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거실에서 폴리아모리를 만나다
1. 70대 연륜이 감지한 '수상한 냄새'
튀니스 에어비앤비 숙소에 짐을 푼 첫날부터 뭔가 이상했다. 구조부터가 묘하다. 방이 3개인 아파트다. 안방은 남녀 커플이 쓰고, 작은방은 남자 한 명이 쓴다. 그리고 남은 빈방 하나에 내가 들어갔다. 상식적으로 남녀 커플이 사는 건 자연스럽다. 그런데 왜 다 큰 남자 한 명이 딴 방에 얹혀살까? 형제라기엔 서먹하고, 친구라기엔 묘하게 눈치를 보는 기류가 흐른다. "뭔가 있다." 70년 인생,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의 '촉'이 이상을 감지했다. 이건 평범한 셰어하우스가 아니다.
이 집의 공기를 지배하는 '그녀'의 외모부터 심상치 않다. 머리는 펑키 스타일이다. 눈두덩이는 주먹으로 한 대 맞은 것처럼 시커멓게 칠한 스모키 화장이다. 으슬으슬한 튀니지의 겨울비가 내리는데, 그녀는 허벅지가 다 드러난 초미니 스커트를 입고 거실을 활보한다. 마치 뉴욕의 행위 예술가 같기도 하고, 펑크 록 가수 같기도 하다. 그런데 날씬한 몸매와 지적인 눈빛이 묘한 아우라를 뿜어낸다.
2. 변호사 여왕벌과 전업주부 수컷들
알고 보니 그녀의 직업은 '변호사'였다. 그것도 아주 유능한 인텔리다. 그녀는 아침 일찍 병원으로 출근해서 저녁 6시가 넘어 퇴근한다. 그렇다면 집에 남은 두 남자는? 나는 처음 두 남자가 디지털 노마드 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여자가 출근하면 거실 소파에 늘어져 하루 종일 컴퓨터를 보거나 빈둥거린다. 그러다 빨래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저녁 요리를 한다. 완벽한 '가모장(家母長) 사회'다. 능력 있는 여왕벌 한 마리가 두 마리의 수컷을 먹여 살리는 구조인 것이다.
그녀는 나에게 유독 친절했다. "불편한 건 없나요?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요." 과잉 친절이다 싶을 정도다. 그런데 그때마다 옆에 있는 동거남(A)의 표정이 썩 좋지 않다. '이 자식이 질투하나?' 처음엔 단순히 늙은 여행자에 대한 질투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나의 순진한 생각이었다.
3. 거실에서 벌어진 키스, 그리고 충격의 '폴리아모리'
사건은 거실에서 터졌다. "미스터 '한', 우리 카드놀이 하는데 같이 해요." 그녀의 제안에 나는 노트북을 덮고 그들 틈에 끼었다. 게임이 무르익을 무렵,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여자가 갑자기 옆에 앉은 남자(B)의 목을 끌어안더니 진하게 키스를 하는 게 아닌가! 여기까진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그 남자(B)는 안방을 같이 쓰는 동거남(A)이 아니었다! 작은방을 쓰는 '다른 남자'였다.
더 충격적인 건 동거남(A)의 반응이다. 자기 여자가 눈앞에서 다른 남자와 입을 맞추고 있는데, 마치 TV를 보듯 무표정하게 쳐다만 보고 있다. 화를 내지도, 놀라지도 않는다. 그저 자기 차례가 오자 카드를 한 장 낼뿐이다.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 순간 내 머릿속 회로가 핑핑 돌며 상황을 분석했다.
카드놀이가 끝나자 나는 다시 탁자로 옮겨 노트북을 펼쳤고, 여자는 동거남(A)과 팔짱을 끼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30분쯤 있으니 여자가 나오더니 다시 남자(B)와 와인을 마시며 애정 행각을 한다. 그제야 퍼즐이 맞춰졌다. 이 집은 '폴리아모리(Polyamory, 비독점 다자 연애)'의 실험실이었다. 여왕벌 한 명이 두 명(혹은 그 이상)의 수컷을 거느리고, 남자들도 그 관계를 쿨하게(?) 인정하며 공생하는 기묘한 생태계.
어제저녁, 그녀가 나에게 물었었다. "은퇴하셨어요? 그럼 55세는 넘으셨겠네요?" 그때는 그냥 나이를 묻는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건 '일벌 채용면접 탈락 통보'였다. 내가 20년만 젊었어도 이 기괴한 왕국의 세 번째 일벌이 될 뻔했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아쉽다 해야 할지!)
4. 차도르와 비키니, 이슬람의 이중성
이곳은 인구의 99%가 무슬림인 튀니지다. 낮에는 모스크에서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는 기도 소리가 경건하게 울려 퍼진다. 하지만 이 거실에서는 파리의 어느 뒷골목보다 더 파격적인 애정 행각이 벌어지고 있다.
문득 튀르키예 여행 때의 기억이 겹쳐진다. 공원에서 눈만 내놓은 검은 차도르를 입고 사진을 찍던 여인들. 그녀들이 인적이 드문 곳에 가더니 갑자기 차도르를 훌러덩 벗어던졌다. 그 안에는 놀랍게도 수영복 수준의 노출 의상이 감춰져 있었다. 노출 심한 옷을 입고 걷는 그녀들을 보면서, 검은 천 속에 욕망을 숨기고 사는 그들의 이중성에 쓴웃음이 나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곳 튀니스의 거실도 마찬가지다. 엄격한 율법의 나라에서, 가장 자유분방하고 퇴폐적이기까지 한 '동물의 왕국'이 펼쳐지고 있다. 튀니지는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매력적이고도 위험한 '반전의 나라'다.
5. 지퍼 내린 여왕벌과의 심층 면접
내 앞에서 두 남자를 번갈아 안으며 와인을 마시던 여왕벌. 동거남(A)을 달래서 먼저 재우더니, 작은방 남자(B)와 거실 내 앞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을 교환하며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 갑자기 나를 쳐다보며 말을 건다. "와인 좋아하세요?" "네, 좋아합니다." "그럼 이리 와서 앉아요."
여왕벌의 호출이다. 내가 탁자에 앉자, 옆에 있던 일벌(B)이 내 잔에 와인을 따라주더니 눈치 빠르게 방으로 사라진다. 거실에는 나와 여왕벌, 단둘만 남았다. 순간 긴장감이 흘렀다. 이게 뭐지?
그런데 그녀의 옷차림이 문제다. 앞에 지퍼가 달린 타이트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지퍼를 명치까지 과감하게 내리고 있다. 그녀는 노브라였고, 내 눈앞에 여왕벌의 탐스러운 가슴 곡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저거 보면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나는 애써 시선을 외면하며 고개를 45도 각도로 돌렸다. 그녀는 나의 당황함을 즐기는 듯 와인 잔을 돌리며 입을 뗐다.
"사실 며칠간 작가님을 지켜봤어요." 그녀의 고백이 시작되었다. 자기는 돈이 궁해서 에어비앤비를 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전 세계에서 오는 자유로운 영혼들과 대화하고,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문을 열어둔 것이라고. "며칠 지켜보니 작가님은 대화가 통할 것 같아서 오늘 초대한 거예요." 내가 불편한 상황에서도 내색도 안 하고 며칠간 거실에 앉아 노트북으로 글 쓰고 있는 모습을 보고 대화가 통할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상황파악이 된다. 나이가 많아서(최대 55세) 일벌 후보에서 탈락시키려 했는데, 지켜보니 '지적인 일벌'로는 쓸만해서 면접을 보겠다는 의미 같았다. 그런데 이 면접, 난이도가 상당하다. 그녀는 가슴을 반쯤 내놓은 채, 입으로는 세계정세를 논하기 시작했다.
6.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그녀는 인텔리답게 박학다식했다. 질문의 주제가 묵직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부터 시작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 이란과 미국의 줄다리기, 급기야 한국의 남북 관계와 통일 전망까지 물어본다. 나는 시선을 그녀의 목 아래로 떨어뜨리지 않으려 사력을 다하며, 마치 대학 입시 면접을 보는 학생처럼 꼿꼿하게 앉아 대답했다.
"한국의 분단 상황은 복잡하죠. 하지만 최근의 국제 정세를 볼 때..."내가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 열변을 토했다. 사실 국제 문제나 남북문제는 내가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적도 있어서 말빨로 밀리지 않는 분야다. 영어가 짧아 중간중간 버벅대긴 했지만,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그녀의 질문에 성실히 답했다.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가 흡족한 미소를 짓는다. "당신, 꽤 흥미로운 사람이네요." 합격이다. 그녀는 며칠 후 집에서 나를 위한 파티를 열겠다고 제안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와인은 내가 준비하겠다"라고 답했다.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문득 궁금해진다. 그녀는 왜 굳이 지퍼를 내리고 면접을 봤을까? 아마도 그것은 그녀 나름의 '담력 테스트'가 아니었을까?. 여자의 육체라는 유혹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지적인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지 확인하는, 여왕벌만의 고차원적인 테스트.
7. 에어비앤비의 비밀과 나의 생존기
이제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에어비앤비 공용 숙소, 특히 여주인이 있는 곳은 주인이 손님을 철저하게 '선택' 하는 시스템이다. 그녀가 예약 당시 나에게 꼬치꼬치 질문을 하고, 사진을 보내라고 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나는 그때 10년 전에 찍은, 아주 잘 나온 '회춘 사진'을 보냈었다. 그 사진 속의 '젊고 잘생긴 모습(지금에 비해서)'이 1차 서류 전형을 통과시킨 비결이었던 셈이다.
내가 그녀 집을 신청 했을 때 그녀는 "룸메이트, 남자친구와 셋이 사는데 괜찮겠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룸메이트가 여자일 거라 생각했는데, 와서 보니 룸메이트도 남자 애인도 모두 남자였다. 남자 둘과 사는 '폴리아모리 가족'이었고, 그들은 끊임없이 외부에서 신선한 수컷의 피(일벌)를 수혈받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일단 면접에 통과했다. 며칠 후 열릴 파티에서는 또 어떤 충격적인 광경이 벌어질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마치 미지의 보물섬 탐험을 앞둔 소년처럼, 긴장과 설렘,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이 교차한다.
8. 독자님들께 보내는 채용 공고
내 글을 읽는 독자들 중 "에이, 설마 소설 아니야?" 하며 반신반의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단언컨대, 이것은 100% 리얼 다큐멘터리다. 날씨 좋고, 물가 싸고, 500원짜리 바게트가 있는 튀니스. 이곳에서 지적인 여왕벌의 '일벌 알바'를 하고 싶은 3040 건장한 남성분이 계신다면 연락 바란다. 구독자 중 가장 튼튼하고 열린 마음을 가진 한 분을 선정해서, 이 집의 주소를 은밀히 알려드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