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담장 안팎의 아고라, 죽은 유적과 살아있는 시장
아테네 시내 중심, 거대한 바위산 위로 아크로폴리스와 파르테논 신전이 우뚝 솟아 있다. 그 아크로폴리스를 빙 돌며 고대 도시 국가 폴리스가 자리 잡았고, 바위산 남쪽 기슭을 따라 장사꾼들의 흥정 소리와 철학자들의 논쟁이 끊이지 않던 고대 아테네의 심장부, 아고라가 펼쳐져 있다. 전 세계의 이질적인 물건과 사람들이 한데 뒤섞이는 이 개방된 광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수많은 생각들이 부딪혔고, 그 치열한 대화와 토론의 과정이 훗날 인류의 철학과 민주주의를 잉태하는 든든한 토양이 되었다. 이 아테네의 아고라가 현시대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 대의 민주주의와 철학이 탄생하는 장소가 된 것이다.
나는 철학을 잘 모른다. 젊은 시절 남들 읽는다는 철학서 몇 권을 들춰보기도 했지만, 머릿속에 남은 건 파편화된 문장 몇 개뿐이다. 니체의 ‘제때 죽어라’라든가, 쇼펜하우어의 ‘행복해지려면 혼자가 돼라’는 식의 서늘한 조언들 만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런 내가 아테네 아고라 유적지 담장 앞에 서서 때아닌 철학적 상념에 휩싸였다.
아고라 주변은 낮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극명하게 갈린다. 담장 안쪽은 2,400년 전의 시간이 박제된 채 무너진 돌무더기들이 침묵하는 ‘유적지’이고, 담장 바로 바깥은 전 세계에서 몰려든 인파로 파도치는 ‘시장’이다. 유적지에는 관광객들이 조용히 유적을 돌아보고 있고, 옆의 시장은 기념품을 흥정하는 목소리, 노천카페에서 풍겨 나오는 고기 굽는 냄새, 거리 악사들의 연주 소리가 뒤섞인 생생한 삶의 현장이다.
왁자지껄한 시장통을 보고 있자니 문득 2,400년 전 아고라의 모습도 지금 담장 밖 풍경과 한 치의 다름도 없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밥을 먹고, 물건값을 깎고, 떠들썩하게 정치를 논했을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권의 위치만 담장 밖으로 한 뼘 밀려났을 뿐, 삶의 에너지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2. 아테네 광장의 '철학 버스커'
시장통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왁자지껄하고, 광장 곳곳에는 기타, 바이올린, 색소폰 등을 든 버스커들이 저마다 열정적인 공연을 펼치고 있다. 버스커 주변에는 사람들이 둥그렇게 모여 그의 연주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낡은 옷을 입은 한 노인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바로 소크라테스다.
우리는 그를 근엄한 철학자로 기억하지만, 사실 그는 아테네 광장의 ‘철학 버스커’였다. 그는 화려한 강단에 서지 않았다. 시끌벅적한 시장통에서 장사꾼이나 청년들을 붙잡고 “당신은 정의가 무엇이라 생각하오?”라며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던 괴짜 노인이었다.
지금 저 연주자에게 홀린 듯 모여든 인파처럼, 당시 아테네 인들도 소크라테스의 현란한 대화법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의 날카로운 통찰에 무릎을 쳤을 것이고, 누군가는 자신의 무지가 탄로 나 얼굴을 붉혔을 것이다. 아고라는 그에게 가장 완벽한 공연장이자, 진리가 펄떡이는 현장이었다. 하지만 광장의 스타였던 이 철학 버스커는 결국 기득권의 눈 밖에 나 아고라 뒤편 언덕의 차가운 바위 감옥으로 끌려가고 만다.
3. 바위 감옥에서 배운 유쾌한 죽음관
아고라의 활기를 뒤로하고 찾아간 소크라테스의 바위 감옥은 좁고 서늘했다. 그곳에서 독배를 앞에 둔 노학자를 떠올렸다. 사실 내가 소크라테스에게 이토록 깊은 유대감을 느끼는 이유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한 그의 준법정신 때문이 아니다. 예순을 넘기며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된 ‘죽음’이라는 화두 앞에서, 그가 던진 한마디가 내 영혼에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와 성당, 절을 전전하며 여러 종교를 접해봤다. 기독교의 천국과 지옥은 어딘지 낯설었고 불교의 윤회설은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소멸한다는 과학적 결론을 믿기엔 인간의 삶이 너무나 허무하게 느껴졌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화두 앞에서 방향을 잡지 못할 때,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이 빛처럼 다가왔다.
2,400년 전 사형선고를 받고 바위 감옥에 투옥 중인 소크라테스를 제자들이 찾아와 탈옥을 권유했다. 하지만 그는 '악법도 법이다, 라면서 탈옥을 거절했으며 “내가 죽어서 깊은 잠에 빠지게 된다면 방해받지 않아 좋고, 만약 어딘가로 가게 된다면 그곳에서 여러 현인을 만나 또 대화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좋은 일이다.”라 하면서 죽음을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얼마나 명쾌하고 유쾌한 달관인가. 역사학자 토인비가 인류 성인 중 한 명으로 꼽은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기에, 이 문장은 나에게 성경이나 불경 이상의 무게로 다가왔다. 특별한 종교가 없는 나에게 소크라테스는 일종의 ‘예수’나 ‘부처’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의 죽음관을 받아들인 이후, 내 삶엔 비로소 평온이 찾아왔다.
4. 죽음이 두렵지 않은 방랑자의 홀가분한 길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자 보험을 넣고 애들에게 보험증서를 보내준다. 혹시 내가 죽으면 잊지 말고 보험금을 챙기라는 당부다. 이번 여행은 6개월이나 집을 떠나는 긴 여행이라서 보험증서에 더하여 내 영정사진을 골라주었고 얼마 안 되는 재산까지 자세히 애들에게 알려주었다. 혹시라도 내가 죽더라도 애들이 혼란스럽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애들과 지인들이 별소리를 다 한다고 핀잔을 주지만, 죽음에 대해 평온한 마음을 갖게 된 것이라서 오히려 홀가분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관이 나를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혹시라도 이 기다란 해외 방랑 중에 사고를 당해 죽음에 이른다 해도, 그저 방해받지 않는 긴 단잠에 빠지는 것이니 나쁘지 않고, 혹여 다른 세상이 열린다면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지금처럼 즐겁게 세상을 주유하면 될 일이다. 어느 쪽이든 나에게는 이득 까지는 아니더라도 손해라고 할 것도 없다.
이런 초연함이 생기니 여행의 발걸음은 더 가벼워졌다. 70대의 생존 체력으로 4개월간 발칸반도를 누비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8,000km의 로드트립을 계획할 수 있는 용기도 사실은 이 ‘유쾌한 소크라테스의 죽음관’에서 나온다.
며칠 전 다녀온 파르테논 신전은 세계적인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내게 헛헛함을 주었다. 뼈대만 남은 그곳은 배우 없는 낡은 무대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 아고라는 달랐다. 담장 밖 시장의 활기와 담장 안 감옥의 고독, 그리고 시공간을 뛰어넘어 나에게 말을 거는 소크라테스라는 거목이 여전히 이 무대를 꽉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지금 깊은 잠을 자고 있을까? 아니면 저 세상 어디에선가 또 다른 철학 버스킹을 준비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만약 어딘가로 가게 된다면 그곳에서 여러 현인을 만나 대화할 수 있으니 좋은 일이다"라고 했던 그의 말처럼, 그는 지금 내 마음속에 살아있는 동행이 되어 나와 새로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아고라 언덕 위로 내리쬐는 아테네의 햇살이 유독 따스하다. 소크라테스의 죽음관을 따르는 여행자에게, 세상은 그저 끝없이 이어지는 흥미로운 무대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