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라는 연극, 풍경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
1. 한 달 살기의 끝에서 여행의 템포를 바꾸다
2022년 말, 퇴직과 동시에 세계 일주를 시작해 참 많은 국경을 넘었다. 지난 3년간 15개국에서 '한 달 살기'를 했고, 아시아와 유럽, 남미와 아프리카를 넘나들며 40여 개국에 발자국을 남겼다.
낯선 도시에 온전히 스며드는 한 달 살기는 참 매력적이지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첫 주는 랜드마크를 훑느라 정신없이 지나가고, 2주 차쯤 되면 뒷골목의 단골 카페를 만들거나 공원에서 햇살을 즐기며 현지인의 일상을 흉내 내게 된다.
하지만 마의 3주 차. 그때부터 묘한 권태가 찾아온다. 딱히 할 일이 없어지면서 지루함이 밀려오고, 4주 차에 접어들면 '내가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자괴감마저 고개를 든다. 다행히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노트북을 펼쳐 들고 활자를 채우며 그 공백을 달래곤 했다.
그렇게 여러 나라를 떠돌다 보니 굳이 한 달을 꽉 채우지 않아도, 2~3주면 그 도시의 공기를 충분히 호흡할 수 있다는 나름의 통찰이 생겼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여행의 템포를 '2~3주 체류'로 바꿨다. 이집트, 튀니지, 모로코, 포르투갈, 그리고 지금 머물고 있는 스페인까지. 도시에 따라 2주 혹은 3주씩 머물러보니 그 호흡이 내게 딱 맞았다.
2. 풍경과 역사 유적은 무대일 뿐,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사람이다
3년여, 1000일 넘게 여행지를 떠돈 후 뒤돌아보니, 여행이 끝난 뒤 뇌리에 박히는 것은 압도적인 풍경도 찬란한 역사 유적도 아니었다. 결국 그 압도적인 배경 앞에서 함께한 '사람들'이었다. 풍경과 유적은 근사한 무대이자 배경에 불과하다. 인생이라는 연극에서 진짜 하이라이트는 배우들의 연기인 것처럼, 여행 역시 무대가 아닌 사람이 하이라이트다.
물론 무대와 배경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그 자체로도 훌륭한 작품이자 멋진 관광거리다. 월드컵 경기장, 투우장, 오페라 극장처럼 말이다. 하지만 진정한 가치는 그 무대 위에서 선수들이, 배우들이 땀 흘려 경기하고 공연하는 모습에서 나온다. 이 여행이라는 연극에서 풍경은 무대고 나는 관객이다. 내 여행의 서사를 만들어줄 '배우'가 빠진 연극은 그저 화려하지만 텅 빈 무대 구경일 뿐이다. 투우사가 없는 투우장, 오페라가 열리지 않는 텅 빈 극장을 맴도는 것처럼 말이다.
돌이켜보면 내 기억의 저장고를 채운 것은 늘 사람이 만들어낸 스토리였다. 55년 전 빛바랜 수학여행 사진을 볼 때면 불국사나 첨성대보다 어깨동무를 한 까까머리 옛 친구들의 얼굴이 먼저 들어온다. 35년 전 미국 유학 시절 그랜드캐니언의 장엄함보다 그 앞에 섰던 아이들의 미소가 더 선명하고, 작년 유럽 캠핑카 여행 때도 장엄한 알프스보다는 그 앞에서 환하게 웃던 우리들의 모습이 더 눈부시게 남아있다.
이번 여행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이집트였다. 경이로운 신전과 유적이라는 완벽한 무대 위에, '안나'라는 주연 여배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 기억 속 이집트는 카르나크 신전의 입이 떡 벌어지는 스케일이 아니라, 그 웅장함을 배경으로 안나와 함께 따가운 햇살 아래 살결이 익어가고, 사막의 황토바람에 온몸에 모래먼지를 뒤집어쓰면서도 이리저리 걷고 사진 찍고 어울렸던 2주일의 시간이 내 기억의 저장고에 가장 강렬하고 짙게 물들어 있다.
조연과 엑스트라들이 빛내준 무대도 잊을 수 없다. 튀니스에서는 한니발의 유적보다, 파격적인 연애관을 가진 숙소 주인들과 어울려 파티를 즐긴 밤이 더 강렬했다. 카사블랑카에서는 이슬람 국가의 숨 막히는 일상을 견디는 태국 여성의 사연과, 치열하게 다투던 옆방 커플의 황당한 에피소드가 여행의 여백을 채웠다. 리스본에서는 노트북 가방을 잃어버려 헛웃음이 나던 고단한 일주일 속에서도, 구석구석을 함께 누빈 프랑스 모녀와 옆방 여행자의 온기가 따뜻하게 남았다.
3. 바르셀로나의 빈 무대 위에서, 다가올 발칸의 봄을 그리다
가장 볼거리가 많을 거라 기대하며 3주를 할애한 이곳, 바르셀로나는 역설적으로 가장 무미건조했다. 가우디의 건축물, 미로 같은 구도심, 눈부신 지중해의 해변까지 무대는 그 어느 곳보다 완벽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내 여행을 특별하게 만들어줄 배우가 없었기에, 나는 그저 텅 빈 세트장 위를 홀로 배회하는 고독한 관객일 뿐이었다.
훌륭한 도서관에서 글을 쓸 수 있었고 약간의 스릴(?)을 안겨준 소매치기 사건도 있었지만, 내 추억의 빈칸을 채워줄 달콤한 스토리는 쓰이지 않았다. 아름다운 시내와 공원을 걷고 또 걸으며, 나는 '여행은 무대보다 배우가 더 중요하다'는 지론을 다시금 뼈저리게 확인했다.
이제 잠시 귀국해 재정비를 거친 뒤, 4개월간의 발칸반도 여행을 떠난다. 아드리아해의 짙푸른 물결과 고대 로마의 유적들이 또 한 번 화려한 배경이 되어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무대는 결코 외롭지 않다. 내 여행의 매력적인 씬스틸러였던 조지아 아가씨 안나가, 이번엔 무려 3개월 동안 '주연 배우'로 합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1999년생, 스물일곱의 안나. 2년 전 베트남에서 우연히 만나 길동무가 되었고, 부다페스트와 트빌리시를 거쳐 지난 1월 카이로에서는 마침내 숙소를 공유하는 긴밀한 동반자가 되었다. 서른 살 전까지 50개국을 여행하는 것이 목표라는 그녀는, 내가 여행할 8개국 중 자기가 아직 가보지 않은 발칸 6개국 여행을 나와 함께하고 싶다며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우리 사이의 관계성도 참 흥미롭게 변해왔다. 베트남에서는 내 나이를 모른 채 우연히 스친 '아저씨'였고, 동유럽에서는 내 나이를 알게 된 후 마흔두 살 차이 나는 '할아버지와 손녀'가 되었다. 그러나 카이로의 숨 막히는 유적 앞에서는 흥분한 목소리로 나를 "오빠!"라 불렀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다시 할아버지가 되기를 반복했다. 재밌는 건, 여행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간 그녀의 메시지에서 이제 내 호칭이 온전히 '오빠'로 정착되었다는 점이다. 나를 보고 있을 때는 흰머리의 할아버지였지만,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나의 정성과 배려가 사랑으로 느껴진 모양이었다.
우리는 매일 대화를 나누며 3개월간의 발칸 여행 일정과 경로를 만들었다. 그리고 비용 절감을 핑계로 방이 하나인 숙소를 함께 쓰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카이로에서는 방이 두 개짜리 숙소를 썼지만, 이번 발칸 여행에서는 무려 세 달 동안 한 방을 쓰기로 한 것이다. 그러니 카이로에서 불리던 오빠와 앞으로 발칸에서 불릴 오빠의 무게와 의미는 결코 같을 수 없다.
카이로의 그 찬란했던 시간 속에서, 그녀가 나를 단순한 길동무나 연장자가 아닌 한 명의 '남자'로 인식하게 된 어떤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으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젊은 아가씨가 먼저, 세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기꺼이 한 방을 쓰겠다고 나설 수 있었을까. 카이로 공항까지 바래다주었을 때, 출국장으로 들어가며 눈시울을 붉히던 그녀의 모습에 나 역시 가슴이 찡했었다. 타지에서 나의 보살핌이 주었던 편안함 때문이었을까?
다가올 5월, 발칸에서 다시 마주하면 나는 기꺼이 그녀의 진정한 '오빠'가 되어 여행을 이끌 생각이다. 한국어에서 오빠라는 단어는 친밀하고 듬직한 연상의 남자를 뜻하기도 하지만, 때론 연인을 부르는 달콤한 애칭이기도 하다. 안나도 이 의미를 잘 알고 있다. 마흔두 살의 연상에게 굳이 그 단어를 쓴다는 건, 어쩌면 나를 애인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이라면 20대와 70대의 연인 관계를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코카서스의 독립적이고 강한 여성들은 남자의 나이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 홀로 세상을 누비는 강철 같은 코카서스 여인 안나에게도, 타지에서 자신을 든든하고 포근하게 감싸주는 내가 한 명의 매력적인 남자로 다가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내가 먼저 안나를 여자로 대할 용기는 없다. 아니, 용기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래선 안 된다는 이성이 앞선다. 하지만 안나가 나를 남자로 보겠다는데 굳이 피할 생각은 없다. 그것은 내 감정에 비겁해지는 일이니까. 안나가 원한다면 나는 당당히 그녀의 애인이 될 것이다.
그녀가 나를 할아버지라 부르든, 오빠라 부르든, 혹은 애인이라 여기든 상관없다. 나는 그녀가 원하는 위치에 유연하게 존재할 생각이다. 만약 우리가 정말 연인이 된다면, 그녀는 내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 '뮤즈'가 될 것이다.
역사에 남을 대문호나 화가에게만 뮤즈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제 막 글을 써 내려가는 브런치 작가인 나에게도, 창작의 영감을 자극하고 글을 한층 깊어지게 만들어 줄 뮤즈가 곁에 있다는 건 무척이나 가슴 뛰는 일이다.
바르셀로나의 텅 빈 무대 위에서, 나는 어서 4월이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불가리아 소피아의 눈부신 봄날 속에서 나의 뮤즈, 안나와 재회할 그날을 기분 좋게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