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50세 아재였던 베트남, 그리고 오빠였던 시절
안나와 나는 2년 전, 베트남 냐짱 버스 안에서 처음 만났다. 옆자리에 앉은 여행자끼리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누고 저녁 식사까지 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안나는 내가 자기 아빠 정도로 보인다면서 내 나이를 50세쯤으로 생각했다. 한 번 보고 말 사이인데 굳이 나이 많은 것을 밝힐 필요는 없어서 맞다고 대답했다. 안나는 나를 '함께 여행할 만한 50세 아재' 정도로 생각하고 함께 여행을 시작했다.
3일간 매일 만나 함께 여행하다 보니 우리는 꽤 가까워졌다. 그때만 해도 나는 안나의 '오빠'에 가까웠다. 그녀는 나를 ‘한(Han)‘이라 부르며 따랐다. 우리는 젊은이들처럼 놀이공원에 가서 롤러코스터를 탔고, 해변 클럽에서 춤을 추었으며, 파라솔 아래서 종일 수영과 태닝을 즐기기도 했다. 헤어진 이후에도 왓츠앱과 인스타그램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2. 68세의 진실, '데오도시카(할아버지)'가 되다
작년 부다페스트에서 재회했을 때 나는 68세라고 알려줬다. 65세 이상은 대중교통이 무료인데 50세라면서 무임승차를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안나는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조지아는 68세면 완전히 늙어버린 모습이어서 노인 취급을 받는 문화이다. 또한 안나에게는 내 또래의 친척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 사실을 안 직후부터 안나는 나를 러시아어로 '데오도시카(Dedushka, 할아버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몇 달 후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만났을 때도 여전히 나는 할아버지였으며, 그녀는 부모님, 애인, 남사친 등 모두에게 나를 '한국 할아버지'로 소개했다. 나의 젊은 마음과 무관하게, 사회적 관계 속의 나는 완벽한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3. 카이로의 반전, 할아버지와 '오빠' 사이
안나가 나를 보러 카이로에 왔다. 나는 안나에게 '데오도시카(할아버지)'가 아닌 ’오빠(Oppa)‘로 부르라고 했다. 안나는 뜻도 모른 채 나를 오빠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며칠 후 '오빠'가 할아버지가 아닌 '애인(Honey)'이나 매력적인 연상 남성을 부르는 호칭임을 알게 되었다.
이후 안나는 다시 할아버지로 호칭을 바꾸더니, 기분 좋을 때만 가끔 '오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나의 배려가 고맙거나 기분이 좋을 때는 "오빠" 또는 "하니"라고 불렀다. 시간이 갈수록 오빠 호칭의 빈도가 늘어났고, 열흘쯤 지난 후에는 할아버지와 오빠가 반반쯤 섞이게 되었다.
호칭뿐만이 아니었다. 행동도 할아버지와 오빠 사이를 오갔다. 기분 좋은 관광지에서는 나를 오빠로 대하다가도, 귀가해서 흥분이 가라앉으면 다시 손녀가 되어 할아버지를 대하듯 했다. 공항, 비행기, 버스 안에서 졸리면 내 무릎을 베고 쌔근쌔근 잠을 잤다. 무방비하게 잠든 안나를 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이 아이는 지금 할아버지 무릎을 배고 있는 걸까, 오빠 무릎을 베고 있는 걸까?.
4. 알몸의 경계선, 보석을 바라보듯
룩소르 호텔에서 내 앞에서 수영복을 갈아입고, 알몸으로 왔다 갔다 할 때는 참 궁금했다. 얘가 나를 '성(性)과 무관한 할아버지'로 생각해서 이러는 건지, 아니면 '오빠' 앞에서 자신의 관능적인 모습을 과시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안나가 원하는 그 자리에 있기로 했다. 안나가 나를 할아버지라 생각하면 할아버지처럼, 오빠로 생각하면 오빠처럼 대응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안나가 나를 무엇으로 생각하든, 나는 안나를 보석처럼 바라만 볼 생각이다. 보석은 만지면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면서 그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니까.
만약 내가 스물여섯이었다면, 안나는 그저 성격 급하고 피곤한 여사친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흔의 내 눈에 비친 안나는 다듬어지지 않아 더 눈부신 원석(原石)이었다. 그녀가 내뿜는 제멋대로의 생명력, 내일이 없는 것처럼 좌충우돌하는 그 무모한 에너지. 그것은 내 인생에서 이미 사라졌다고 믿었던 '청춘'의 파편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보석이라 부른다. 가질 수는 없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낡은 시간을 환하게 비춰주는 보석이다.
5. 엄마 앞의 할아버지, 내 앞의 오빠
안나는 매일 엄마와 영상통화를 한다. 통화 중 엄마에게 내 모습을 보여주는데, 한 방에 함께 있는 나를 보고도 엄마는 전혀 의심 없이 "안나를 예뻐해 줘서 고맙다"며 연신 인사를 한다. 부모님을 포함한 안나 주변 모두에게 나는 '안전한 한국 할아버지'인 것이다. 아마도 조지아 70세처럼 한국의 70세도 남성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할아버지라 생각해서 일 것이다. 나는 아직 남자인데....
그러나 전화를 끊으면 안나는 종종 나를 다시 오빠처럼 대한다. 그 미묘한 분위기가 감지될 때면 '얘가 지금 감정적으로 고양되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나도 안나의 감정에 맞춰서 다정하게 그녀를 받아준다.
6. 나의 뮤즈, 그리고 가장 사랑한 남자
나는 여생을 여행 작가로 살기로 결정했다. 안나는 내 글에 좋은 소재이기도 하며, 잊고 있던 영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낮에는 천사 같은 나의 뮤즈였다가, 아침이면 잠이 덜 깨 심통을 부리는 하이드로 변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그녀의 젊음이 가진 미성숙함마저도 귀하게 관찰하게 된다.
어느 날, 문득 안나에게 물었다. "안나, 지금까지 만난 남자 중에 너를 가장 사랑했던 남자가 누구였어?" 안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오빠.“ 그러면 안나가 가장 사랑했던 남자는 누구였어? 또다시 대답한다 "오빠"
그 말을 듣고 순간 움찔했지만, 이내 안도했다. 이성적인 끌림을 떠나 내가 자신을 보호하고 아껴주는 그 마음에 깊이 감동하고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나는 카이로의 무질서한 거리에서 건널목을 건널 때나 짓궂은 남자들의 집적거릴 때 그녀를 지켜준다. 나는 때로는 할아버지, 때로는 오빠, 때로는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준다. 안나는 이를 사랑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그리고 이런 나의 모습에 고마워하는 마음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7. 파로스 등대와 요새처럼
오래도록 함께 여행하려면 안나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안나가 나를 할아버지로 생각하든, 가끔 오빠로 착각해 감정적이 되든 상관없다. 안나와의 추억은 차곡차곡 쌓여갈 것이며 언젠가 내가 노쇠해져서 움직이지 못할 때, 이 추억들은 나를 웃음 짓게 만드는 보약이 될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해변, 안나가 춤을 추며 "오빠, 오빠"를 외쳤던 그 성벽은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던 '파로스 등대'가 있던 자리다. 지금 찬란했던 등대는 사라지고 그 잔해 위에 견고한 요새(카이트베이 요새)가 들어서 있다.
문득, 나라는 존재가 안나에게는 저 성벽처럼 보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나의 육체적 젊음(등대)은 사라졌지만, 젊음 대신 쌓아 올린 지혜의 성벽(요새)이 안나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여행동반자 안나를 위해 기꺼이 튼튼한 성벽이 되어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