나른해지며, 얼어붙었던 볼도 손도 녹고 있는 듯한 기분에 더 불 가까이 다가가 본다. 뒤돌아 엉덩이도 내밀어 보고, 괜스레 장작불도 한 번 더 뒤집어 준다.
막 커다란 장작을 넣은 터라, 타닥타닥 불길이 절정에 달했다.
그때 엄마가 부엌에서 석쇠에 나란히 누워있는 엮거리(양미리)를 가지고 나오셨다.
「이거 앉아서 구워온나.」
「응. 근데 좀 있어야데, 불길이 장난이야.」
불길이 사그라질 때, 나는 아궁이 입구 쪽으로 빨갛게 달아오른 숯을 끌어 모았다.
그리고 엄마가 건네준 석쇠를 조심스럽게 얻어 놓았다.
지글지글 대는 엮거리(양미리)가 익어가는 소리와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엉덩이는 시렸고, 얼굴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중에서도 석쇠 가운데 잘 익은 엮거리 한 마리가 입으로 들어가자,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입가에 묻은 재를 털고, 다시 석쇠를 뒤집어 본다.
「얼른 안 들어오고 뭐 하노. 들어올 때 물 한 잔 가지고 온나.」
「아직 다 안 익었어.」
방에서는 이미 저녁 식사가 시작된 터였다. 나는 양손에 물 한 잔과 석쇠를 가지고 방으로 들어갔다.
「문 열어줘.」
그렇게 나도 뒤늦게 저녁상에 함께했다. 식구들은 엮거리가 들어오자 밥숟가락을 놓고 맨손으로 엮거리부터 뜯기 시작했다.
아궁이에 불을 때는 일은 매일 반복되는 작업이라 정말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었지만, 겨울 간식과 절절 끊는 아랫목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어렸을 때 치통이 심할 때면 냅다 드러누워, 아픈 볼을 검게 변한 아랫목에 대고 있으면 치통이 잦아드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일시적인 효과이겠지만 말이다. 치과를 다녔던 기억이 없으니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잠들면 그만이었다.
어느덧 새 학기다. 다시 학교생활을 이어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 중 가장 귀찮은 일은 학교 가는 일이었다.
「니는 새 책 받았나?」
「어, 오늘 가서 책표지 싸야지.」
「니 누구랑 한 반됐나?」
「나 옥희랑.」
「니는?」
동네 또래 여자친구 세 명 중 나 혼자 떨어졌다. 뭐 상관은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이때부터 나는 아웃사이더 기질이 있는 듯했다.
여느 여자아이들은 반반마다 돌아다니며 친구들의 같은 반 여부를 체크하고 다니며, 아쉬움과 기쁨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가방 가득히, 그리고 손에 새 책을 감싸 안고 집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새 책을 마루에 모두 펼쳐 놓았다.
지난해 달력을 찢어 뒷면의 하얀색 부분을 책 표지에 감싸기 위해서다.
어떻게 보면 책의 내용보다 표지 싸는 데 더 정성을 들였던 것 같다.
흡사 선물 포장하듯 정성 들여 책 크기에 맞춰 잘 접어준다.
다음에는 모서리를 꾹꾹 눌러 고정시켜 주면 끝이다.
그리고 깨끗한 표지 위에 교과명을 정성스럽게 적어 주었다.
새 학기를 준비하는 첫 번째 일이었던 건 분명했다.
몇몇 아이들은 알록달록 예쁜 포장지에 책을 감싸기도 했지만, 어차피 몇 달 지나면 헤지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떨어져 나갈 때쯤 또다시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춥긴 했지만, 절기상으로는 봄이었다.
주말에는 재방송이지만, 텔레비전이 온종일 방송되었다.
뜨뜻한 아랫묵에서 이불을 반쯤 덮고, 오랜만의 띵굴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밖이 소란스러워 귀를 기울여본다. 오빠가 친구들과 개구리 잡으로 해터 갈 예정인 것 같다.
창고에서 반도(족대,반두)와 쇠막대(쇠장대)을 찾느라 분주하다.
창고 물건은 아버지 손이 많이 간 터라, 아부지까지 나서서 찾고 있다.
「물에 들어가지 말그래이.」
「물에 안 들어가고 어떻게 잡아.」
개구리가 수면 깊이 사는 것도 아닌데, 엄마는 오늘도 걱정이 앞선다. 끽해봐야 계곡이나 개울 정도일 텐데 말이다.
해터면 개울 옆 잔잔한 곳 바위틈 어디든 개구리가 나타날 거다.
예상하건대 오늘 장작불에 구워질 간식은 개구리가 틀림없을 것 같다.
「갔다 올께.」
「조심히 뎅기래이.」
「알았어.」
얼음물에 빠졌을 때도 몰래 집으로 돌아와 아무 일 없다는 듯 행동했다.
오빠도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퉁명스럽게도 대답하고 나선다.
그래도 그게 될까, 엄마의 눈과 마음은 언제나 오빠를 향해 있었던 것을.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몇 시간 만에 오빠는 비료포대 가득 개구리를 잡아왔다.
어떻게 손질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렸어도 개구리는 만지고 싶지 않았다.
이미지 삽입 (부엌 장작불의 익혀지는 개구리, 까만 알..)
장작불 옆에 앉아 있는 아부지를 보고서야 밖으로 나아갔다.
「아부지 뭐 해.」
「이리 온나.」
석쇠도 없이 그대로 삽으로 뜬 장작불 위에 개구리 몇 마리가 올라가 있었다.
「맛있어?」
「먹어 보면 알재.」
「난 다리만 줘.」
「알도 먹어봐.」
통통한 개구리 다리 두 개를 뜯고는 정신을 놔버렸다.
아부지가 넘겨준 시꺼먼 개구리 알이 입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리는 크기가 작은 닭다리와 같았고, 알은 부드럽게 혀에서 녹듯 목으로 넘어가 버렸다.
익힌 알은 검은색이라 어떤 맛인지 설명하기 어려웠다.
알알이 입으로 들어갔지만, 혀에 닿아 부드럽게 넘어가 버렸다.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분명 내가 어렸을 때는 가능했으며, 비일비재한 일이기도 했다.
다만 한철이었다. 경칩이 막 지나고 나서야 개구리를 먹을 수 있다고 엄마가 말씀하셨는데,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내 기억으로는 몇 번 되지 않지만, 지금 생각하면 못 먹는 게 없었구나 싶다.
아니, 우리 집에서 금지된 음식이 한 가지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음식이라 하긴 어렵지만, 우리 집에서 금지된 것은 바로 개였다.
산신을 믿는다는 이유이긴 했지만, 그것도 정확히 설명하기란 어려웠다.
개가 집안의 수호신 역할을 한다는 얘기도 있고, 산신과 연결된 동물로 여겨졌던 것은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본다.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니네는 커서도 개는 먹으면 안 된데이” 하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있다.
물론 엄마가 말씀하지 않아도, 먹을 생각조차 없었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우리 가족 중 누구도 개고기를 먹거나 시도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염소도, 토끼도, 개구리도 먹는 엄마가 하실 말씀은 아니지 않나 싶다.
이렇게 겨울이 끝나고 다시 봄이 시작되었다.
부모님도, 새 학기가 시작되는 우리도 각자 바쁘게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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