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 갠 오후, 신화의 땅으로
튀니스에 도착하자마자 구멍 뚫린 듯 퍼붓던 비가 며칠 만에 뚝 그쳤다. 하늘이 거짓말처럼 파랗게 열렸다. 이 틈을 놓칠세라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카르타고(Carthage)' 유적지로 향했다. 시내에서 차로 20분 남짓, 지중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야산(비루사 언덕) 위에 고대 제국의 흔적이 잠들어 있다.
택시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전설에 따르면 페니키아의 공주 '디도(Dido)'가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원주민들에게 "소가죽 한 장만큼의 땅만 팔라"고 했다고 한다. 원주민들은 비웃으며 수락했지만, 그녀는 소가죽을 아주 가늘고 긴 끈으로 잘라 길게 연결했고, 그 끈으로 이 넓은 비루사 언덕 전체를 둘러버렸다. 상업 민족 페니키아인의 비상한 머리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2. 잔잔한 지중해 아래 잠든 역사
전설의 언덕, 비루사(Byrsa)에 올랐다. 눈앞에 펼쳐진 지중해는 마치 호수처럼 잔잔하고 평화롭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이 바다는 인류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수많은 전쟁을 묵묵히 지켜본 목격자다.
과거 카르타고의 함선들이 수많은 해적을 물리쳤던 곳이자, 로마와 제국의 운명을 걸고 격돌했던 '피의 바다'다. 어디 그뿐인가. 근대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U보트와 연합군의 해군들이 치열하게 싸웠던 격전지이기도 하다. 지금 내 눈에는 평화로운 물결만 보이지만, 저 깊은 바닷속에는 카르타고와 로마의 함선들, 그리고 2차 대전 때 가라앉은 독일군과 연합군의 배들이 수장되어 있을 것이다. 역사의 무게에 아랑곳 하지않고, 무심한 파도만 찰랑거린다.
3. 나의 먼 조상(?), 한니발과 칸네의 전투
비루사 언덕의 폐허는 한니발의 운명이 짙게 배어 있는 비운의 현장이다. 카르타고를 지키려던 그의 마지막 고군분투가 로마의 칼날에 꺾이면서 이곳은 철저히 파괴되었고, 그 처절한 폐허 위로 로마의 새로운 영광이 덧칠해졌다.
사실 한니발은 나에게 남다른 존재다. 초등학교 시절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읽으며 그의 위대함에 푹 빠졌던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나는 그를 '나의 조상'으로 여겨왔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나는 '청주 한씨'다. 그리고 그는 '한니발'이다. 학창 시절 나는 친구들에게 "내 먼 조상 중에 로마를 벌벌 떨게 한 한니발 장군이 계시다"며 너스레를 떨곤 했다. 성이 같으니 조상이라는 억지 논리였지만, 그만큼 한니발은 내 인생 한구석에 늘 친근하게 자리 잡은 영웅이었다. 평생 마음 한구석에 품어온 나의 영웅, 그 비운의 종착지를 직접 지켜보니 가슴 한쪽이 아련해져 온다.
대학 시절 전쟁사 강의 첫 시간을 장식했던 주제도 바로 기원전 216년의 '칸네 전투(Battle of Cannae)'였다.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험준한 알프스를 넘는 기상천외한 작전으로 로마의 허를 찌르고, 칸네 들판에서 열세인 병력으로 로마 대군을 가두어 전멸시킨 천재적인 전략. 한니발은 비록 전쟁에서는 패배했을지언정, 전술가로서는 영생을 얻었다.
그가 그려낸 '초승달 대형'은 2,20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전 세계 사관학교에서 가르치는 포위 섬멸전의 교과서가 되었고, 훗날 칭기즈칸과 나폴레옹 같은 정복자들도 그의 전략을 교본 삼아 세계를 호령했다. 영광은 로마가 가져갔을지 몰라도, 전설은 한니발의 이름 뒤에 남았다. 비록 로마의 명장 스키피오와의 대결에서 패하고, 조국 카르타고는 지도상에서 지워지는 비운을 맞았지만, 한니발이 남긴 족적은 인류 역사에 깊고 굵은 한 획을 그었다.
4. 소금 뿌려진 땅, 그리고 푸닉 항구의 흔적
아린 마음을 뒤로하고 언덕을 내려와 해안가로 향했다. 그곳엔 로마 시대의 거대한 휴양 시설인 '안토니누스 목욕탕'이 웅장한 뼈대를 드러내고 있다. 해안가에 펼쳐진 잔해만으로도 당시 로마 제국의 화려했던 위세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이탈리아 본토 밖 전 세계 속주 중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는 이곳은 축구장 5개 넓이의 거대한 대리석 궁전이었다.
로마인들은 이 호화로운 공간에서 지중해를 바라보며 목욕과 사색을 즐겼을 것이다. 그런데 문득 쌩뚱맞은 의문 하나가 고개를 든다. 로마인들은 대체 왜 그토록 목욕에 집착했을까? 혹시 그들에게 집단 피부병이라도 있었던 걸까?
사실 로마인에게 목욕은 단순히 몸을 씻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정치와 비즈니스가 오가고, 예술과 철학을 논하던 오늘날의 '복합 문화 공간'이자 '소셜 네트워크'였다. 황제들은 거대한 목욕탕을 지어 시민들에게 무료로 개방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인심을 얻었다.
이제는 무너진 대리석 기둥들 사이로 차가운 바닷바람만 흐르지만, 그 웅장한 규모만으로도 당시 카르타고가 누렸던 부와 영화는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로마는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땅에 소금을 뿌려 저주했지만, 결국 그 폐허 위에 자신들이 누릴 가장 화려한 낙원을 세웠던 셈이다.
해변 길을 따라 고대 카르타고의 해군 기지였던 '푸닉 항구(Punic Port)'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목 곳곳이 유적이다. 땅만 파면 로마 시대의 돌덩이가 나오는 탓에, 현재의 사람들은 그 유적 위에 집을 짓고 살아간다. 과거와 현재가 샌드위치처럼 포개진 풍경이다.
30분쯤 걸었을까, 바닷물 속에 부채꼴 모양으로 떠 있는 축구장만 한 항구가 나타났다. 이곳이 바로 카르타고 전성기 시절, 지중해를 호령하던 해군 기지다. 지금은 파괴되어 흔적만 남았지만, 조감도를 보니 현대식 올림픽 경기장 수준이다. 2,200년 전, 그들은 마치 콜로세움처럼 둥근 건축물을 세우고 그 안에 배를 보관했다. 도크(Dock)에 배를 숨기고 정비했던 그들의 기술력은 현대의 눈으로 봐도 경이롭다. 하지만 그 대단했던 기술도, 영광도 지금은 찰랑이는 물결 위에 쓸쓸한 그림자로만 남아 있다.
5. 소금을 뚫고 피어난 생명력, 카르타고의 후예들
하지만 폐허 속에서도 생명은 다시 피어나는 법이다. 로마가 다시는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게 소금을 뿌렸던 그 죽음의 땅은, 이제 눈부시게 하얀 건물과 푸른 지중해가 어우러진 평화로운 마을로 변모했다. 죽음의 저주가 내렸던 곳이 튀니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품은 부촌(富村)이 되었다는 사실이 묘한 위로를 건넨다.
문득 이집트 카이로의 풍경이 스친다. 그곳에선 위대한 피라미드 아래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후손들을 보며 "저 찬란한 문명의 주인들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컸다. 하지만 이곳 튀니지는 확연히 다르다. 비록 국민소득은 높지 않을지 몰라도, 거리를 메운 사람들의 눈빛에는 생생한 활기가 서려 있고 도시 곳곳에는 보이지 않는 질서와 품격이 흐른다.
마치 지중해를 호령했던 카르타고 상인들의 개방적인 기질과 한니발의 진취적인 DNA가 2,200년의 세월을 건너 여전히 이들의 혈관 속에 흐르고 있는 것만 같다. 소금이 뿌려진 땅에서도 올리브 나무는 끈질기게 자라 열매를 맺듯, 이들 역시 역사의 풍파를 견디며 자신들만의 우아한 삶을 일궈냈다.
언덕을 내려오는 길, 한니발이라는 비운의 영웅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하지만 발걸음만큼은 한결 가볍다. 멸망한 것은 제국일 뿐, 그 기백을 닮은 사람들의 삶은 이 푸른 바다처럼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누룽지와 올리브, 그리고 로마의 역사가 흐르는 바다. 이들과 함께하는 나의 튀니스 방랑은 앞으로도 꽤나 뜨겁고 우아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