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야간비행 Jan 30. 2023

드디어 퇴직했습니다

2010년 말 53세에 첫 직장에서 명예퇴직했다. 다행히 퇴직과 동시에 주한 외국 대사관에 재취업하여 12년간 더 근무하고 2022년 말 만 65세로 정년 퇴직했다. 직장을 한번 옮기긴 했으나 65세까지 44년간 일할 수 있었으니 행운의 신께 감사할 따름이다.  


2019년 말 사표를 낸 적이 있다. 회사에서의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이 지겨웠고 애들이 독립하고 나니 경제적으로도 문제가 없어져서 회사를 그만두고 당시 유행하던 해외살이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후임 문제로 퇴직이 몇 달 지연되고 있던 차에 2020.1월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사표를 낸 것은 퇴직 후 해외여행과 해외살이를 하려는 것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이 불가능한 상황이 돼버렸다. 사표를 취소하고 코로나가 끝날 때까지 계속 근무하기로 했다. 당시 후임이 빨리 선정되었다면 나는 2019년 말 퇴직했을 것이고 해외여행은커녕 코로나로 인하여 옴짝달싹 못했을 것이다. 


2019.7월 처음 브런치에 글을 올렸다. 직장을 퇴직하고 여행작가로 경력 전환하여 제2의 인생을 살겠다는 계획을 썼으며 이후 몇 개의 글에서도 여행작가가 되기 위한 나의 계획과 포부를 적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 해외살이에 필요한 준비를 했으며 2019년 말 퇴직을 상정하여 2020년 봄 두 달간의 유럽 자동차 여행을 계획했다. 항공권, 렌터카, 수십 군데의 숙소 예약을 마친 상태였는데 코로나로 갑자기 해외여행이 금지되었다. 수개월간 해외여행을 준비하다가 코로나로 모든 것을 취소하고 나니 멘붕이 왔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서 정신을 추스르고 다시 회사 근무에 전념하려 했으나 한번 풀어진 마음은 쉽사리 조여지지 않았다. 다행히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와 단축근무로 여유 있게 회사생활을 할 수 있어서 여분의 시간 동안 미술학원을 다니고 자전거 라이딩, 트래킹 등 취미생활을 하면서 무료함을 달랬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 2022.5월 만 65세가 되어 지하철을 무료로 탑승할 수 있는 어르신이 돼 버렸다. 그리고 2022년 말 정년퇴직했다. 2023.1월 현재 코로나는 아직 종식되지 않았지만 해외여행과 해외살이에는 별 문제가 없는 수준이다. 여행작가로 경력전환하여 해외살이를 하면서 글을 쓰겠다는 3년 전의 계획을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하고 싶은 일들을 미리 계획했기 때문에 퇴직만 하면 일사불란하게 제2의 인생이 시작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퇴직하고 나니 당황스러웠다. 해외살이를 하면서 글을 쓰겠다는 계획은 변함이 없으나 국내에 있을 때는 무엇을 하며 지내는 게 좋은지 선택이 어려웠다. 제주도로 내려가 올레길을 걸으며 생각을 정리했고 이미 퇴직한 친구들을 만나 퇴직 이후 생활에 대한 노하우를 들었다. 일찍이 명퇴하고 13년째 놀고 있는 고향친구의 흥미진진한 백수 생활기 를 들으면서 내 미래계획을 다듬었고 최근 퇴직한 친구들과 주중에 당구, 골프, 등산을 함께 하면서 너무 바빠서 과로사할 수 있다는 백수 생활을 체험했다.


집 주변을 둘러보니 시민을 위한 시설이 많이 있다. 도보 10분 이내 거리에만 구청 문화체육센터, 청소년센터, 어린이 도서관이 있다. 문화체육센터에는 도서관, 헬스장, 체육실이 있고 체육실에서 요가, 스트레칭, 국선도, 필라테스, 에어로빅, 댄스를 배울 수 있다. 청소년센터에서는 도서관, 체육관이 있고 외국어, 피아노, 배드민턴, 검도, 수영을 배울 수 있다. 세 곳 모두 도서관 열람실에서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다. 내 집 주변뿐만 아니라 서울 구석구석에 시민을 위한 문화체육시설과 도서관이 널려있으며 시설이용료와 수강료가 무척 저렴하다. 이러한 시설만 활용해도 퇴직 후 저비용으로 다양한 문화체육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5분 거리의 문화체육센터에 오전 시간대 요가와 스트레칭을 등록했다. 요가 시간에 장작개비처럼 굳어버린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꼬다가 허리통증이 와서 침을 맞기도 했지만 내 몸이 젊어지는 것 같아 뿌듯하다. 스트레칭은 처음 40분간 빠른 음악에 맞춰 강사의 동작을 따라 하는데 땀이 흠뻑 나는 격렬한 운동이자 춤이다. 젊은 시절 디스코텍에서 밤새 몸을 흔들던 기억이 떠오른다. 요가와 스트레칭 교실은 15명 정원인데 모두 여성회원뿐이다. 요가복과 에어로빅복을 입고 운동하는 여성회원들 사이에서 청일점으로 열심히 따라 하고 있다. 처음 조금 쑥스럽고 쳐다보기 민망했지만 이제는 적응하고 있다. 다른 구청 문화센터에도 온통 여성회원뿐이라고 한다. 건강에 좋은 요가, 스트레칭, 에어로빅 교실에 왜 남자가 없는지 의아하다. 그 많은 베이비부머 남자 퇴직자들은 모두 어디에 가있는지 궁금하다. 


퇴직 후 한 달을 보내고 나니 이후 생활에 대한 그림이 그려졌다. 기본 개념은 퇴직 전과 유사한 생활리듬을 유지하는 것이다. 직장이 대사관에서 구청 문화체육센터로 바뀐 것뿐이다. 퇴직 전과 동일하게 기상하고 아침 일과를 진행한다. 출근시간이 되면 운동복과 노트북을 둘러매고 문화체육센터로 출근한다. 센터에 있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거나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쓰고 요가, 스트레칭 강습시간이 되면 같은 건물에 있는 체육실에 가서 운동한다. 점심은 근처의 카페나 식당에서 해결하고 도서관으로 다시 와서 글쓰기, 독서, 뉴스검색등을 한다. 5시쯤 퇴근하며 운동을 위해 아파트 뒷산을 한 시간쯤 걸어서 귀가한다. 퇴근 후와 주말시간은 퇴직 전처럼 친구모임, 여행, 등산을 한다.


하지만 퇴직 후 하고 싶은 일은 해외살이를 하면서 느끼고 경험한 것을 글로 쓰고 나중에 책을 내는 것이다. 일단 2월 말쯤 제주도에 가서 한달살이를 하려 한다. 해외살이에 필요한 것들이 뭔가 파악하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관광, 쇼핑하고 카페나 도서관에서 글을 쓰며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서 식사 준비하는 연습을 해 보려 한다. 


퇴직 한 달째인 퇴직 새내기로서 새로운 인생에 대한 기대가 가득하다.

작가의 이전글 내 삶 속의 장유유서(長幼有序)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