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잉카의 돌, 이집트의 돌: 17년 만의 재발견
17년 전, 관광객으로 찾았던 이집트는 그저 '거대함'이었다. 버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압도적인 크기에 말문이 막혔던 기억뿐이다. 하지만 70세의 여행자가 되어 다시 마주한 이집트는, 이제 크기가 아닌 '디테일'로 말을 걸어온다.
지난달, 나는 지구 반대편 남미에서 잉카의 공중도시 '마추픽추'를 걸었다. 흔히 잉카를 일러 '돌의 예술'이라 칭송한다. 면도날 하나 들어갈 틈 없이 정교하게 맞물린 그들의 축조 기술을 보며,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는 그 견고함에 감탄했었다. 잉카야말로 인류 최고의 석공들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오늘, 카이로의 스핑크스 신전 앞에서 그 믿음이 기분 좋게 배반당했다. 마추픽추는 기껏해야 600년 전의 역사지만, 이집트는 무려 5천 년 전의 문명이다. 철기 시대도 도래하기 전, 그 아득한 옛날에 그들은 이미 돌을 떡 주무르듯 다루고 있었다.
피라미드가 거친 바위덩어리의 투박한 웅장 함이라면, 스핑크스 입구의 회랑은 정교함의 극치다. 잉카의 돌보다 훨씬 단단한 화강암을, 마치 두부를 자르듯 반듯하게 깎아 종이 한 장 들어갈 틈 없이 맞춰 놓았다. 쇠로 만든 정이나 톱도 없던 시절, 오직 구리와 돌망치만으로 이 단단한 화강암을 어떻게 다스렸을까.
2. 기술이 아닌 기도: 검은 화강암의 비밀
그 놀라움은 이집트 박물관의 석관(石棺) 앞에서 절정에 달했다. 거대한 검은 화강암을 깎아 만든 관. 그 표면은 현대의 기계로 연마한 듯 매끄러웠고, 자를 대고 그은 듯 완벽한 직선을 이루고 있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관의 내부다. 바깥을 깎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그 단단한 돌의 속을 파내고 모서리를 직각으로 다듬어 냈다. 심지어 그 안팎에는 깨알 같은 상형문자와 정교한 그림들이 빈틈없이 새겨져 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기술이다. 지금 당장 전동 공구와 다이아몬드 커터를 쥐여줘도 쉽지 않을 작업을, 5천 년 전의 장인들은 맨손에 가까운 도구로 해냈다. 이것은 기술이라기보다 '기도'에 가깝다. 영원한 삶을 믿지 않고서야, 썩어 없어질 육신을 위해 이토록 단단한 영원(永遠)의 집을 지을 수는 없었으리라.
잉카의 돌이 자연과 어우러지는 '순응의 미학'이라면, 이집트의 돌은 자연의 재료마저 완벽한 기하학으로 통제해 버리는 '절대의 미학'이다. 마추픽추를 보며 인간의 끈기에 감동했다면, 이집트의 돌 앞에서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어떤 숭고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카이로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다시 한번 돌들을 어루만져 본다. 5천 년의 비바람을 견딘 이 돌들은 여전히 차갑고 단단하다. 17년 전에는 보이지 않던 돌의 결이, 인생의 황혼에 선 이제야 비로소 내 눈에 들어온다.
인간은 가고 없어도, 그들이 깎아놓은 돌은 남아 영원히 말을 건넨다. 이것이 바로 이집트가 보여주는 진정한 '돌의 예술'이다.
3. 다른 문명을 압도하는 절대적 거대함
룩소르의 카르낙 신전에 들어섰을 때, 나는 다시 한번 할 말을 잃었다. 이미 피라미드의 거대함에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졌다고 생각했건만, 이곳의 숲을 이룬 돌기둥들은 또 다른 차원의 전율이었다. 수천 톤이 넘는 저 거대한 돌기둥 수백 개를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옮겨왔단 말인가. 기둥마다 빼곡히 새겨진 정교한 조각, 그리고 수천 년의 시간을 버티고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는 천장의 채색 안료들. 현대의 장비를 총동원한다 해도 과연 저 까마득한 높이에 돌 지붕을 얹을 수 있을까? 상상조차 되지 않는 기술이다.
놀라움은 왕의 계곡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깊은 땅속으로 100미터가 넘게 뚫고 들어간 지하 묘. 그 긴 통로의 벽면 전체를 마치 조각품처럼 다듬고 그림을 채워 넣었다. 그 좁고 가파른 지하 통로로 집채만 한 석관을 어떻게 옮겼는지, 그 자체가 미스터리다. 지금 해도 난공사일 이 모든 일이 기계 하나 없던 시절에 이루어졌다는 사실 앞에, 고대 이집트인들을 향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스핑크스 회랑의 빈틈없는 축조술, 석관의 미려한 가공, 신전의 웅장한 기둥들... 최근 몇 년간 전 세계를 돌며 실크로드의 유적과 잉카의 석벽, 이슬람의 건축미에 감탄해 마지않았었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이집트의 압도적인 거대함과 정교함 앞에서는 그 모든 문명이 조금은 작아 보인다. 그만큼 이집트 문명의 수준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4. 위대한 석공의 후예들은 어디로 갔는가
그런데, 여기서 도무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생긴다. "왜 지금의 이집트는 이 모양인가?“
과거 문명에 대한 경외감만큼이나, 현재 이집트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위대한 석공들의 후예는 어디로 가고, 유적지마다 파리 떼처럼 달라붙어 1달러를 구걸하는 호객꾼들만이 넘쳐난다. 외국인을 그저 돈줄로만 보고 바가지를 씌우려는 상인들의 눈빛에는 자부심 대신 탐욕만이 번들거린다. 2천만이 사는 거대 도시 카이로에는 제대로 된 신호등조차 없다. 질주하는 차량들 사이로 목숨을 걸고 건널목을 건너야 하는 아찔한 매일.
5천 년 전에는 돌로 영원을 건설했던 민족이, 지금은 무질서와 혼돈 속에 방치되어 있다. 찬란했던 과거와 남루한 현재의 이 극명한 괴리. 피라미드의 미스터리보다, 어쩌면 이 몰락의 과정이야말로 이집트가 가진 진짜 불가사의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