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에 띄운 신의 궁전, 그 찬란하고 슬픈 아이러니

카사블랑카의 '하산 2세 모스크'

by 야간비행

1. 인간이 자연을 넘어선 순간

인간이 만든 그 어떤 것도 대자연의 웅장함을 이길 수 없다고 믿었다. 그 오만했던 생각이 깨진 건 3년 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이었다. 그때 나는 인간의 손끝에서 탄생한 것이 때로는 신이 만든 자연을 능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당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온몸을 휘감던 전율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전까지 톨레도, 세비야 등 스페인의 내로라하는 성당들을 보았지만, 내 감상은 그저 "야, 웅장하네. 멋있다" 정도였다. 그것은 권력의 과시처럼 보였을 뿐, 내 영혼을 건드리진 못했다. 하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달랐다. 그 빛의 숲에 들어서자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믿지도 않는 신에게 경배를 올리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왔다.


그리고 오늘, 모로코 카사블랑카의 '하산 2세 모스크' 안으로 들어섰을 때, 나는 3년 전 바르셀로나에서 느꼈던 그 전율을 다시 마주했다. 세계 최고라는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나 블루 모스크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잔잔한 감동이었다.

KakaoTalk_20260210_034452932_02.jpg 하산 2세 모스크 내부 모습

2. 대서양을 항해하는 거대한 신의 배

카사블랑카 구시가지를 지나 바닷가로 들어서면 멀리서부터 하산 모스크의 미나렛(첨탑)이 보인다. 높이가 무려 210m, 오랫동안 세계에서 가장 높은 종교 건축물이었다는 그 위용은 실로 압도적이다. 모스크는 바닷가에 정박한 거대한 크루즈 선처럼 보인다. "신의 보좌는 물 위에 있다"는 코란의 구절에서 영감을 얻어 부지의 절반 이상을 바다를 매립해 만들었다고 한다. 거친 파도가 몰아칠 때면, 이 거대한 사원은 마치 대서양을 항해하는 '노아의 방주'처럼 보인다.


입구를 들어서면 8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광장이 펼쳐진다. 금요일 예배 시간이면 모스크 내부는 물론이고 이 넓은 광장까지 신자들로 빽빽하게 들어찬다. 그 인파를 뚫고 내부로 들어가면, 이번에는 60m 높이의 천장이 주는 거대한 공간감에 압도당한다. 아파트 20층 높이의 천장 아래, 2만 5천 명을 품을 수 있는 이 공간은 차라리 소우주에 가깝다.


3. 1만 명의 장인이 깎아낸 '빛의 예술'

내부는 수백 개의 기둥이 천장을 받치고 있다. 얼핏 보면 거대한 실내 체육관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숨이 막힐 듯한 정교함이 드러난다. 광활한 내부 전체가 마치 보석 세공사가 다이아몬드를 깎듯 정밀한 조각과 문양으로 채워져 있다. 그 세공들은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고, 기품이 있으면서도 순박하다. 바닥과 기둥의 대리석, 벽과 천장의 색상이 완벽하게 조화되어 마치 신의 포근한 품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형상도, 가구도 없이 오로지 벽과 기둥, 천장만으로 이토록 신성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니.


건축에 사용된 대리석, 삼나무, 석고, 화강암 등 모든 재료는 모로코 땅에서 난 천연 재료들이다. 프랑스 건축가가 설계했지만, 그 안을 채운 것은 모로코 전역에서 모인 1만 명의 장인들이다. 그들은 6년 동안 밤낮으로 교대하며 손으로 직접 깎고 붙였다. '현대적 세련미' 속에 '전통의 혼'이 살아있는 이유다.


4. 천재의 파격과 장인의 기도: 미스코리아와 미스 춘향

나를 무릎 꿇게 만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하산 2세 모스크. 두 건축물은 '신을 향한 찬가'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노래를 부르는 방식은 다르다.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안토니 가우디'라는 불세출의 천재가 혼자서 지휘하는 웅장한 오케스트라라면, 이곳 하산 2세 모스크는 이름 없는 '1만 명의 장인'들이 한 목소리로 부르는 낮은 합창과도 같다.


가우디의 성당은 파격적이다. 직선을 거부하고 춤추듯 휘어지는 곡선, 총천연색 스테인드글라스로 쏟아지는 빛의 향연은 보는 이의 혼을 쏙 빼놓는다. 화려한 드레스를 차려입고 무대 위에서 조명을 독차지하는 '미스코리아'의 도발적인 아름다움이다.


반면, 모로코 장인들이 빚어낸 모스크는 절제되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오직 신을 위해 타일을 깎고 석고를 다듬었다. 수만 개의 타일 조각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려 만들어낸 기하학적 문양은, 화려한 화장기 없이도 기품이 흘러넘치는 '한복 입은 미스 춘향'의 단아한 자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더하고 더해서' 만들어낸 풍요로움이라면, 하산 2세 모스크는 '반복하고 절제해서' 도달한 평온함이다. 가우디의 파격이 뇌를 때리는 충격이라면, 모로코 장인들의 정성은 가슴을 적시는 울림이다. 나는 미스코리아의 화려함에도 취했었지만, 미스 춘향의 그 그윽하고 깊은 눈매 같은 모스크의 아름다움 앞에서 비로소 마음의 옷깃을 여미게 된다.


5. 쇳물 대신 올린 신전, 그 슬픈 경제학

이 위대한 건축물 앞에서 나는 문득 현실적인 숫자를 떠올린다. 이 모스크는 1986년 첫 삽을 뜨고 1993년 완공되었다. 당시 국민소득 800불도 안 되던 이 가난한 나라에서, 무려 8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8억 달러. 한국으로 치면 경부고속도로를 서너 개 뚫거나, 포항제철 초기 공장을 건설할 수 있는 천문학적인 돈이다. 국왕의 정치적 야심과 국민 통합을 목표로 전 국민에게 성금을 걷었고, 당시 집집마다 거의 1년 치 소득을 내야 했다고 한다.


모로코의 1980년대는 한국의 1970년대와 비슷했다. 보릿고개는 넘겼으나 여전히 배고픔이 일상이었고,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 앞에 개인의 삶은 부속품에 불과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선택은 달랐다. 우리는 그 돈을 쪼개 쇳물을 끓이고 길을 내어 '이승에서의 풍요'를 꿈꿨고, 그들은 그 돈을 모아 바다 위에 하얀 성소를 올려 '저승에서의 구원'을 기도했다.


한국은 질주하여 40년 후 3만 5천 불의 선진국이 되었는데, 모로코는 여전히 4천 불 언저리의 개발도상국에 멈춰 있다. 참으로 잔인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6. 현생의 가난과 내세의 천국

카페에 앉아 쓴 커피를 마시며 우두커니 거리를 바라보던 카사블랑카의 노인들. 그들은 아마 40년 전, 자신의 1년 치 피땀을 이 모스크의 대리석 한 조각을 위해 기꺼이 바쳤을 것이다. 현생의 가난을 견디며 내세의 천국을 꿈꿨던 그들의 간절함이 이 화려한 모스크를 지탱하고 있는 기둥일지도 모른다.


하산 모스크는 바다 위에 떠 있는 구조라 대서양의 거친 소금바람에 노출되어 부식이 빠르다고 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보수 공사를 해야만 그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다. 마치 가난한 이들의 끝없는 희생을 요구하듯, 모스크는 오늘도 짠 내 나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 있다. 그 모습이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또 뼈아프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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