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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Sep 05. 2023

이베리아 반도 자동차여행(2)

퇴직 후 친구들과 자유여행


이번여행은 미술관 관람도 곁들였다.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 바르셀로나 피카소미술관, 살바도르달리 미술관을 관람했다. 프라도 미술관은 2009년 출장 때 다녀온 적이 있었으나 당시 시간에 쫓겨 놓친 작품이 많았다. 이번에는 시간을 두고 구석구석 작품을 감상했다. 프라도 미술관에 가면 꼭 봐야 한다는 그림 100가지를 찾아다녔다.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과 살바도르달리 미술관에서도 세계적인 화가의 수많은 작품을 직접 감상하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그러나 미술에 대한 안목이 없어서인지 입체파 피카소와 초현실주의 달리의 추상화 대한 작품에 대해서는 큰 감동을 받지 못했다.


이번 여행 중 트래킹도 세 번 계획했다. 스페인 북부에 있는 피쿠스드 유로파 국립공원의 가장 유명한 트래킹코스인 푸엔테데 코스를 하루 트래킹했다. 작년에 간 이태리 돌로미티 지역과 비슷한 아름다운 경관을 보면서 15킬로 정도를 걸었다. 인근에 바위산으로 된 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트래킹 하기로 했는데 길을 잘못 들어 비상구조용 도로로 들어가 버렸다. 좀 가다 보면 좋은 길이 나오겠지 하면서 가다 보니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다. 차 하나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외길이어서 뒤로 돌아 나올 수도 없었다. 오프로드 전용 지프차도 어려운 날카로운 돌길을 8인승 밴을 타고 가려하니 고장이 나거나 펑크가 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엄습했다. 설상가상으로 안개 까지 끼기 시작하여 10미터 앞도 잘 보이지 않게 되었고 급기야 차가 겨우 갈 수 있는 좁디좁은 등성이길로 바뀌었다. 길 좌우는 벼랑이어서 까마득했고 바닥은 거친 돌길이어서 차는 끊임없이 요동쳤다. 공포가 밀려왔으나 앞으로 계속 갈 수밖에 없는 외길이었다. 놀이공원의 가장 무서운 롤러코스터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한 시간여 진땀 나는 곡예 운전 끝에 겨우 위험하지 않는 지역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지나고 나니 이런 아찔한 경험도 즐거운 추억이 되었지만 당시로는 모골이 송연할 정도였다. 사고가 아니더라도 돌길에서 펑크라도 났더라면 우리의 일정은 큰 차질이 생겼을 것이다. 

트래킹 코스가 좋다고 알려진 포르투갈 산악과 스페인 카필레라 산에서도 반나절 정도 트래킹 했다. 중세시대 유적이 곳곳에 있는 산길을 걸어보는 특이한 경험은 좋았으나 트래킹 자체는 밋밋했다. 강수량이 적고 토양이 좋지 않아 산에 나무가 별로 없다. 한국에서 처럼 나무터널 사이를 걷고 계곡을 걷는 것이 아니라 땡빛이 내리쬐는 물 없는 산을 걸으려니 힘만 들고 재미가 없다. 히말라야, 돌로미티, 그리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좋다는 코스를 걸어봤으나 금수강산 한국의 트래킹 코스가 가장 좋은 듯하다. 새삼 한국의 금수강산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여행 중 대부분의 저녁식사는 우리가 준비해서 먹었다. 일일 여행 마치고 숙소 들어가기 전 대형마트에 들러 신선한 먹거리와 와인을 샀다. 스페인의 외식물가는 서울보다 비쌌지만 마트 물가는 한국보다 저렴했다. 특히 스테이크, 와인, 과일은 맛도 좋으면서 한국의 절반가격이다. 아침식사는 전날 마트에서 사 온 빵, 과일, 야채, 계란, 요구르트 등을 먹었고 저녁은 스테이크 위주로 풍성한 만찬을 즐겼다. 저녁 식사마다 스페인산 와인을 원 없이 마셨다. 작년 이태리 돌로미티 여행 때는 이태리산 와인을 원 없이 마셨는데 금년에는 22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스페인산 와인을 즐겼다. 이 덕분인지 23일 여행 중 몸무게가 3킬로가 늘어났고 뱃살이 눈에 띄게 불었다. 귀국 후 뱃살을 빼기 위해 다이어트를 해야 할 정도였다. 식사담당의 요리 솜씨가 좋아서 매번 맛있고 훌륭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헌신적으로 식사를 준비해 줬으며 일행 모두도 식사준비와 설거지를 도왔다. 여행 후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은 전망 좋은 숙소 바비큐 장에서 풍성한 음식을 차려 좋고 함께 식사하는 사진이다. 나이가 드니 여행의 즐거움이 관광이 아닌 맛있는 음식으로 변한 것 같다.

점심식사는 특별한 장소에서 특색 있는 음식을 먹었다. 유튜브, 여행서적, 구글지도를 검색하여 맛집을 찾아다녔다. 마드리드, 포루투, 리스본 같은 대도시에서는 서울의 광장시장 같은 재래시장을 찾았고 피코스유로파 국립공원, 카디스, 론다, 그라나다, 네르하에서는 파라도르 호텔 식당에서 식사했다. 파라도르는 스페인 국가에서 운영하는 호텔체인이다. 스페인의 고성이나 풍광 좋은 곳에 위치한 특별한 호텔이며 운영하는 레스토랑 역시 최고급이다. 일반 레스토랑보다 약간 비싸긴 하지만 역사적인 장소에서 고급스럽고 수준 높은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이번 여행 23일간 11곳에서 숙박했다. 포루투, 론다, 사라고사 3곳에서 1박 하고 바르셀로나에서 3박 했으며 마드리드, 세고비아, 리스본, 세비야, 카디스, 그라나다, 무르시아에서 2박 했다. 모든 숙소는 8명이 잘 수 있도록 방 4개짜리 독채를 예약했다. 어디나 시내는 가격이 비싸고 외곽은 저렴하다. 우리는 렌터카로 움직이기 때문에 굳이 시내에 있을 필요가 없어서 숙소 대부분이 시가지와 30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가격은 1박에 한화 40~50만 원 수준이었는데 시외곽이어서 인지 집들이 훌륭했다. 몇몇 숙소는 바베큐장과 수영장이 딸린 고급주택이어서 수영하면서 바비큐를 즐기는 호사스러운 경험을 했다. 

그러나 집을 찾아 들어가기 까지가 고난이었다. 주소에 있는 집을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집에 들어가기까지 보통 한 시간 이상이 걸렸으며 심한 곳은 서너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집에 주인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 주인이 알려준 비밀번호로 키를 찾아서 문을 열어야 하는데 번번이 비밀번호가 달랐다. 이전 투숙자가 나가면서 비밀번호를 바꿔버린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 팀 예약자는 유심으로 전화번호가 바뀌어서 주인과 소통이 안되어 비밀번호 바뀐 것을 연락받을 수 없었다. 여러 곳으로 숙소를 옮기는 여행이라면 주인과의 소통을 위해 본인의 전화번호를 유지할 수 있는 해외로밍을 해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이번 여행은 렌터카로 6천 킬로를 운전했다. 팀장과 내가 번갈아 운전했다. 구글 맵을 보면서 유럽 중세 도시의 복잡한 길과 주차장을 차질 없이 잘 찾아다녔다. 유럽 관광지는 중세 때의 도로가 유지되고 있어서 길이 좁고 주차장이 작고 협소하다. 관광지 부근 핵심지역은 외부차량 진입이 금지되어 허가 없이 들어가면 벌금을 물기도 한다. 신호체계도 우리와 달라 헷갈리는 데다 진입금지 구역을 확인해야 하는 등 자동차 운전에 신경이 곤두섰다. 주차장은 진출입로가 좁아서 매우 조심스러웠다. 우리는 8인승 밴으로 차가 큰 편이어서 지하주차장 드나들 때마다 애를 먹었다. 우리가 렌트한 벤은 이름만 벤츠이지 내부는 엉터리였다. 운전석은 뒤로 젖혀지는데 나머지 좌석은 뒤로 젖혀지지 않아 6000킬로를 꽃꽂이 앉아서 가야 했으며 앞뒤 간격도 좁아서 몹시 불편했다. 이번 여행 중 옥의 티라 하겠다. 


여행 전 스페인의 도둑과 소매치기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차를 주차하고 관광할 때는 차량 내 도난을 예방하기 위해 햇빛가리개 겸 창문 가리개를 붙여서 내부를 볼 수 없도록 했고 짐칸에 있는 모든 가방을 체인으로 연결시켜 가방 하나만 빠져나갈 수 없도록 했으며 주차할 때는 차 뒤편을 벽에 근접시켜서 뒷문을 열 수 없게 했다. 덕분에 23일간의 여행 중 불미스러운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개인별로는 소매치기를 방지하기 위해 앞으로 매는 가방을 지참했고 핸드폰 고리와 줄을 구입하여 가방에 연결시 겼다. 단체로 시내 관광을 할 때는 가급적 함께 다니고 여자들이 중간에 앞뒤에 남자가 위치했다. 


이런 중첩된 예방조치에도 불구하고 소매치기 당할 뻔한 사건이 있었다. 일행이 리스본 중앙시장을 구경하는데 인파가 몰리는 복잡한 곳에서 누군가가 여성 한 명의 얼굴에 스프레이로 물을 뿌렸다. 놀라서 얼굴을 막으며 그쪽을 바라보는데 뒤에 있던 도둑놈이 가방에 있는 핸드폰을 소매치기했다. 그러나 핸드폰이 가방과 줄로 연결이 되어있어서 줄이 길게 늘어지면서 소매치기가 발각되었다. 소매치기는 황급히 폰을 내려놓고 달아나 버렸다. 나중 들으니 리스본에서 하루 400건의 폰 분실신고가 들어오며 한국인이 소매치기의 주 대상이라고 했다. 허긴 세계 어디를 가나 한국인 여행객이 많고 모두가 좋은 삼성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니 소매치기들의 대상이 될 법도 하다.


23일간의 이베리아 여행은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대개의 경우 해외 패키지여행이 10박 내외이다. 10일을 넘기면 체력적으로 무리가 오기 때문에 적정 여행기간을 10일로 한다고 한다. 10일을 넘길 경우에는 중간에 충분한 휴식을 취한 다음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욕심이 앞선 나머지 일정이 좀 무리였다. 덕분에 기간에 비해 다양한 장소를 갈 수 있었으나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몸이 지치니 일행 간 서로 신경이 예민해져서 좋았던 분위기가 조금씩 가라앉았다. 

작년 여행 후에는 모두가 즐거워 했으며 해마다 함께 여행하자는 훈훈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번 여행 후 뒤풀이 할 때는 모두 알차고 즐거운 여행이었다고는 했지만 또 함께 여행하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마 단체여행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컸었다고 느껴서였을 것이다. 8명씩 하는 단체여행보다는 커플로 단출하고 여유롭게 여행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이번여행은 정말 알차고 유익했다. 이번 여행 자체로도 보람 있었지만 앞으로 5~10년간 나 홀로 해외여행과 해외살이를 하는데 아주 좋은 경험이 되었다. 숙소, 항공권, 렌터카를 예약하고 렌터카로 숙소를 찾아다니고 구글 맵을 보면서 길을 찾고 주차장, 식당등을 찾아다니는 연습이 되었다. 혼자 여행하면서 겪게 될 시행착오를 이번에 겪어보고 교훈을 얻게 되었다. 앞으로 진행하게 될 나 홀로 해외여행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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