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프리카의 장마와 명품 도시의 두 얼굴
튀니스를 떠나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 도착했다. 튀니스에 도착한 날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더니, 이곳 카사블랑카 역시 도착한 날 밤부터 비가 들이붓는다. 나는 아프리카는 사막이라 비가 안 오는 줄 알았는데 한국의 장마철처럼 퍼붓는다. 뉴스에서는 갑자기 불어난 물로 저수지를 개방하여 이재민이 10만 명이나 발생했고, 구조대가 실종자를 찾는 심각한 상황을 보여준다. 1만 년 전만 하더라도 사하라 사막이 밀림이었다고 하니, 당시에도 지금처럼 비가 많이 왔었나 보다.
카사블랑카는 오래전 유명한 영화 덕분에 알게 된 도시이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추적을 피해 미국으로 탈출하려던 남녀, 그리고 그들의 중간 기착지였던 이곳에서 벌어진 가슴 시린 사랑 이야기. 가수 최헌이 이 영화를 모티브로 한 번안곡 <카사블랑카>를 불러 베이비부머들에게는 더욱 익숙한 이름이다.
나는 이곳에서도 호스트와 함께 사는 공용 숙소를 선택했다. 튀니스에서는 젊은 커플의 아파트에서 독특한 경험을 했는데, 이번에는 5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은퇴 부부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계속되는 비 때문에 시내 도보 구경은 미루고, 빗속의 트램을 타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도시 이곳저곳을 눈에 담았다. 날씨가 좋아지면 저 북적거리는 인파 속으로 들어가 도시의 속살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어느 도시를 가든 먼저 트램이나 버스를 타고 전반적인 윤곽을 본 후 골목을 뒤진다. 숲을 먼저 본 후 나무를 보는 나만의 여행 방식이다.
모로코의 국민소득은 4천 불 정도다. 지난달 다녀온 이집트, 튀니지보다는 약간 높고 베트남과 비슷한 수준이다. 보통 건물이나 도로 등 도시 인프라, 행인들의 옷차림은 소득에 비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카사블랑카는 다르다. 소득은 4천 불이지만 눈에 보이는 외형은 1만 불 이상의 국가와 비슷하다. 국민소득 8천 불인 조지아나 1만 2천 불인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으며, 2만 불이 넘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도시 외곽의 신도시는 흡사 한국의 판교 신도시 급이다. 깊숙이 들어가면 빈곤이 보일지 모르나 겉모습은 완연한 중진국이다. 트램과 버스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어 이동도 편리하다. 인프라는 훌륭한데 물가는 저렴하다. 마트는 동남아 수준이고, 식당의 간단한 식사는 5~6천 원 선이니 주머니 가벼운 여행자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도시다.
빗속의 거리를 걷다 눈을 의심케 하는 간판을 발견했다. 'MUMUSO - KOREAN LIFE STYLE'. 모로코, 그것도 카사블랑카 한복판에서 '한국의 라이프 스타일'을 파는 가게라니. 반가운 마음에 들여다보니 화장품부터 인형, 잡화까지 한국어 포장지를 두른 물건들이 가득하다. 가게 안은 현지 젊은이들로 북적인다.
알고 보니 이는 한국 브랜드를 표방한 중국 기업의 저가 생활용품점이다. 진짜 한국 제품은 아니지만, 물건을 팔기 위해 'KOREA'라는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다. 쓴웃음이 나오려다 이내 묘한 자부심으로 바뀐다. 과거 우리가 미제(USA)나 일제(JAPAN)를 최고로 치며 흉내 냈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조차 물건을 팔기 위해 '한국인 척'을 해야만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비록 짝퉁일지라도, 아프리카 대륙 끝자락에서 만난 'KOREA'의 위상은 나쁘지 않다.
2. 태국 여주인과의 기묘한 '이중생활'
이곳은 이슬람 국가이긴 하지만 튀니지처럼 프랑스 식민지였던 탓에 중동 국가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여자들이 머리에 히잡을 두르고 다니지만 훨씬 자유로워 보인다.
기온은 10~20도로 한국의 이른 봄 같지만, 계속되는 비와 부실한 난방 탓에 집안은 으슬으슬하다. 아침 식사로 누룽지를 끓이는데 여주인이 코를 킁킁거리며 나타났다. 익숙한 얼굴, 태국 사람이다. 프랑스 유학 시절 모로코 남자를 만나 국제결혼을 했단다. 남편이 은퇴하자 고향인 이곳으로 돌아와 남는 방으로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며 노후 자금을 벌고 있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주인은 모로코 땅에서 중년의 동양 남자를 본 게 반가운 모양이다. 고향 사람을 만난 듯 내 앞에서 말이 많아진다. 내 누룽지 냄새가 좋다며 코를 벌름거리고, 태국은 가봤냐며 눈을 반짝인다. 여러 번 다녀왔다고 했더니 아이처럼 좋아한다. 불어, 아랍어,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을 보니 상당한 인텔리다.
대화 도중 남자 주인이 나왔다. 첫날 인사를 나눴기에 나는 반갑게 목례를 건넸다. 그 역시 나에게는 여유로운 미소로 화답한다. 그런데 그 순간, 집안 공기가 싸늘하게 변했다.
방금 전까지 내 앞에서 명랑하게 웃던 여주인이 갑자기 정색하더니,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입을 다물고 황급히 주방 구석으로 몸을 돌린다. 남편이 소리를 지른 것도, 화를 낸 것도 아니다. 그저 거실에 나타났을 뿐인데 그녀는 순식간에 '명랑한 태국 여성'에서 '그림자 같은 무슬림의 아내'로 쪼그라들었다.
남편은 나에게 매우 훌륭한 호스트다. 최근의 기상이변을 지구온난화와 연결해 설명하고, 유창한 영어로 모로코의 역사를 논하는 상당한 지식인이다. 과거 자존심 강한 프랑스인들이 영어를 거부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그는 확실히 깨어있는 엘리트다.
하지만 그 '깨어있음'은 오직 남자 손님인 나에게만 유효한 듯하다. 그는 뼛속까지 보수적인 무슬림 가장이다. 그가 거실 소파에 앉아 묵직한 침묵을 지키고 있으면, 아내는 감히 외간 남자와 눈을 마주치거나 사적인 대화를 나눌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나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지적인 그 미소가, 아내에게는 보이지 않는 감옥의 창살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녀도 그것을 알기에 소스라치게 놀라 얼음이 되었으리라. 나 역시 그 서늘한 권위를 거스를 수 없어, 남편 앞에서는 그녀를 철저히 외면하기로 했다. 우리는 마치 남편 몰래 바람피우는 남녀처럼, 주방에서 둘이 만나면 반갑게 속닥이다가 남편의 인기척이 들리면 서로 모르는 체 외면하는 기묘하고 숨 막히는 이중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의 '주방 밀회'는 묘한 긴장감 속에 계속된다. 남편이 거실에서 왕처럼 앉아 TV를 볼 때면, 그녀는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타진 냄비만 닦는다. 그 뒷모습이 어찌나 작고 위태로워 보이는지. 하지만 그녀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설거지를 하면서도 온 신경은 내 쪽을 향해 있다는 것을 눈치로 안다. 그것은 이역만리 타국에 와서 엄격한 가부장제의 그늘 아래 살아가는 그녀가, 구수한 누룽지 냄새를 풍기는 동양인 오라비에게 보내는 무언의 구조 신호이자 연대감일 것이다.
3. 탑골공원 같은 카페, 그리고 검은 봉지의 위로
비는 그칠 기미가 없다. 강제적인 '집콕' 생활이 길어지니 먹는 즐거움이라도 찾아야겠다 싶어 우산을 쓰고 나갔다. 들판의 한가로운 소들을 보며 육즙 가득한 스테이크를 상상했으나, 식당 메뉴판은 온통 닭고기뿐이다. 간혹 있는 소고기 요리는 타이어처럼 질기거나 정체불명의 동그랑땡(케프타)이 고작이다. 알고 보니 그 소들은 고기가 아니라 우유를 짜기 위한 젖소들이란다. 늙어 죽기 직전에야 식탁에 오르게 되니 타이어처럼 질긴 것이다. 카이로와 튀니스에 이어 이곳에서도 단백질은 닭으로만 해결해야 할 처지다.
노트북을 둘러메고 인근 카페를 찾았다. 카페가 우리나라 편의점만큼이나 많다. 그런데 풍경이 묘하다. 늙수그레한 남자들이 쓴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하염없이 길가를 쳐다보고 앉아있다. 튀니스에서도 봤던 모습인데 카사블랑카는 더하다. 마치 서울 탑골공원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노인들처럼, 이곳 남자들은 카페에서 천 원짜리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종일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소일하는 듯하다. 여자는 찾아볼 수 없는, 남자들만의 기이한 카페 문화다.
비 오는 저녁, 술 한 잔이 간절하다. 하지만 이곳은 술이 금기시되는 땅. 대형 마트를 뒤지고 뒤져 구석진 '비밀의 방(Liquor Shop)'을 찾아냈다. 남들 눈에 띌세라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준 와인 한 병을 품에 안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빗줄기는 더 굵어졌다. 추위를 피해 아프리카로 피난 왔는데, 줄기찬 겨울비에 젖은 내 모습이 조금 처량하다.
4.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방 안에서 와인을 따르니 적막했던 공기가 조금 부드러워진다. 거실 너머에는 프랑스에 있는 자녀들과 태국의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남편의 눈치를 보는 태국 여인이 있고, 이 닫힌 방문 안에는 한국을 떠나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아프리카를 어슬렁거리며 와인을 마시는 방랑자가 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카사블랑카'를 가슴에 품고, 각자의 비를 맞고 있는 셈이다.
최헌의 노래 가사처럼 카사블랑카는 "아픈 이별 입맞춤이 얼룩져 있는" 도시가 아닌, "말 못 할 그리움을 품은 사람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정거장" 같다.
내일 아침에는 눈치 보지 말고 그녀에게 누룽지 한 그릇을 권해봐야겠다. 비록 남편이 나오면 또다시 모르는 척 돌아서겠지만, 그 뜨끈한 국물 한 모금이 그녀의 헛헛한 속을, 그리고 나의 고독을 잠시나마 달래줄 수 있을 테니까.
비 내리는 카사블랑카의 밤이 깊어간다. 영화 속 험프리 보가트처럼 중절모는 없지만, 창문을 때리는 빗방울을 안주 삼아 혼자 건배를 든다.
"Here's looking at you, kid."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 이말은 영화 카사블랑카의 유명한 대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