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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Sep 04. 2023

나 홀로 제주도 한달살이

나 홀로 해외살이를 위한 연습 (2023.3월)


작년 말 65세로 퇴직했다. 건강이 좋을 때 해외여행을 많이 하고 싶었으며 단순한 해외여행이 아닌 이곳저곳에서 몇 달씩 살아보는 여행이 하고 싶었다. 짧으면 70세까지 5년, 길면 75세까지 10년간 해외여행 겸 해외살이를 하면서 나의 노후생활을 보내려 한다. 문제는 나 홀로 해외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애초에는 부부가 함께 나가기로 했으나 작년 말 문제가 생겨서 부부가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나 홀로 해외살이를 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올릴 기회가 있을 것이다.


부부가 함께 한다면 해외살이를 당장 떠날 수도 있었으나 나 홀로 해외살이를 하려고 하니 조금 걱정이 되었다.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혼자 사는 것이 외롭지나 않을까 걱정이었다. 외로워질 때는 어떻게 극복하는 것이 좋은지 그리고 사전에 준비할 것은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먼저 제주도에 가서 나 홀로 한달살이를 해 보기로 했다. 에어비엔비와 미스터맨션등 숙박앱을 통해 숙소를 잡았다. 서귀포 신시가지와 구시가지 중간지점에 있는 펜션이다. 나의 루틴 한 일과를 쉽게 할 수 있도록 시설, 교통, 산책로, 도서관, 식당과 마트에 대한 접근성 그리고 가성비를 고려했다. 


이미 서울에서 혼자 살고 있으므로 혼자의 삶에 익숙해져 있고 퇴직 이후 두 달간 나 홀로 삶에 대한 루틴이 만들어진 상태이므로 어디서건 루틴대로 살면 되리라 생각했다. 나의 루틴은 월 10~15일 정도는 여행동호회에서 진행하는 등산, 트래킹, 투어를 다녀오고 집에 있는 날은 오전, 오후, 저녁 3 등분하여 공부, 운동, 취미생활을 한다. 조식은 누룽지, 점심은 삶은 계란이나 과일로 간단히 해결하고 저녁은 식당에서 했다. 공부는 주로 유튜브를 보면서 했고 운동과 취미활동은 요가, 스트레칭, 산책, 등산, 독서, 글쓰기 등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서 했다. 


제주도에서 한달살이를 하더라도 내가 서울서 했던 루틴이 그대로 적용된다. 서울에서 서귀포로 장소만 바뀌었을 뿐 내 생활은 비슷하다. 달라진 것은 나의 루틴 한 일들이 진행되는 장소뿐이다. 트래킹 코스가 서울 근교에서 서귀포 인근 올레길로 바뀌었고 글 쓰는 장소가 아파트단지 독서실에서 서귀포 도서관으로 바뀌었고 유튜브를 보면서 공부하던 장소가 서울 아파트에서 서귀포 펜션으로 바뀌었으며 저녁 식사하던 식당과 메뉴가 바뀌었다. 서울에서 처럼 아침은 누룽지를 먹고 점심은 간단히 그리고 저녁은 서귀포 맛집을 탐방했다. 익숙했던 서울에서 생지인 서귀포로 생활공간이 바뀌니 숙소, 교통등 불편한 게 있었지만 서울보다 따뜻한 날씨에 공기 좋고 경치 좋은 곳이라서 신선했다. 


애초 걱정했던 외로움에 대해서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펜션주인은 퇴직 후 노후를 위해 서울에서 제주도로 내려온 60대 후반의 부부였다. 재력이 있어서 펜션운영에 목매는 부부가 아니었다. 내가 퇴직하고 한달살이 왔다고 하니 부부는 나의 친구가 돼주었다. 나는 자주 올레길을 걸었는데 부부가 가끔 함께 걸었다. 함께 올레길을 걷고 나면 식사와 술까지 한잔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니 외로울 일이 없었다. 외로움에 대한 연습을 위해 내려온 제주도는 외롭기는커녕 서울에서 보다 더 활기찬 한 달이 되고 말았다. 이 경험은 해외에 나가더라도 누군가와 친해져서 외로울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자신감을 갖게 했다.


서귀포 신시가지에 서귀포 중앙도서관이 있다. 도시 중앙 공원 내에 최신건물로 도서관을 조성하여 장서도 많고 깨끗하며 공부에 몰입할 수 있는 아늑한 분위기이다. 서귀포 바다가 보이는 창가자리에 앉아 독서와 글쓰기를 하다 보면 전망 좋은 카페에 있는듯한 고급스러운 느낌이다. 일주일에 서너 번 오전 중에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 간단한 점심 후 오후에 올레길을 걷곤 했다. 


서귀포와 송악산 사이는 올레길 7, 7-1, 8, 9, 10 코스가 지나가며 제주 올레길 중에서도 가장 경관이 수려하다. 유채꽃이 만발한 두머니몰 공원이나 대평의 카페루시아 부근 바닷가를 걷다 보면 눈을 어디로 돌려야 할지 모를 정도로 아름답다. 3월의 제주 들판에는 밀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서 밀감 밭 사이를 걷는 것 또한 특별한 맛이 있다. 3월의 후반부가 되면서는 벚꽃을 포함한 수많은 이름 모를 꽃들까지 피기 시작해서 서귀포 주변의 경관이 더욱 화려해진다. 서울에서 걸은 남산길도 예뻤지만 제주도에서는 한 차원 더 아름다운 길을 한 달 동안 매일 걸었다. 이게 제주도살이 중 가장 좋았다. 저녁에는 맛집을 찾아다니며 식사를 하고 귀가하면 유튜브를 보면서 휴식 겸 공부를 하고 홀로 와인 한잔 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이처럼 하루 일과는 루틴 하게 매일 진행되었다. 

올레길 8

타지에서 한달살이를 하면 내 집 에서와는 달리 흥미진진한 일이 많을 것으로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제주도에서 한 달을 살아보니 내 집에서 혼자 살아가는 것과 생활 자체는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경우, 예를 들어 한적한 곳에 가서 글을 쓰거나 추위나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에서 살거나 골프, 해양스포츠 등 자신의 취미생활을 쉽게 할 수 있는 곳에 가서 사는 것은 한달살이가 좋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집에서의 생활이 문제가 없고 타지에서 한 달씩 살아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경우라면 혼자서 한 달씩 집을 떠나 살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 너무 지쳐서 집을 떠나고 싶다면 며칠간 좋은 곳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게 더 좋은 것 같았다. 내가 타지에서 한달살이는 하는 것은 타지에서 여러 경험을 하고 이를 글로 쓰려고 하는 특별한 이유 때문이다.


타지에서 한 달을 사는 것은 뭔가 애매했다. 한 곳에서 놀기만 하기에 한 달은 길고 원주민처럼 살아 보려면 한 달은 부족하다. 이번 한달살이는 숙소가 불편하고 한 달이라는 시간적 제약으로 장기적인 취미활동을 할 수 없었다. 일이 년 살게 되면 아파트를 렌트하고 취미활동을 추가하여 풍요로운 삶이 가능할 것 같다. 서귀포 월드컵경기장 내에 있는 체육문화센터에서는 저렴한 가격으로 요가, 스트레칭, 에어로빅등 강습을 받을 수 있고 탁구, 테니스, 수영, 배드민턴 동호회 활동을 할 수 있다. 해외살이를 마치면 서귀포에서 일이 년 살면서 센터의 다양한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면서 여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다.


2023년 3월 말 서귀포 한달살이를 마치면서 해외 한달살이 할 곳을 선정하고 숙소를 예약했다. 5월과 6월은 작년 이태리 돌로미티 트래킹 팀원들과 해외여행 계획이 있고 7월 중에는 어머니 기제사가 있어서 8월에 첫 해외살이를 하기로 했다. 첫 장소는 과거 1년간 근무경험이 있는 일본 그리고 8월에도 시원할 것 같은 삿포로로 정했다. 단독숙소보다는 좀 불편하더라도 여러 사람이 함께 사는 민박집으로 예약했다. 조용히 홀로 사는 것보다는 여러 사람과 부딪치며 사는 것이 내 삶을 더 활기차게 한다고 생각해서 이다. 8월의 첫 해외한달살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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