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 여왕벌의 기묘한 파티

나는 그날 밤, 결혼의 미래(?)를 보았다

by 야간비행

(※ 이 글은 지난 1월 튀니스에서 썼던 글입니다. 당사자들의 프라이버시를 고려해 몇 달 묵힌 후 사진 없이 글로만 남깁니다.)


1. 인류학 실험실에 초대받다

튀니지 에어비엔비 숙소는 매우 특별했다. 아니, 충격적이다. 몇 년간 세계를 방랑하며 열린 관점으로 세상을 봐온 나로서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곳이다. 이곳은 가히 '결혼의 미래'를 미리 보는 인류학적 실험 현장이라 할 만하다.


지난 글(튀니스의 여왕벌, 그리고 아찔한 심층 면접)에서 썼듯이, 나는 이 집의 주인인 '여왕벌'과의 심층 면접(?)을 통해 믿을 만한 사람으로 인정받았고, 드디어 그들의 은밀한 관계 안으로 입장을 허락하는 파티에 초대받았다.


2. 새벽 1시의 쿠스쿠스

파티라고 해봤자 뻔하다는 걸 안다. 서양 친구들의 "파티 하자!"는 말에 기대하고 갔다가 식은 피자에 맥주 한 캔 마시고 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손님으로서 예의는 지켜야겠기에, 나는 꽤 비싼 와인 두 병을 사 들고 파티를 기다렸다.


전날 여왕벌이 물었다. "파티가 좀 늦어질 수 있는데 배고파도 괜찮아요?" 나는 흔쾌히 "No problem!"을 외쳤다. 저녁 8시쯤 되니 그녀가 다시 묻는다. "튀니지 전통 음식 쿠스쿠스를 할 건데 좋아해요?" 나는 또다시 유쾌하게 "No problem!" 했다. (이 대답을 후회하게 될 줄은 몰랐다.)


밤 9시가 되어서야 멤버가 다 모였다. 여왕벌, 두 남자(28세 동거남, 39세 약혼남), 그리고 39세 남자의 '여자친구'가 새로 합류했다. 처음 보는 여성이 내게 밝게 인사하며 '비주(볼키스)'를 청한다. 구경만 해봤지 실제로는 처음이다. 그녀가 내 볼에 자기 볼을 이쪽저쪽 부딪치는데, 얼떨결에 내 볼을 그녀에게 맡겨버렸다.


3. "Han, 당신은 50대 같아요"

거실 조명을 낮추고 음악을 튼 뒤, 각자 술잔을 채웠다. 튀니지는 아랍어와 불어가 공용어라 자기들끼리는 불어로 떠들다가, 나를 위해 가끔 영어로 통역해 준다. 그들이 대뜸 내게 자기 나이를 맞혀보란다. 잠시 고민했다. 실제 나이보다 어리게 불러줘야 좋아할 텐데, 너무 터무니없으면 아부 같을 테고...


그녀의 직업(변호사)과 외모를 고려해 "35세 정도?"라고 했다. 아뿔싸, 여왕벌의 표정에 실망이 역력하다. 자기 입으로 "32살"이란다. (서양인들 노안인 걸 깜빡했다.) 그러면서 남자들 나이를 공개한다. 한 방 쓰는 잘생긴 동거남은 28세, 작은방의 수염 난 남자는 39세, 새로 온 여성은 35세란다. 오사마 빈 라덴처럼 수염을 길게 기른 남자들이라 40대 중반은 된 줄 알았는데, 다들 2030 애송이들이었다. 이 녀석들이 나한테 'Mr.'도 안 붙이고 친구처럼 "Hey, Han!"이라고 부르다니...


이번엔 내 나이를 묻는다. 2030들 앞에서 "나 칠십이요" 하면 기절할까 봐 "50대 중반"이라고 대폭 깎았다. 그랬더니 "우리 아빠랑 비슷하네!" 하면서도 여전히 나를 친구 대하듯 한다. 나이가 전혀 장벽이 되지 않는다. 프랑스 식민지 100년의 영향일까? 그들의 '쿨함'에 나도 무장 해제되었다.


주제는 점점 대담해졌다. 남녀의 포경수술 이야기가 나왔다. "Han, 당신도 포경수술 했어?" 여자들 앞에서 이런 얘기하는 거 생전 처음이다. "나는 젊을 때 했고, 내 아들은 돌 지나기 전에 해줬다"고 답해줬다. 어디서 했냐고 묻는다. 자기들은 미용실에서 미용사가 가위로 잘라줬다고 낄낄거린다. 아들벌 되는 녀석들과 이런 '거시기'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 참 우스꽝스럽다.


그런데... 이 놈들이 밥을 안 준다. 8시부터 준비한다던 쿠스쿠스는 12시가 넘도록 소식이 없다. 참다못해 물어보면 "조금만 기다려(Just a moment)"란다. 결국 새벽 12시 반이 되어서야 밥이 나왔다. 살다 살다 새벽 1시에 저녁밥을 먹어보긴 처음이다.


4. 기묘한 한 지붕 세 남녀

새벽 쿠스쿠스로 배를 채우니 분위기가 무르익었고, 그들의 기막힌 사연도 하나둘 튀어나왔다.

여왕벌은 한 침대를 쓰는 28세 남을 소개했다. "4년 전에 만났는데, 내 동생 같아요. 가족이나 다름없죠." 28세 남은 키 크고 잘생긴 훈남이다. 웹디자이너라는데 노트북만 들여다볼 뿐 벌이는 시원찮아 보인다. 그녀는 이 훈남을 애완동물처럼 예뻐하며 4년째 끼고 산다.


반면 작은방을 쓰는 39세 남은 5살 딸이 있는 이혼남이다. 외모는 별로인데, 집안이 좋아 상속받을 재산이 많다고 한다. 여왕벌과는 2년 전 튀니스에서 만나 사귀게 되었는데, 그녀가 28세 남과 한 침대에서 자는 걸 뻔히 알면서도 기꺼이 이 집에 들어와 '작은방'을 쓰며 살고 있다.


두 남자의 역할 분담도 확실하다. 요리는 28세 훈남이, 설거지는 39세 재력남이 한다. (물론 둘 다 게을러서 주방은 늘 개판이다.) 저녁을 먹고 밤 10시쯤 되면 여왕벌은 28세 남과 안방으로 들어간다. 30분쯤 뒤, 그를 재우고 다시 거실로 나와 39세 남과 비비며 진한 애정행각을 벌인다. 그러다 자정이 넘으면 그녀는 다시 안방으로 사라진다.


화장실을 가다 그 장면을 목격했다. 여왕벌이 안방으로 쏙 들어가 버린 뒤, 닫힌 방문을 멍하니 쳐다보는 39세 남자의 눈빛. 그 애처로운 눈망울에 내 마음이 다 짠해졌다. 도대체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5. 결혼은 '사랑'이 아니라 '부동산 계약'이다

더 놀라운 건, 여왕벌이 39세 남자와 다가오는 5월에 결혼한다는 것이다. "결혼 후에도 이렇게 살 거예요. 잠은 28세와 자고, 39세는 작은방 쓰고요."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물었다. "아니, 그럼 결혼은 왜 해? “

돌아온 대답은 명쾌했다. "튀니지는 이슬람 국가라 혼인신고 안 하면 제약이 많아요. 특히 이번에 집을 사야 하는데 돈이 부족하거든요. 그(39세)랑 반반씩 내서 공동명의로 집을 사려면 결혼 증명서가 필요해요. 그 사람도 재혼을 해야 부모님한테 집값을 타낼 수 있거든요. “


그랬다. 이들에게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 아니라, '대출과 증여를 위한 서류상의 계약'일뿐이었다. 더 황당한 건, 오늘 파티에 온 '초대녀'가 바로 39세 남자의 현재 애인이라는 사실이다. 그녀 또한 이 모든 막장 드라마 같은 상황을 알면서도 쿨하게 즐기고 있었다.


튀니지는 이슬람 국가이긴 하지만 프랑스 지배 100년 동안 프랑스화 되어 상당히 개방적인 면모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 해도 이 집은 개방의 첨단을 달리고 있는 게 분명하다. 내 황당한 표정을 읽었는지, 여왕벌도 웃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우리가 유별난 거니까, 튀니지 사람들이 다 이렇다고 오해하진 말아요!"


6. 진화인가, 퇴보인가?

새벽 2시,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해 나는 먼저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웠지만, 뱃속에 꽉 찬 쿠스쿠스만큼이나 머릿속이 더부룩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


이건 도대체 뭘까? 결혼 안 하고 셋이 사는 폴리아모리(다자간 연애)? 그래, 젊은이들의 새로운 방식이라 치자. 집을 사기 위해, 대출을 위해 서류상 결혼을 한다? 뭐, 자본주의 사회니까 그럴 수 있다 치자.


하지만 부부가 된 후에도 아내는 젊은 애인과 자고, 남편은 작은방에서 독수공방 하며, 그 남편은 또 다른 애인을 파티에 초대하는 이 상황. 그리고 아내가 젊은 놈 방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강아지처럼 처연하게 바라보는 저 39세 남자의 눈빛은... 아무리 쿨한 척해도 숨길 수 없는 '본능적 슬픔' 아닐까?


이것이 인류 결혼 제도의 진화일까, 아니면 욕망만 남은 석기시대로의 퇴보일까. 세상을 꽤 오래 살았다고 자부하는 70세 방랑자에게도, 튀니지의 밤은 너무나 어지럽고 난해하다. 확실한 건 하나다. "세상은 넓고, 신기한 것은 많다."

작가의 이전글바르셀로나 숙소에 별점 5점을 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