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극장식 좌석에 앉아 '거리'라는 영화를 보는 남자들
나는 해외 살이 중 많은 시간을 카페에서 보낸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첫 며칠간은 관광객처럼 도시를 둘러보지만, 그 이후에는 아침 식사 후 노트북을 둘러메고 인근 카페로 향한다. 그곳은 나만의 이동식 사무실이다. 글을 쓰기도 하고, AI와 노닥거리기도 하고, 유튜브로 세상 돌아가는 꼴을 살피기도 한다.
지금까지 내가 거쳐 간 수많은 나라의 카페 풍경은 대개 비슷했다.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에 따라 건물의 때깔과 인테리어의 차이만 있을 뿐, 커피와 빵을 팔고 남녀노소가 섞여 대화하는 풍경이다. 작년까지 한 달 살기를 했던 아시아와 유럽 15개국 모두가 그러했다.
그런데 올해 1월부터 돌고 있는 북아프리카 3국(이집트, 튀니지, 모로코)은 이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 특히 모로코의 심장, 카사블랑카의 카페는 기이하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시선'의 방향이다. 이곳의 카페 야외 탁자는 극장의 의자처럼 모두 차도를 향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실내 창가 좌석조차 모두 길거리를 향해 있다. 손님들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앉아 지나가는 차와 사람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마치 극장에서 스크린을 보듯, 그들은 '거리'라는 이름의 24시간 라이브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 같다.
2. 여자가 사라진 공간, 그곳은 카사블랑카의 '탑골공원'
그 모습은 한국의 탑골공원 풍경과 묘하게 겹친다. 할 일 없는 노인들이 종일 우두커니 앉아 시간을 죽이는 그 모습. 이곳 카페에 앉아 있는 이들도 대부분 늙수그레한 5060 중년 남성들이다. 갈 곳 없는 은퇴자들이 카페를 경로당 삼아 하루를 보내는 듯하다.
더욱 기이한 건 앉아 있는 사람이 모두 남자다. 카이로와 튀니스에서는 간혹 히잡 쓴 여인들도 보였는데, 카사블랑카 로컬 카페에서는 여자 손님을 단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대여섯 곳을 기웃거려 봐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여자들은 다 어디 가고 시커먼 남자들만 앉아있을까? 집주인에게 물었더니 카페는 남자들의 공간이고 여자는 집안에서 지낸단다. 남자가 낮에 집에 있으면 한국의 '삼식이'처럼 여자들에게 바가지 긁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눈 뜨면 무조건 나와야 하는데, 갈 데 없는 실직자나 은퇴자들은 한국 노인들이 탑골공원을 가듯이 카페로 도피한단다. 카사블랑카 카페는 갈 곳 없는 남자들의 도피처이자 안식처인 셈이다.
3. 1층의 노인과 2층의 청춘 사이
내가 찾은 카페는 꽤 크고 현대적인 2층 카페다. 1층은 현지 노인들이 천 원짜리 커피 한 잔 시켜놓고 티브이를 보거나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탑골공원'이고, 2층은 젊은이들이 핸드폰을 보거나 노트북을 펴놓고 공부하는 '스타벅스'다.
70세의 나는 1층에서도 고참급이지만, 2층의 젊은이들 사이에 끼어 앉는다. 한국을 떠난 지 두 달, 염색물이 빠져 머리는 하얗고 면도를 안 해 텁수룩한 내 모습은 영락없는 노인이지만, 탑골공원을 피해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두드린다. 오사마 빈 라덴을 닮은 털북숭이 젊은이들이 이방인 노작가를 신기한 듯 쳐다본다.
나도 한 번은 1층 탑골공원에서 노인들 틈에 섞여 멍하니 거리를 쳐다보았다. 차들이 지나가고 다양한 복장을 한 행인들이 오간다. 그것을 한동안 쳐다보니 폰으로 넷플릭스를 보는 2층의 젊은이보다, 살아 움직이는 도시의 생동감을 관찰하는 노인들의 '멍 때리기'가 어쩌면 정신 건강에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 사약처럼 쓴 '향신료 커피'와 너구리 굴의 낭만
이곳의 커피는 사약처럼 쓰다. 아메리카노를 시키면 진한 원액 한 컵과 생수 한 통을 준다. 20년 넘게 한국의 연한 아메리카노에 익숙한 나에게는 속이 뒤집어지는 쓴맛이다. 한약 마시듯 한 모금 들이켜고 급히 생수를 마셔서 놀란 위장을 달래야 한다. 왜 이리 맛이 험한지 물었더니 모로코 커피는 원두에 계피, 후추, 생강 등 향신료를 첨가하여 세계에서 가장 독하고 걸쭉하다고 한다. 과거 모로코인들의 보약이었던 셈이다.
이곳은 실내 흡연이 자유롭다 못해 권장되는 분위기다. 너구리 굴처럼 자욱한 담배 연기. 비흡연자라면 질색하겠지만, 한때 골초였던 나는 묘한 향수를 느낀다. 2000년대 이전에는 우리도 다방과 식당, 심지어 비행기 안에서도 담배를 피워대던 그 '야만의 시대' 혹은 '낭만의 시대'였다. 젊은 시절 카페에서 폼 잡고 담배피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추억이 느껴진다.
좋은 점은, 천 원짜리 커피 한 잔이면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눈치를 주지 않는다. 심지어 밖에서 사 온 피자를 꺼내 먹어도 "본 아페티(Bon Appétit, 맛있게 드세요)"라며 웃어준다.
5. 갱단 사무실 같은 '목욕탕 남탕', 이것이 진짜 여행의 맛
여자가 없는, 오로지 남자들만 득실거리는 카페에 오래 앉아 있다 보니 흡사 '목욕탕 남탕'에 와 있는 기분이다. 한국에서 이렇게 철저히 남녀가 분리된 곳은 목욕탕뿐이다. 아프리카의 까무잡잡한 피부에 털북숭이 사내들이 모여 앉아, 쓴 커피를 씹어 삼키며 줄담배를 피워대는 풍경이 갱단 사무실에 와 있는 것처럼 으스스하다.
카이로의 카페에서는 히잡 쓴 여대생들 틈에서 '카공'을 즐기는 낭만이라도 있었는데, 여기는 칙칙하고 매스꺼우며 으스스하다. 하지만 "이 텁텁하고 거친 남탕의 맛, 이 또한 여행이 주는 색다른 별미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