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숙소에 별점 5점을 주기로 했다

바르셀로나 에어비앤비가 알려준 평점의 비밀

by 야간비행

1. 한 달 200만 원, 가성비 방랑자의 숙소학

해외 장기 체류를 할 때마다 내 집은 언제나 에어비앤비다. 한 달 숙소 예산은 200만 원 이하, 하루 7만 원꼴로 상한선을 정해두었다. 이 금액이면 물가 싼 동남아에서는 수영장이 딸린 최고급 레지던스를 빌려 호사를 누릴 수 있지만, 살인적인 물가의 유럽 도시에서는 언감생심이다. 결국 화장실과 주방을 공유하는, 소위 '방만 빌리는' 현지인 민박을 구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이 공용 숙소가 꽤 마음에 든다. 현지인과 부대끼며 그들의 진짜 삶을 엿볼 수도 있고, 운이 좋으면 배낭을 멘 다른 여행자들과 거실에서 맥주 한 잔을 나누며 동행이 되기도 하니까. 나 홀로 여행객에게는 가성비와 외로움을 동시에 해결해 주는 최고의 선택지다. 숙소를 고를 때는 위치와 편리성을 최우선으로 보는데, 수많은 사람이 남긴 평점과 리뷰를 꼼꼼히 교차 검증하면 대체로 실패하는 법이 없다. 이번 바르셀로나 숙소를 고를 때도 당연히 그랬다.


2. 별점 5점 만점의 배신

지금 머무는 바르셀로나 숙소는 집주인과 함께 사는 공용 형태다. 예약 전 리뷰를 읽어보니 칭찬 일색에 평점이 거의 만점에 가까웠다. 의심의 여지없이 결제를 누르고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그런데 웬걸, 현관문을 여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위치만 그럭저럭 괜찮을 뿐 시설은 엉망이고 집안은 지저분했다. 유럽의 낭만적인 아파트는커녕, 집 안을 가득 채운 낡고 조잡한 싸구려 살림살이들을 보고 있자니 여기가 스페인인지 라오스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주인이 저장강박증이라도 있는 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싱크대 찬장, 서랍, 욕실 선반 할 것 없이 온갖 잡동사니가 꽉꽉 들어차 있어 내 물건 하나 올려둘 틈이 없었다. 흡사 쓰레기장에서 주워 온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낡고 빛바랜 물건들이었다. 정육점처럼 부엌칼이 열댓 개나 꽂혀 있었지만 제대로 드는 칼은 단 하나도 없었다. 얼마나 싸구려인지 칼날이 종잇장처럼 얇아서, 부드러운 오렌지를 썰다가 칼날이 뒤틀리는 바람에 하마터면 손가락을 벨 뻔했다.


찬장에는 정체 모를 내용물이 담긴 색 바랜 플라스틱 통들이 가득했고, 욕실 선반에는 샴푸만 열댓 개가 널브러져 있었다. 샴푸 통 역시 몇 년은 족히 지난 듯 색이 바래 있었다. TV에서나 보던, 자원봉사자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를 치워주던 강박증 환자의 집이 오버랩되었다. 이집트, 튀니지, 모로코 같은 척박한 나라들을 거쳐 부자 나라인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왔는데, 내 오랜 여행 역사상 최악의 주거 환경을 마주하게 될 줄이야.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도대체 왜 이런 집이 만점에 가까운 평점을 받았단 말인가? 분통을 터뜨리려던 찰나, 나는 곧 그 '별점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KakaoTalk_20260317_043206111.jpg 정신없는 찬장 모습

3. "Sorry"를 입에 달고 사는 불쌍한 모녀

그 비밀은 바로 집주인이었다. 이 낡은 집에는 40대 초반의 싱글맘과 초등학생 딸이 살고 있다. 아프리카계 이민자 같아 보였으며 바르셀로나의 살인적인 물가를 감안하면 그야말로 가난에 찌든 삶이다. 주방에 널브러진 짝 안 맞는 싸구려 집기들을 싹 다 내다 버리고 내 돈으로 새것을 사다 안겨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집주인 여자는 손님인 나를 마치 왕처럼 대했다. 조금이라도 마주치면 과할 정도로 친절을 베풀었다. 좁은 거실 낡은 탁자에서 딸의 숙제를 도와주다가도, 내가 물 한 잔 마시러 방문을 열고 나가면 모녀는 마치 큰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며 자기들 방으로 쫓기듯 쏙 들어가 버렸다. 내 돈 내고 머무는 집이지만, 그 주눅 든 모녀의 뒷모습을 볼 때면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아려왔다.


가끔 복도에서 마주치는 초등학생 딸아이는 수줍게 인사를 건네면서도, 혹시나 내가 불편해할까 봐 벽에 몸을 바짝 붙여 길을 내어주곤 했다. 까맣고 커다란 눈망울에 어린 그 미안함 섞인 경계심을 볼 때마다 측은함을 느꼈다.


4. 분노를 잠재운 사과, 그리고 도서관으로의 도피

사실 지저분한 집에서 지내는 것쯤은 넉넉히 참을 만하다. 그동안 배낭여행을 하며 마구간 같은 곳에서도 숱하게 지내본 터라, 비바람을 피하고 등 뉠 잠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감지덕지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며 롯지에서 덜덜 떨며 자던 밤이나, 불과 몇 달 전 남미 볼리비아 산악지대의 낡은 호스텔에서 추위와 싸우던 것에 비하면 이곳은 특급 호텔이나 다름없다.


진짜 문제는 '인터넷'이었다. 하루는 시도 때도 없이 끊기는 인터넷 때문에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진지하게 숙소를 환불받고 짐을 싸서 나갈까 고민하다가, 참다못해 주인아주머니에게 인터넷 문제를 항의했다.

그런데 그녀의 반응에 나는 다시 무장 해제되고 말았다. 인터넷이 안 된다는 내 말에, 그녀는 마치 자신이 멀쩡한 인터넷을 고장이라도 내버린 듯이 사색이 된 얼굴로 거듭 "쏘리(Sorry)"를 외쳤다. 자신의 가난한 인프라가 손님에게 큰 폐를 끼쳤다는 자책감이 묻어나는 그 몹시 당황한 표정을 보니, 차마 그 입에 대고 더 이상의 불평을 쏟아낼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와이파이 공유기와 씨름하는 대신, 노트북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섰다. 그렇게 동네를 배회하다 기적처럼 찾아낸 곳이 바로 숙소 인근 싱겔린(Singuerlín) 지하철역 앞의 아주 훌륭하고 쾌적한 동네 도서관이다. 이 불쌍한 모녀의 고장 난 인터넷이 나를 현지 도서관으로 이끌어, 멋진 '작가의 방'을 선물해 준 셈이다.


5. 마이클 센델의 '정의', 그리고 나의 별점 5점

이제야 그 수많은 '별점 5점'과 극찬 리뷰의 미스터리가 풀렸다. 이 집에 머물다 간 수많은 세계의 여행자들도 나처럼 분노했다가, 결국 이 모녀의 애처로운 친절 앞에 마음이 녹아내렸을 것이다. 가난하지만 어떻게든 손님을 맞이하려는 이 어린 딸과 엄마의 생계가 달린 에어비앤비 계정에, 감히 누가 '인터넷이 끊기고 집이 지저분하다'는 냉정한 악플을 달 수 있었을까. 여행자들이 남긴 별점 5점은 객관적인 시설 평가가 아니라, 팍팍한 삶을 견뎌내는 바르셀로나의 모녀를 향한 따뜻한 연민이자 묵언의 응원이었다.


앞에 지나간 손님 중 평점을 최하로 준 사람이 몇 명 있긴 했다. 예약 전 그 최하 평점 리뷰를 읽었을 때, "고심 끝에 최하점을 준다"는 그 문장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궁금했는데 이제야 그 사람의 심정을 알 것 같다. 어렵게 사는 두 모녀를 보면 최고 평점을 줘야 마땅하지만, 자신의 양심상, 그리고 뒷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정직하게 최하점을 주었다는 뜻이었으리라. 이제야 그 여행자의 고심이 피부에 와닿는다.


문득 마이클 센델(Michael Sandel)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떠올랐다. 다음 여행객의 알 권리를 위해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를 평가하는 것이 '공정'일까, 아니면 생계가 달린 이 가난한 모녀를 위해 최고점을 주는 것이 '선(善)'일까? 센델의 정의관에 기대어 본다면, 차가운 시스템의 정직함보다는 약자를 향한 따뜻한 연대와 선이 진정한 '정의'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의문도 고개를 든다. 과연 이 두 모녀가 다음 사람의 알 권리라는 '정직'의 가치를 기꺼이 훼손하면서까지 덮어놓고 동정해야 할 만큼 절대적으로 가난하고 불쌍한 것일까? 내가 그동안 거쳐온 남미나 아프리카의 진짜 빈민가에 비하면, 복지국가 스페인에 사는 이 모녀는 그저 살림살이가 조금 궁핍한 것 뿐일지도 모른다. 낡은 샴푸 통과 얇은 부엌칼에 내가 너무 감상적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어쩌겠는가. 바르셀로나에서의 3주. 화려한 가우디의 건축물을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주눅 든 모녀와 지붕을 맞대고 부대끼며 그들의 팍팍한 삶을 함께 해 보는 것 또한 여행이 주는 또 다른 깊은 경험이다. 3주 뒤 이곳을 떠나는 날, 나는 얄팍한 동정심에 속았다는 찝찝함을 살짝 느끼면서도, 결국 주저 없이 별점 5점을 누르고 이 모녀를 위한 최고의 찬사를 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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