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 반도는 2~3세기경부터 부족국가들이 존재했으며 인도와 중국사이에 위치한 관계로 중계무역이 발전했다. 인도와 중국상인들이 말레이 반도에 머무르다 보니 힌두교와 불교가 일찍이 들어오게 되었으며 12세기부터는 이슬람 세력이 들어오면서 이슬람화 되어갔다. 말라카를 중심으로 융성하였으나 1511년에는 포루투갈, 1641년에는 네덜란드, 1867년에는 영국, 1941년 일본의 지배를 받았고 1945년 패전후 다시 영국의 지배에 들어갔다. 195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으며 1963년에는 보르네오섬에 위치한 두왕국이 말레이시아 연방에 합류함으로써 오늘날의 말레이시아가 완성되었다.
말레이시아 역사에서 보듯이 최초에는 인도와 중국의 영향을 받고 이후 이슬람의 영향을 받았으며 다시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일본의 지배를 받는 등 종교적, 문화적으로 많은 이질적인 요소가 섞여있는 나라이다. 영국지배 시기에 고무와 주석채굴을 위해 인도와 중국으로부터 많은 노동자를 들여온 덕분에 중국인이 25% 인도인이 10% 이며 경제의 상당 부분을 중국계가 장악하고 있다. 이는 인종간 갈등요인이 되어 많은 충돌을 일으켰으며 지금도 커다란 갈등요인으로 남아있다.
쿠알라룸푸르는 1880년 영국이 식민지배를 위해 건설하였으며 1957년 독립 후 수도가 되었다. 150년 밖에 되지 않은 도시이고, 수도가 된 것은 65년에 불과하여 볼만한 역사유적이 별로 없다. 영국식민지 시절 건설된 관청과 식민지 시절 중국과 인도에서 건너온 노등자들이 거주했던 차이나타운과 리틀인디아가 말레이시아의 근대사 흔적이다. 1957년 수도가 된 이후에 건설된 독립기념 메르데카광장과 이슬람사원, 힌두교사원 그리고 열대림으로 우거진 공원들이 가볼만 하다. 최근 건설된 고층건물들과 쇼핑센터가 눈길을 끌며 도시 외곽 석회암 동굴에 건설된 힌두교 사원이 독특하다. 국립박물관에 들러서 말레이시아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말레이시아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쿠알라룸푸르에는 시내 투어버스가 있다. 투어버스는 두 개의 코스를 도는데 1코스는 시내중심가를, 2코스는 외곽지역을 돈다. 각코스별 2시간 총 4시간이 소요된다. 28개 장소에서 정차하는데 10개 지역정도만 둘러보면 쿠알라룸푸르 시내 관광은 충분하다. 투어버스가 가지 않는 바투동굴만 따로 다녀오면 더 이상 갈만한 곳은 없다. 티켓은 60 링기트 한화 18000원 정도이며 24시간 유효하다.
승차는 버스가 정차하는 모든 곳이 가능 하지만 첫 출발하는 부킷빈탕에서 승차하는 것이 유리하다. 단기여행자라면 일찍 점심 후 한시쯤 승차하여 차이나타운, 리틀인디아, 트윈타워, 쿠알라룸푸르 타워등에 내려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20분 뒤에 오는 뒤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투어가 종료되는 6시까지 관광하면 된다. 다음날 아침 9시 첫차를 타고 다시 돌면서 보지 못한 곳에 잠시 들러 한시까지 관광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러면 24시간 티켓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쿠알라룸푸르 전 지역을 둘러볼 수 있다.
단기관광과 한달살이 관광은 조금 다르다. 한달살이 관광은 시간이 많으므로 먼저 숲을 보고 나무는 천천히 시간을 두고 봐야 한다. 먼저 도시의 전반적인 형태와 관광지, 유적지의 외관을 본 후 나중 어디를 언제 갈 것인지를 정하고 날씨와 이벤트 등을 고려하여 적절한 시기에 방문한다. 나는 투어버스를 타고 코스별 두 번씩 돌았다. 따로 정차하지 않고 구글지도를 보면서 쿠알라룸푸르의 전반적인 도시형태와 주요 볼거리의 위치와 외부 모습을 파악했다. 이후 유튜브를 보면서 세부적인 유적과 관광지의 모습을 확인하고 구름 끼고 시원한 날 현장을 방문했으며 지인가족들에게 연락하여 함께 다녔다.
쿠알라룸푸르에는 한국관광객이 참 많다. 자녀 영어교육을 위해 온 엄마들 뿐만 아니라 방학을 맞아 자녀들과 함께 놀러 온 엄마들도 많았다. 젊은 남녀도 많다. 시내 어디를 가나 한국사람들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국립박물관에 갔더니 한국어 가이드 뒤를 따르는 한국인이 백 명은 족히 되어 보였다. 박물관에 오가는 사람 중 반정도가 한국인이며 초중학생과 함께 온 젊은 엄마가 대부분이다. 겨울이면 동남아 어느 곳을 가더라도 추위를 피해 따뜻한 곳으로 여행온 한국인 관광객이 넘쳐난다.
과거 70, 80년대 일본경제가 최고점일 때 일본인 관광객들이 동남아를 점령한 적이 있었다. 생활에 여유가 있으면 해외여행 욕구가 생기며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동남아가 매력적인 휴양지이다. 일본은 경제가 쇠퇴하여 해외여행객이 줄어들고 있으나 한국은 2000년 이후 세계 10위 수준 경제대국으로 상승하여 해외여행객이 급증하고 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나 한국관광객이 많으며 특히 동남아 국가들은 한국인들이 여행지를 점령하다시피 한다. 이러한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도 노령화와 저출산으로 머지않아 내리막길을 걷는다고 하니 가까운 미래에 일본처럼 여행객이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다. 부자 망해도 3대라는 말처럼 일본은 80년대 절정기를 지나고도 30년은 괜찮았던 것 같다. 한국의 경제절정기를 2020년이라 하면 앞으로 30년 후인 2050년까지는 한국인 여행객이 동남아를 쓸고 다니지 않을까 생각한다.
쿠알라룸푸르에는 곳곳에 한국의 흔적이 보인다. K-문화, K-미용, K-음식, K-팝이 여러 곳에 보인다. 대형 백화점에 한국화장품, 한국전자제품, 한국음식, 한국제과점, 한국커피전문점등 한국브랜드 매장이 많이 있으며 BTS 멤버들의 사진이 대문짝 만하게 걸려있다. 한국어로 쓰인 간판도 많으며 야시장에서는 한국어로 호객한다. 식당이나 마트에서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면 바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가 튀어나온다. 동남아 어느 나라를 가던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서 흐뭇하다. 그래서 한국 관광객들이 동남아 국가로 밀려오는가 보다.
숙소 인근의 백화점 식당가에는 한국음식점이 많이 있다. 저렴한 대중한식당, 고급한식당, 설빙, 교촌치킨, 파리바게트 매장이 있어서 한국식당에서 식사하고 설빙에서 팥빙수 먹고 파리바게트에서 빵 사 와서 담날 아침에 먹을 수 있었다. 아예 간판이 K-Food이고 김밥, 떡볶이, 어묵을 파는 식당도 있다. 동남아 대도시에서는 한국사람이 전혀 불편하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흐뭇한 상황이다.
첫 주에는 로컬 음식을 몇 번 시도했으나 느끼해서 저녁은 주로 한국식당을 찾았다. 고급한식점에서는 한국과 거의 비슷한 맛이 나고 대중한국식당은 맛이 좀 애매하기는 하지만 김치가 있고 한국음식 비슷 해서 먹을만했다. 해외에 나가서 한국음식을 고집할 필요는 없겠지만 집옆에 한국식당을 두고 일부러 느끼한 로칼음식을 찾아다닐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한국음식점이 옆에 있을 때 한국음식 많이 먹고 다음 달 베트남 가서 한국음식점 없으면 그때 로컬음식 먹으면 된다.
이번이 네 번째 한달살이이며 앞으로도 5년간은 해외 한달살이가 지속될 것이다. 67세 퇴직자가 해외 한달살이 하는것은 노후를 즐기는 것이 목적이다. 젊은 사람들은 해외 한달살이가 휴식과 재충전의 기회가 되어 향후 더 열심히 살아가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고 해외살이 중 배우고 경험한 것들이 이후의 삶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내 경우는 지금 이 순간을 즐겁게 보내는 것이 전부이다. 내가 해외살이를 함으로써 발전할 것도 없고 발전해 봤자 어디 쓸데도 없다. 지금 이 순간을 즐겁게 보내는 것이 지상목표이다.
지금까지 네 번의 한달살이는 매번 즐거웠다. 나 홀로 다니다 보니 제약받을 것이 없는 완전한 자유인이다. 해외에서 무료할까 봐 걱정이었는데 이마저도 기우였다. 세계 곳곳에 내 친구가 숨어있으며 멋진 곳에 노트북 놓고 앉아 글 쓰고 구글링 하고 유튜브 보면서 하루를 보내면 혼자 있어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하다. 노트북 가지고 놀려면 한국의 도서관이나 카페가 더 편하고 좋을 수 있겠지만 내가 가보고 싶은 외국에서 현지인들이 외국어로 떠드는 모습을 보며 현지의 문화와 음식을 즐기면서 지내는 것과는 천지 차이이다.
구정 후인 2.13일에 베트남 냐짱으로 이동한다. 그전까지 쿠알라룸푸르 에서의 한 달을 아쉬움 없이 알차게 보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