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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Aug 30. 2019

중년에 친구 사귀기

사마천은 사기 계명 유기(鷄鳴偶記) 편에서 친구를 4종류로 분류했다. 서로 아끼며 존경하는 외우(畏友), 힘들 때 서로 돕는 밀우(密友), 함께 놀고 어울리는 일우(昵友),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적우(賊友)로 구분했다. 이외에도 관포지교, 수어지교, 문경지교 등 역사를 통한 친구의 사례를 기록하였다.


2100년 전 사마천이 분류한 4가지 친구 유형은 우리 주변에서 보는 친구관계와 다르지 않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의 인간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며 사마천 시대나 지금이나 관계에 따른 용어 차이만 있을 뿐 친구 유형은 대동소이하다.


중년쯤 되면 수십 년간 알게 된 수많은 사람들 중 소수정예만 친구로 자리매김하고 나머지는 혹시 필요할지 몰라 전화번호만 남겨놓는 지인이 된다. 나는 소수정예 친구 중 관계의 깊이에 따라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사마천이 적우라고 분류한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사람은 이미 친구가 아니므로. 절친, 편한 친구, 그냥 친구 셋으로 구분이다.


절친은 친구 중에서도 가장 깊은 관계이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거나 “친구는 제2의 나이다” 에서의 친구는 바로 절친을 뜻한다. 절친과는 남에게 알려지면 손해가 되는 은밀한 얘기마저 터놓고 얘기한다. 학창 시절부터 수십 년간 만나 오면서 깊은 신뢰가 형성되어 있으며 특별한 일이 없다면 평생 유지된다. 의견 차이로 언성을 높이더라도 뒤끝이 없으며 심한 말을 해도 그뿐이다. 술 마시고 실수를 했더라도 나의 실수를 친구가 모두 포용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걱정하지 않는다.


바닥부터 차곡차곡 쌓은 신뢰가 있어서 어떤 일이 있어도 무너지지 않는다. 둘이 경쟁관계에 있을 때 본인이 패하더라도 진심으로 친구를 축하해준다. 서로 종교가 다르거나 이념이 다르더라도 서로를 이해해준다. 멀리 떨어져 살더라도 주기적으로 연락하고 일부러 만나러 간다. 오랜만에 만나게 되면 마음이 설레기도 한다. 이런 친구는 한 명만 있어도 성공이라고 한다.


편한 친구는 삶의 방향성, 취미, 성향이 비슷하다. 대개는 고향 친구, 동창이지만 사회생활이나 동호회 활동 중에 친구가 되기도 한다. 편한 친구와는 운동, 놀이 등 취미활동을 함께 하거나 관심분야의 대화를 하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운동, 취미활동들 상황에 따라 필요한 멤버 구성을 위해 만난다.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친구이나 속내를 드러내는 은밀하고 깊은 얘기는 조심한다. 종교가 다른 것 까지는 상관없지만 이념이 다르면 이 관계는 단절되기 쉽다. 태극기와 촛불은 편한 친구로 지내기 어렵다. 혹시 의견 대립이 생기기라도 하면 뒤끝이 오래간다. 


그냥 친구는 만나면 반갑게 악수하고 안부를 묻는 관계이다. 이역시 고향 친구, 학교 동창 또는 직장동료가 대부분이다. 그냥 친구는 함께 있으면 예의를 지키면서 서로 실수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모임이나 경조사에서 만날뿐 일부러 청하여 만나지는 않는다. 의견 충돌이 예상되는 얘기는 아예 꺼내지 않는다.


친구 숫자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나 내 경우 절친은 고교와 대학부터 인연을 맺은 3명이고 편한 친구는 동창과 직장에서 만나 인연을 이어온 20명 정도이다. 그리고 그냥 친구는 그 외 50명쯤 되는 것 같다. 몇 년씩 연락 한번 안 하면서도 전화번호가 저장된 지인은 꽤 된다. 경조사는 절친, 편한 친구는 가급적 참석하고 나머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내 경조사 역시 이 친구들에게만 알린다. 




중년에(50 이후) 또 다른 친구가 생길 수 있을까? 학교, 군대 등 단체생활이 끝난 이후에는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학창 시절에는 이해관계가 없고 또래들과 함께 지내게 되니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지만 그 이후는 상하관계의 조직사회에 들어서기 때문에 친구 사귀기가 어려워진다. 


중년 이후 절친은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다. 편한 친구 중 자주 만나다 보면 절친 가까이 근접하기도 하지만 수십 년간 익은 절친의 숙성도까지는 올라가지 않는다. 절친은 10대 20대 성숙되지 않은 시절의 풋풋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어서 편한 친구가 아무리 가까워진다 해도 절친이 되지는 않는다.


그냥 친구가 편한 친구로 올라가는 경우는 가능하다. 자주 만나다 보면 전에는 몰랐던 장점이 발견되고 나와 공감이 되면 편한 친구로 바뀔 수 있다. 늦게 만난 사람이 친구를 거쳐 편한 친구가 될 수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동호회에서 만난 사람이다. 함께 동호회 활동을 하다 보면 차츰 가까워져서 친구가 되고 그게 더 발전하면 편한 친구까지 격상될 수도 있다.


젊었을 때는 인간관계를 무작정 넓혔다. 하루짜리 연수를 함께 받아도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면서 관계를 이어가려고 노력했다. 넓은 인간관계가 능력이라고 생각하여 연락처 많은 것이 무슨 자랑거리처럼 여겨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중년이 되니 인간관계가 늘어나는 것이 피곤해진다. 지금 알고 있는 절친, 편한 친구, 그냥 친구 경조사 챙기기도 쉽지 않다. 각종 동창 모임을 비롯하여 친구, 동호회 모임도 있다 보니 매달 서너 번꼴로 모임이 생긴다. 모임에 전부 나가려면 시간뿐만 아니라 돈도 제법 들게 된다. 여기에 또 다른 모임을 만들면 인생이 피곤해질 것 같아 새로운 인간관계 형성이 꺼려진다.


몇 년 전 여행사를 통해 히말라야 트래킹을 갔다. 일행이 10명이었는데 또래도 몇 명이 있었다. 여행기간 동안 24시간을 함께 했으며 함께 식사하고 사진 찍으며 끈끈한 동료의식으로 10일을 보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서 인지 모두가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인천공항 도착 후 소리 없이 모두 사라졌다. 여행사 홈페이지에 서로 사진을 올려서 자기의 사진을 다운로드하는 것으로 끝났다. 누구도 식사 한번 하자는 얘기가 없었다. 나 역시 연락하지 않았다. 모두가 비슷한 마음인 것 같았다. 새로운 인간관계 맺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지난봄 동유럽 패키지여행 때도 마찬가지였다. 5060 또래 20여 명이 10일간 함께 여행했으면서도 인천공항 도착 후 서로 조용히 갈길을 갔다. 이걸로 끝이었다. 동호회도 마찬가지이다. 함께 땀 흘리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개인적으로 친구가 된 동호인은 없다. 서로 예의 지키며 덕담만 하는 관계로 지낸다. 중년 이후에 친구관계를 맺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브런치 작가 중 한 분이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만난 글 친구와 해외여행을 함께 했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즐거운 여행이었다고 썼다. 당시 작가가 50대였는데 그 나이에 글로 만나서 친구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 이채로웠다. 


여행을 10일씩 함께 해도 친구가 되지 않는데 글로 만난 사람과는 친구가 되어 여행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신선했다. 서로 의기투합하여 여행을 함께 하려면 최소 편한 친구는 되어야 한다. 글만 가지고도 편안한 친구까지 발전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글은 글쓴이의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라서 글만 봐도 글쓴이의 성향과 가치관을 알 수 있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친근감이 생기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또한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자주 만나야 하는데 온라인상에서 글로 만나는 것도 밖에서 만나는 것처럼 친구로 숙성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젊은 시절 펜팔만 하다가 결혼한 사람도 있고 글만 주고받고 얼굴도 보지 못하면서 평생 사랑에 빠진 사람도 있다는데 이는 글이 가진 소통과 공감의 효과 때문일 것이다.


글을 읽다 보면 궁금해지는 작가가 있다. 풍부한 경험과 인생의 연륜이 느껴지는 글을 읽으면 글쓴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가 궁금해진다. 젊은이의 통찰 있는 글을 보면 나는 생각 없이 살았던 시기에 어떻게 이런 깊이 있는 글이 가능한지 궁금해진다. 또한 나이에 무관하게 기존 관념을 뛰어넘는 신선한 글을 읽다 보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이 궁금해진다.


궁금한 작가들은 만나보고 싶어 진다. 글에서 나오는 삶의 깊이를 바로 옆에서 느껴보고 싶어 진다. 한번 만나서 살아가는 얘기를 주고받고 싶어 진다. 


50 이후에도 그냥 친구는 몇 명 생겼지만 편안한 친구까지 발전한 사람은 없었다. 나의 모든 편안한 친구는 30대 이전에 사귄 사람들이다. 그런데 브런치를 하면서 60 넘어서도 편안한 친구가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쓴이와 나의 성향이 비슷하면 친근감을 느끼게 되고 댓글을 주고받다 보면 어느 순간 소통과 공감을 통해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브런치를 통해 새로운 편안한 친구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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