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스 살아보기
1. 먼지를 씻어내는 비, 그리고 AI라는 가이드
카이로의 그 지독했던 뿌연 모래먼지를 뒤로하고 지중해를 건넜다. 다음 목적지인 튀니지(Tunisia)의 수도, 튀니스 공항에 내리니 세찬 비가 여행자를 맞이한다. 마치 한국의 늦가을 비처럼 스산하다. 하지만 폐부 깊숙이 들어오는 공기만큼은 카이로와 달리 상큼하다. 흙내음 섞인 젖은 공기가 "여기는 북아프리카의 또 다른 얼굴"이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이번 여정은 애초 북아프리카 5개국을 모두 살아보려던 계획을 수정해, 치안이 불안한 리비아와 알제리를 제외하고 카이로, 튀니스, 카사블랑카 세 곳에 집중하기로 했다. 비슷한 아랍 문화권이지만 튀니지의 국민소득은 4,000불 남짓. 이집트보다는 낫다지만 여전히 가난한 나라다.
세계 어느 공항이나 이방인을 노리는 하이에나들은 존재한다. "미터기로 갑니다"라고 호언장담하던 기사의 차에는 정작 미터기가 없었다. 예전 같으면 당황해서 실랑이를 벌였겠지만, 70세의 나 홀로 여행자에게는 든든한 가이드가 있다. 바로 'AI'다. 스마트폰을 꺼내 AI에게 공항에서 시내까지의 적정 요금을 묻는다. 그리고 그 가격에 약간의 팁을 더해 기사에게 화면을 보여준다.
카이로 시장에서 향수를 살 때도 그랬다.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던 상인도 AI가 알려준 '현지 적정가'를 들이밀면 한숨을 쉬며 꼬리를 내린다. 바가지요금과 싸우느라 진을 빼던 시대는 지났다. 기술의 혁명은 노년의 방랑자를 가장 합리적이고 스마트한 협상가로 만들어주었다.
2. 민속촌 부엌과 8인용 식탁의 반전
도착한 숙소는 내 예상을 보기 좋게 배반했다. 50년 된 아파트, 한국으로 치면 재건축 직전의 낡은 건물이다. 현관을 들어서니 개 세 마리가 낯선 나를 보고 짖어대고, 집안 곳곳에는 재떨이와 꽁초가 수북하다. 압권은 주방이다. '혼돈(Chaos)' 그 자체다. 용인 민속촌 주방에서나 볼 법한 칠팔십 년대 스타일의 찌그러진 식기들이 제멋대로 쌓여 있고, 정리 정돈이란 단어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더 놀라운 건 보안이다. 집주인이 집을 안내하는데 방문이 안 잠긴다. 아무도 안 들어가니 걱정 말란다. 화장실에도 잠금장치가 없다. 노크하니까 걱정 말란다. 이곳에는 30대 후반 남녀 3명이 사는 아파트였다. 돈이 궁하니 관리비라도 건져보려고 에어비엔비에 내놓은 집이다. 현지인들과 어울려 살아보면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려고 선택한 집인데 '현지인 난민촌' 생활을 경험할 상황이다.
"야 이거 2주 동안 머리 좀 아프겠다" 싶던 찰나, 집주인이 안내한 거실 문을 여는 순간 별천지(別天地)가 펼쳐졌다. 한국의 50평대 아파트만 한 광활한 거실, 10명은 족히 앉을 대형 소파와 8인용 식탁, 그리고 양쪽 벽을 터서 만든 통창 너머로 울창한 공원 숲이 쏟아져 들어왔다. 낡은 외관 속에 숨겨진, 완벽한 '공원 속 카페'였다.
이 집에 사는 3명은 이 낡은 집을 오피스 삼아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들이었다. 사는 것은 난민처럼 어수선 하지만 나름 철학이 있는 괜찮은 젊은이들이었다.. 이들은 낮에 카페 같은 거실에서 컴퓨터로 일했다.
나 역시 그들 틈에 노트북을 펴고 앉았다. "나는 한국에서 온 여행 작가입니다." 내 소개에 그들은 눈을 반짝이며 환영해 주었다. 웹 디자이너, 음악가, 그리고 여행 작가. 국적도 나이도 다르지만, 우리는 같은 식탁에서 각자의 키보드를 두드리는 '동료'가 되었다. 비록 주방에서는 찌그러진 냄비에 누룽지를 끓여야 하는 '야생'이지만, 거실에서만큼은 튀니지의 젊은 지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카이로의 카페가 '관찰'의 공간이었다면, 튀니스의 이 거실은 '참여'의 현장이다.
3. 잿빛 거실에 핀 꽃, 그리고 들이닥친 한기
타닥거리는 키보드 소리와 매캐한 담배 연기가 거실을 꽉 채울 무렵, 안방 문이 열리고 여주인이 걸어 나왔다. 난장판인 주방과는 어울리지 않게, 아주 세련되고 깔끔하게 차려입은 30대 후반의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그녀가 등장하자, 칙칙했던 공기의 흐름이 순식간에 바뀐다. 마치 흑백 영화가 컬러로 바뀌듯, 무뚝뚝한 남자 셋만 있던 건조한 공간에 부드러운 윤기가 돌기 시작한다.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어도, 그녀의 존재만으로 방 안에 미묘한 온기가 감돈다. 음과 양, 이 또한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리라. 남자의 세계에 여자가 들어올 때 생기는 그 적당한 긴장감과 온기, 그것이 이 낡은 집을 지탱하는 힘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가 가져온 찰나의 온기만으로는 이 낡은 집의 물리적인 한기(寒氣)를 막을 수 없었다. 카이로에 있을 때는 "비 한 방울 안 오나" 야속해했건만, 이곳 튀니지는 일주일째 하늘이 뚫린 듯 비를 퍼붓고 있다. 지구 온난화가 만들어낸 기상이변은 이곳 북아프리카를 한국의 장마철처럼 만들어버렸다. 예보를 보니 앞으로도 일주일 내내 비 소식이다.
문제는 뼛속을 파고드는 추위다. 밖의 기온이 영상 8도인데, 방 안도 정확히 8도다. 한국처럼 단열이 되어 있지도 않고, 무엇보다 '온돌'이 없다. 난방 시설이라곤 미지근한 라디에이터뿐, 그저 비바람만 막아줄 뿐 냉기는 벽을 뚫고 들어온다. 한국의 겨울은 밖은 칼바람이 불어도 실내에 들어오면 반팔을 입을 만큼 화끈하게 따뜻하다. 하지만 이곳은 도망칠 곳이 없다. 하루 종일 으슬으슬한 습한 추위가 몸을 감싼다. 한국의 추위를 피해 따뜻한 아프리카로 피난을 왔는데, 여기서 더 독한 놈을 만난 셈이다. 오죽하면 이 집 사람들 모두 방 안에서 두꺼운 코트를 입고 빵모자까지 눌러쓰고 다닐까.
4. 70대 여행자의 생존 기술: 전기장판과 누룽지
나 역시 카이로의 여유는 잊고, 빠르게 태세 전환을 해야 했다. 캐리어 깊숙한 곳에서 나의 '비밀 병기'를 꺼냈다. 바로 내의(내복)와 전기장판이다. 나의 해외여행 짐 꾸리기 원칙 제1조. 한여름 적도가 아니고서는 내의와 전기장판은 필수다. 이것은 나에게 비상약과 동급의 생존 장비다.
내의를 껴입으니 살을 파고들던 한기가 한결 누그러진다. 침대 시트 밑에 전기장판을 깔고 온도를 높이니, 싸늘했던 침실이 금세 한국의 아랫목처럼 후끈해진다. 거실에서 옷을 겹겹이 입고 일하는 젊은 친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것이 70대 여행자가 가진 '연륜의 지혜'다.
저녁 메뉴는 고민할 것도 없이 '누룽지'다. 그 난장판 같은 주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현지 마트에서 사 온 빵 한 조각을 곁들여 팔팔 끓인 누룽지 한 사발을 들이켠다. 구수한 숭늉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며 얼어붙은 내장을 뜨끈하게 데워준다. 빵으로 배를 채우고, 누룽지로 한기를 쫓아낸다.
5. 편안함은 방랑자의 선택이 아니다
창밖에는 여전히 차가운 겨울비가 내리고, 낡은 집의 공기는 서늘하다. 문득 지난 열여섯 번의 한달살이를 돌이켜본다. 라오스나 말레이시아의 레지던스 호텔은 편했다. 수영장과 사우나를 즐기며 호캉스처럼 지냈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기억에 남는 건 그 매끈한 편안함이 아니다. 삿포로 주인장과 함께 갔던 온천, 비엔나 사비네와의 기묘한 동거처럼, 불편한 공용 숙소에서 부대끼며 나눈 '사람의 온기'가 훨씬 진하게 남는다.
편안함은 관광객의 목표일지 몰라도, 방랑자의 선택은 아니다.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고 그 속에서 낯선 인연과 희열을 건져 올리는 것, 그것이 내가 여행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나는 금년 열 곳의 살아보기 여정 모두를 '공용 숙소'로 할 생각이다. 카이로에서는 '안나' 때문에 잠시 독채의 호사를 누렸지만, 남은 아홉 번의 여정은 이 낡은 집처럼, 불편하지만 정겨운 곳에서 새로운 인연과 새로운 방식의 생활을 해 볼 것이다.
빗소리가 거세진다. 하지만 전기장판의 열기와 누룽지의 온기가 있는 한, 튀니지의 겨울비는 낭만으로 변한다. 나는 따뜻한 이불속으로 파고들며 튀니지에서의 첫 번째 밤을 청한다. 이 낡고 차가운 집이, 비로소 나의 '스위트 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