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아류인가, 서양의 성역인가: 파르테논 신전의 씁쓸한 진실
1. 교과서 속 환상, 그리고 현장의 괴리
아테네 중심 아크로폴리스에 우뚝 서 있는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네의 상징이자 서구 문명의 상징이다.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가장 많이 보아왔던 역사 유적이기도 하다. 해외 방랑을 하며 과거 책에서만 보던 위대한 역사 유적을 직접 마주하게 되면, 으레 어린 시절의 추억이 겹치며 벅찬 감동이 밀려오곤 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로마의 콜로세움, 잉카의 마추픽추 등은 한동안 그 벅찬 감동이 짙게 지속되었다. 그런데 파르테논 신전 앞에서는 조금 달랐다. 감동은 있었으나 속으로는 '이게 그렇게까지 유명할 일인가?'라는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불과 한 달 전, 이집트 룩소르에서 카르낙 신전을 다녀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전에 보았던 피라미드나 콜로세움, 마추픽추 등은 감히 비교할 대상이 없는 독보적인 건축물이었지만, 파르테논 신전은 이집트의 카르낙 신전에 비해 여러모로 부족해 보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카르낙 신전의 아류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2. 스케일과 디테일의 압도적 차이
우선 규모에서부터 비교가 되지 않는다. 카르낙 신전은 파르테논 신전보다 몇 배나 넓은 면적에, 수백 개의 거대한 돌기둥이 엄청난 무게의 돌지붕을 떠받치고 있다. 기둥의 굵기와 높이 역시 파르테논을 압도한다.
정교함의 차이도 크다. 카르낙은 다루기 힘든 단단한 화강암에 정교한 상형문자와 부조를 빈틈없이 새겨 넣었지만, 파르테논은 상대적으로 조각하기 쉬운 무른 대리석을 썼음에도 표면에 장식이 덜하다. 건축 난이도 면에서 이집트가 훨씬 까다로웠을 것이다. 무엇보다 카르낙은 파르테논보다 무려 1,000년이나 먼저 지어졌다. 먼 거리에서 무겁고 단단한 화강암을 운반해 와 신전을 올리고 거대한 오벨리스크까지 세운 고대 이집트인들의 엄청난 노력과 기술력에 비하면, 파르테논은 다소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다.
3. 서구 중심주의가 만들어낸 '성역화'
그렇다면 왜 파르테논 신전이 이토록 과대포장된 것일까? 나름의 유추를 해보았다.
그리스-로마 문명은 서구 문명의 뿌리다. 중세 이후 서구 열강이 세계의 중심이 되면서, 역사 역시 철저히 서구 문명을 중심으로 기술되었다. 수백 년간 서구를 짓눌렀던 이슬람 제국에 대한 열등감의 발로였을까? 그들은 이슬람 문명을 깎아내리고 서구 문명의 우월성을 찬양하는 데 집중했다. 우리는 바로 그 서구 문명 전성기에 쓰인 잣대 위에서 역사를 배웠기에, 아테네의 민주주의와 철학, 그리고 그 상징인 파르테논 신전을 무비판적으로 '성역화'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스의 역사와 파르테논 신전의 외관을 찬찬히 뜯어보면 이집트 문명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음을 단번에 알 수 있다. 그리스 문명은 미케네 문명의 후속이고, 미케네 문명은 미노스 문명의 후속이며, 미노스 문명은 지중해 너머 이집트 문명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도 서구 학자들은 굳이 '이집트-그리스-로마'라 부르지 않고 '그리스-로마 문명'이라고만 선을 긋는다.
파르테논 신전 역시 이집트 신전들의 건축 양식을 벤치마킹했을 것이다. 거대한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어 지성소를 만들어 신을 모시는 기본 구조가 완벽히 동일하다. 굳이 차이점을 찾자면 지형과 기후에 따른 외형적 변화뿐이다. 비가 오지 않는 사막 평지에 세워진 카르낙 신전은 지붕이 평평한 반면, 비가 잦고 외세의 잦은 침략에 대비해야 했던 그리스는 산악 지형인 아크로폴리스 성곽 위에 처마를 얹은 형태로 신전을 지어 올렸다.
천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며 건축 공학과 수학이 발달해 좀 더 비례가 정교해졌고, 모시는 신이 달라 장식이 변했을 뿐, 신전 건축의 전반적인 뼈대는 이집트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파르테논의 배흘림기둥(엔타시스) 구조나 착시를 교정한 건축 기법을 두고 서양 예술의 진보적 결정체라며 열을 올리지만, 그보다 천 년 앞서 지어진 카르낙 신전 역시 이미 배흘림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학자들의 이 모든 찬사는 결국 서구 문명의 우월성을 억지로 증명하기 위한 학술적 과장이 아닐까 의심스럽다.
4. 뼈대만 남은 대리석 무대, 그리고 부재하는 배우
3천 년이 지났음에도 웅장한 원형을 상당 부분 보존하고 있는 카르낙과 달리, 파르테논 신전은 17세기 베네치아군의 포격과 오스만 제국의 화약고 폭발 사고로 참담하게 파괴되었다. 여기에 영국과 프랑스 등 서구 열강이 아름다운 조각상들마저 뜯어가 버린 탓에 현장에 남은 볼거리가 빈약하다는 점도 신비감을 크게 떨어뜨린다.
오랜 세월을 버텨낸 재질의 차이도 한몫한다. 단단한 화강암을 깊게 파낸 카르낙 신전의 기둥들은 지금도 그 문양이 선명하게 살아 숨 쉬지만, 파르테논의 무른 대리석은 오랜 풍화와 마모를 견디지 못하고 형태가 뭉개져 과거의 화려함을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현재 파르테논 신전은 수년째 보수 공사 중이며, 앞으로도 수십 년은 더 걸릴 기세다. 철재 비계와 받침대에 빙 둘러싸인 신전의 모습은 마치 중환자실에 누워 거친 숨을 몰아쉬는 노인 같아 안쓰럽기까지 하다. 신전 아래에는 최신식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이 세워져 그 역사를 대변하고 있지만, 텅 빈 유적의 헛헛함을 채우기엔 역부족이다.
어쩌면 파르테논 신전이 나에게 유독 밋밋하고 쓸쓸하게 느껴진 가장 큰 이유는, 이 거대한 무대를 함께 채워줄 '배우'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 달 전 카르낙 신전의 거대한 기둥 숲을 누빌 때는, 벅찬 감탄을 나누고 끊임없이 시선을 교환하던 생기 넘치는 동행이 그 무대 위에서 함께 숨 쉬고 있었다. 하지만 홀로 선 아테네의 뼈대만 남은 대리석 신전은 아무리 완벽한 비례를 자랑한들, 벅찬 감동을 실시간으로 나눌 배우가 없는 텅 빈 세트장처럼 한없이 공허할 뿐이었다. 유서 깊은 역사 유적이건 가슴을 울리는 풍경이건, 결국 하나의 무대일 뿐이다. 배우 없는 빈 무대를 바라보는 일은 여행자의 가슴을 이토록 헛헛하게 만든다는 것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실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