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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Sep 05. 2019

내 삶 속의 장유유서(長幼有序)


삼강오륜(三綱五倫)은 조선시대 사회 윤리였으며 인간관계의 기본윤리였다. 요즘은 삼강오륜이 봉건시대의 잔재로 평가절하 되었지만 오륜(五倫)중 장유유서(長幼有序)는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의 인간관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장유유서(長幼有序)는 한자풀이 대로 하자면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이다. 애초의 장유유서는 친족관계에서 나타나는 위아래 질서를 의미했다. 하지만 해방 이후 장유(長幼)는 어른과 아이의 의미 외에 다양하게 해석되어 우리 사회 인간관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첫 번째 장유(長幼)는 항렬의 장유(長幼)이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시골에서 대가족으로 살던 사람이 많았고 출생률이 높아서 애들이 7~8명씩 되는 집도 꽤 있었다. 이런 집에서는 막내보다 첫째의 자식이 먼저 태어나는 경우도 있었고 2대나 3대만 지나고 나면 항렬과 나이가 역전되는 경유가 종종 발생했다.


내 경우도 나보다 어린 5촌 종숙, 7촌 재종숙이 여러 명이다. 이때 장유유서가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나이에 무관하게 항렬이 높으면 말을 높여야 했다. 초등학생 때 어린 당숙을 때렸다가 아버지에게 호되게 혼난 적이 있었다. 할머니께서 “XX야! 너 아들이 너 동생 때렸단다”며 아버지를 혼내셨다고 한다. 억울했지만 그 이후 장유유서를 철저히 지켰다. 


환갑 넘은 지금도 나이 어린 윗 항렬에게는 “아재 오셨습니까?” 하면서 존칭을 쓰며 어린 아재는 미안해하면서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어른들에게 못이 박히도록 들었기 때문이다. 뼈대 있는(?) 집안은 이렇게 항렬을 철저히 지켜야 했다.


이 항렬의 장유(長幼)는 시간이 지나면서 계급, 지위의 장유(長幼)로 확장되었다. 특히 한국 남자는 모두 군 복무를 하게 되어 나이에 무관하게 계급서열에 익숙해졌다. 학교에서도 학년에 따른 장유(長幼)가 위아래의 서열을 지배했다. 중3 고3 기율부는 학교 정문에서 1, 2학년을 몽둥이로 다스렸다. 심지어 대학교에서도 선배들이 신입생에게 몽둥이로 환영식을 하기도 했다. 


계급, 지위의 장유(長幼)는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효율적이었다. 실력, 인격, 전문성, 경험, 경력에 무관하게 계급, 지위가 높으면 권위를 인정받았다. 이런 계급의 장유(長幼)는 산업화 시대에 일사불란한 지휘체계와 업무의 효율성을 발휘하여 압축 고도성장을 이룩하는데 일조했다.


두 번째 장유(長幼)는 나이의 장유(長幼)이다. 먼저 태어난 사람이 위이다. 심지어 10분 차이로 태어난 쌍둥이마저도 위아래를 구분했다. 내 사촌간이 20명인데 그중 5명이 같은 해에 태어났고 2명은 같은 날 두 시간 차이로 태어났다. 5명은 나이는 서로 같지만 이름을 부르면 어른들에게 혼이 났다. 몇 시간 차이로 태어났지만 오빠, 누나로 불러야 했다. 호칭만 오빠, 누나가 아니고 말도 올려야 했다. 환갑이 다된 내 사촌동생 5명은 지금도 오빠, 누나 하면서 존대하고 오빠, 누나는 사정없이 말을 내려버린다. 뼈대 있는(?) 집안은 이처럼 위아래를 철저히 지켜야만 했다. 이게 맞고 안 맞고는 다른 문제이다.


나이의 장유(長幼)는 지금도 모든 가정에서 무의식적으로 답습되고 있다. 사촌간이 모이면 어른들은 누가 위고 아래인지를 가르친다. 엄마들은 놀이터에서도 다른 애들의 나이에 따른 호칭을 가르쳐준다. 언니, 오빠, 누나는 동생을 보살펴야 한다고 가르치고 동생들은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어릴 적부터 나이의 장유(長幼)가 자연스럽게 몸에 배인다. 


나이의 장유(長幼)는 전 분야로 확대되었다. 계급, 지위가 없는 곳에서는 어떻게든 나이를 알아내어 위아래를 구분한다. 이것은 서너 살 애들이 모여서 노는 놀이터부터 시작된다. 애들도 만나면 너 몇 살이야부터 물어본다고 한다. 어느 브런치 작가는 미국에 가서 놀이터에 갔더니 자기애가 미국 애들에게 How old are you?라고 물어서 당황했다고 했다. 나이의 장유(長幼)가 애들까지 당연시되었다는 좋은 예이다. 


상하 계급으로 구분되지 않는 곳에서의 장유(長幼)는 나이를 말한다. 이는 노인공경의 미풍양속과 어우러져 우리 사회 인간관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우리 모두는 장유유서가 무의식에 내재되어있다. 누군가를 만나면 서로 나이를 궁금해하고 나이를 알게 되면 무의식적으로 위아래를 구분한다. 위아래가 정해지고 나면 호칭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진다. 


우리 배드민턴 클럽에서는 새로운 회원이 가입하면 남녀노소 무관하게 전회원 앞에서 나이를 밝힌다. 위아래를 똑바로 하라는 의미이다. 한 살만 많아도 형, 언니로 부른다. 다행히 남녀 간에는 장유유서 적용이 느슨하여 한 살 많은 남자 회원에게 오빠라고 하지는 않는다. 외국인 회원도 있는데 이들 에게도 나이를 소개하며 위아래를 가르쳤다. 나이의 장유(長幼)는 아직까지도 한국사회 인간관계를 지배하는 핵심 독립변수이다.


나이의 장유(長幼)가 이처럼 강력하다 보니 나이 차이가 나는 경우에는 친구가 되기 어렵다. 학교 동창인 경우는 두세 살 많아도 친구가 되는데 사회에서 만나면 한두 살만 많아도 형이라고 불러야 한다. 나이차가 나면 친구가 아닌 친한 형, 동생이 되어버린다. 


형, 동생이 되면 호칭뿐만 아니라 말까지 존대어와 반말로 변하여 말을 편하게 할 수 없게 된다. 말을 편하게 할 수 없는 상대와는 막역한 친구사이로 발전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친한 동갑내기 또는 동창만이 친구가 된다. 


나이의 장유에 익숙해지다 보니 나이차가 나면 거리감이 생기고 동갑이면 친근감이 느껴진다. 그래서 대부분의 동호회에는 동갑내기 모임인 띠 모임이 활성화되어 있다. 우리 배드민턴 클럽에도 특정 띠 모임이 있으며 서울시 전체 띠별 배드민턴 모임이 있을 정도이다. 나이차 나는 형, 동생보다 동갑인 친구 모임이 훨씬 즐거워서 일 것이다.


조선시대에만 해도 위아래 다섯 살까지는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나이를 따지지 않고 사귄다는 망년지교(忘年之交)가 있는 것을 보면 친구가 되는데 나이가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절친의 대명사인 오성과 한음이 5세 차이며 주자학과 성리학의 거두이던 송시열과 윤휴는 열 살 차이지만 젊은 시절 교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일제시대 까지만도 나이에 따른 위하래 구분이 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6.25 이후 군대문화가 사회 전체로 확산되어 지금 같은 왜곡된 장유유서 문화가 생겼으며 한 살만 많아도 위아래로 구분하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특이한 문화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6.25 이후의 장유유서 문화는 산업화 시대에 효율성을 발휘하여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에 유래 없는 고속성장을 이룩하는데 공헌하였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강의 기적이 장유유서와 무관치 않다고 하니 장유유서를 전근대적이니 권위주의적이니 하면서 비난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지금은 정보화 사회이다. 개인의 창의성과 독창성이 중요한 시대이다. 기존의 장유유서는 일사불란하게 대오를 형성하여 돌격하는 데는 적합하나 서로 소통하면서 개인의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 각개전투에는 부적합하다. 6.25 이후 왜곡된 장유유서를 원래의 장유유서로 전환시켜야 할 시기가 왔다.


요즘 젊은이들은 나이 차이에 무관하게 서로 존중하는 문화로 바뀌고 있다. 군에는 병장과 일등병이 서로 존대하며 대학생들 사이에는 나이에 따른 위아래 구분이 차츰 옅어지고 있다고 한다. 장유유서의 개념이 원래 모습인 친족 간의 장유(長幼)로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벼슬처럼 사용되고 나이 차이가 소통이 걸림돌이 되어버리는 잘못된 문화가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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