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퇴직 후 나 홀로 해외살이 중이다. 한 곳에 정착해서 해외살이를 하지 않고 국가마다 한 달씩 돌아다니고 있다. 이 생활은 건강이 허락되는 한 75세까지 지속할 생각이다. 혼자 해외살이 하면 외로워서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을 자주 받지만 외로워하지 않으면서 잘 지내고 있다. 나이 들면 해외에서 살던 사람도 귀국하는데 70이 다 돼서 뭐 하러 혼자 외국을 떠돌아다니느냐고 힐난하는 사람도 있다. 광고 카피가 생각난다 “니들이 게맛을 알아?”
젊은 시절부터 노년이 되면 해외를 돌아다니며 살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 이러고 다닌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아무리 고민해 봐도 행복이 뭔지 아직도 확실치 않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으로 지금 해외살이를 하고 있다. 퇴직 전에는 시간이 없어서 못했지만 이제는 시간 부자이니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하는 중이다. 하고 싶은 것이 중간에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때 해외살이를 그만두고 다른 것을 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해외를 떠돌아다니며 유목민처럼 살아갈 생각이다.
나이 들어 나 홀로 한달살이를 하면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려면 돈, 시간, 건강 그리고 혼자서도 잘 지내는 적응력이 있어야 한다. 나는 퇴직하였으니 시간에 대한 제약은 없다. 우리 세대 모두가 그랬겠지만 3040 때는 월화수목금금금에 야근을 밥먹듯이 하면서 살았다. 50이 다 되어서야 주 5일제가 시행되어 조금 여유가 생겼지만 해외여행 갈 정도의 휴가는 흔치 않았다. 이제 퇴직하고 30년의 휴가를 받았으니 그간 못했던 하고 싶은 것들을 원 없이 할 생각이다. 그림 그리기, 사교댄스, 악기 배우기 등의 취미활동, 지질학, 인류학 등의 공부, 봉사활동, 여행 등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들을 차근차근할 생각이다. 첫 번째로 하려는 것이 해외 유목민 생활이다. 해외 살이를 하려면 건강이 중요한데 하루하루 건강이 나빠지고 있어서 먼저 해외살이를 시작했다.
돈은 불충분 하지만 아껴 쓰면 내가 원하는 해외살이는 가능하다. 알뜰한 수준의 숙소와 식사 그리고 렌터카 없이 뚜벅이 생활을 한다면 항공권 제외하고 동남아는 150~200만 원, 동유럽은 200~250만 원 이면 한 달 생활이 가능하다. 기타 선진국은 250 이상 들겠지만 물가 비싼 국가는 방문을 최소화하고 물가 저렴한 국가 위주로 해외 살이 한다면 항공권 포함 월 300 이하로 해외 유목민 생활이 가능할 것이다. 자금이 충분하다면 렌터카도 하고 골프도 하고 가정부도 쓰면서 럭셔리한 해외살이도 가능하겠지만 내 가용자산에 맞춰서 알뜰한 해외살이를 즐기고 있다.
혼자 해외살이 하려면 무료하거나 외롭지 않아야 한다. 해외 나가서도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자기만의 할 일이 있어야 하고 혼자 생활함에 따른 외로움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젊은 사람들이야 숙소를 베이스켐프 삼아 관광, 트래킹, 라이딩도 하지만 60대 퇴직자가 하기에는 힘에 부치는 일이다. 하지만 60대도 찾아보면 할 일이 많이 있다. 어떤 이는 골프를, 어떤 이는 배드민턴 클럽을 찾아 현지인들과 배드민턴을 하기도 하고 현지에서 강습을 받기도 한다. 치앙마이에서는 외국인을 위한 요리, 요가, 피트니스 교습을 받을 수 있고 쿠알라룸푸르는 수영, 영어 개인교습을 받을 수 있다. 교습은 현지인 또는 외국인과 어울려 지낼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돈이 좀 든다.
조용히 혼자 즐기는 방법도 있다. 노트북을 지참하고 무료 와이파이가 있는 멋진 카페를 찾아 차 한잔 하면서 매일 넷플리스 영화를 봐도 되고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공부를 해도 되며 그것도 싫으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시간을 보내면 된다. 나는 삿포로에서는 민박집에서, 치앙마이에서는 멋진 카페에서, 쿠알라룸푸르에서는 호텔 수영장에서 하루 대여섯 시간 노트북을 켜놓고 구글링, 유튜브를 보거나 글을 썼다. 또한 하루 두세 시간은 주변을 걷거나 수영하면서 운동했다. 노트북과 함께 대여섯 시간 놀고 두세 시간 운동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저녁에는 맛집을 찾아 식사하고 틈틈이 주변 관광과 쇼핑을 즐기다 보면 나 홀로 해외살이가 전혀 외롭거나 무료하지 않다.
외로울 때는 사람과 대화하는 게 가장 좋지만 말할 사람이 없으면 전화와 카톡을 이용하면 된다. 와이파이만 되면 무료 카톡통화가 가능해서 편리하며 대화가 어려울 때면 카톡을 주고받기만 해도 대화의 갈증을 풀어준다. 나는 대여섯 개의 단톡방에 가끔 나의 일상을 올린다. 그러다 보면 자녀, 형제, 친구, 동창, 동호회원 들과 대화가 시작되며 어떤 날은 하루종일 카톡을 두드리고 있기도 한다. 심심할 겨를이 없다. 하지만 현지인 친구를 만들거나 한달살이 온 외국인이나 한국인을 만나 친구가 되면 훨씬 더 즐거운 생활을 할 수 있다. 현지인이나 외국인 친구를 만들려면 외국어가 가능해야 하지만 폰에 있는 통역기로도 함께 식사하거나 한잔 할 수 있다. 표정과 몸짓 만으로도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외국어 실력보다는 외국인에게 먼저 접근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운 좋게도 삿포로, 치앙마이, 쿠알라룸푸르에서 말벗이 생겼다. 일본에서는 버스투어 중 만난 일본관광객과, 치앙마이에서는 자녀교육차 온 중국엄마와 그리고 쿠알라룸푸르에서는 지인가족과 함께 어울리며 외롭지 않은 해외살이를 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여러 나라를 가겠지만 어느 국가에서나 한국인이던 현지인이던 아니면 나처럼 떠돌아다니는 외국인을 만나 함께 식사하고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건강이다. 건강은 삶의 모든 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만 해외에 장기간 체류하기 위해서는 특별히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몸에 이상이 생기더라도 병원에 가면 해결이 가능하지만 해외에서 몸에 이상이 생기면 당혹스러워진다. 언어문제로 인해 병원 치료받기가 어렵고 치료비도 부담스럽다. 젊었을 때 건강했던 사람도 나이가 들어가면 없었던 병이 생기기 시작한다. 60이 넘어가면 대부분이 한두 가지 약을 상시 복용해야 할 정도로 건강이 나빠진다. 겉으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더라도 모두 한두 가지 문제를 안고 산다.
나의 경우 50대 까지는 매우 건강했다. 50대 중반까지 30여 년간 거의 매일 한 시간씩 뛰면서 건강관리를 해왔으며 이후로도 매일 만보이상 걷고 있다. 60세 전에는 치과를 제외하고 병원에 간 적이 거의 없었다. 2017년 환갑 때도 매우 건강하여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다녀왔다. 그러나 60이 넘어서니 이곳저곳 고장이 나더니만 지금은 여러 군데가 속을 썩인다. 60대에도 꾸준히 운동을 해와서 지금도 북한산 정도는 매일 등산할 수 있는 체력이지만 몸속은 이곳저곳이 고장이다.
61세 어느 날 이하선염으로 얼굴이 퉁퉁 부었다. 병원치료 며칠 만에 정상을 찾았지만 언제든 재발의 위험을 안고 있다. 62세 때는 알레르기 비염이 생겼다. 평생 그런 일이 없다가 찬바람만 불면 콧물과 재채기가 나왔다.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을 먹었더니 금방 괜찮아지긴 했지만 지금도 찬 공기가 콧속에 들어가면 비염증세가 나타난다. 평생 찬바람 나면 비염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다. 63세 때는 이석증이 나타났다. 머리가 빙빙 돌아서 길거리에서 주저앉아 버렸다. 약 몇 봉지 먹으니 괜찮아졌지만 언제 또 하늘이 빙글빙글 돌지 걱정이다. 64세 검진 때 콜레스테롤 수치가 증가하고 혈당치가 높아졌다. 설상가상으로 과체중에 복부비만이라고 한다. 건강에 자신했던 내가 이제 성인병이 나타난 것이다. 코로나 전에는 매일 새벽 한두 시간씩 배드민턴을 하다가 코로나로 운동을 못하게 되니 6개월 만에 몸이 퉁퉁 부어버린 것이다. 이후 살을 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이전 상태로 회복되지 않는다. 급기야 65세가 되자 위암이 발견되었다. 다행히 조기발견하여 시술로 제거해 버렸지만 5년간 추적검사를 해야 해서 6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 다니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피부건조증이 심해져서 겨울이면 바디로션으로 온몸을 도배해야 하고 각질이 심해져서 매일 바셀린을 바르지 않으면 뒤꿈치가 쩍쩍 벌어진다. 작년가을에는 손가락이 저려서 병원에 갔더니 손가락 관절염이라고 한다. 지난달에는 팔이 저리고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목디스크라고 한다. 처방해 준 약을 먹고 쿠알라룸푸르로 떠나는 전날까지 물리치료를 받았다. 통증은 어느 정도 사라졌지만 해외에서 또다시 문제가 생길까 봐 두 달 치 약을 처방받고 의료기센터에서 물리치료기를 구입하여 들고 왔다. 당장 내일 또는 다음 달 뭐가 또 나타나서 나를 괴롭힐지 불안하다. 60 넘으면 누구나 노화가 진행되면서 면역력이 떨어지고 몸 이곳저곳의 기능이 저하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건강관리를 정말 열심히 해왔던 내가 이지경인데 다른 내 또래 들은 더 심할 것이다.
누구나 해외여행을 하면 배탈, 감기등을 대비해 상비약을 준비해 가지만 65세 이상이라면 상비약만 해도 제법 될 것이다. 65세 이상은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관절염 4가지에 문제가 있을 확률이 50%가 넘는다고 하는데 그 외에도 이런저런 문제를 모두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러니 65세 넘은 퇴직자의 해외살이는 돈과 시간이 충분하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나는 쿠알라룸푸르에 올 때 지퍼백 가득 약을 챙겨 왔고 목디스크 완화용 의료기구를 들고 왔다. 소화제, 지사제, 진통제, 감기약, 상처에 바를 마데카솔, 반창고, 물파스, 종합비타민 등을 챙겨 왔으며 추가로 비염, 목디스크, 손가락관절염, 고지혈증 그리고 위암시술 관련 위장약을 챙겨 왔다. 이 엄청난 약들을 하나도 안 먹고 다시 한국으로 가져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다행인 것은 쿠알라룸푸르에 온 이후 비염, 목디스크, 피부건조 증상이 나타나지 낳는다. 추운 서울에서 따뜻한 곳으로 왔기 때문일 것이다.
금년에는 지퍼백 하나만 챙겨 왔지만 내년에는 또 뭐가 고장 나서 약을 추가로 가져와야 할지 모른다. 약을 챙겨서라도 외국살이를 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지병 때문에 무서워서 해외살이를 떠날 수 없는 사람도 많다. 혼자 다니면 내 건강만 좋으면 되지만 부부가 가려면 둘 모두의 건강이 좋아야 하므로 건강 때문에 여행을 떠나지 못할 확률이 제곱으로 높아진다.
건강, 돈, 시간만 있다고 해외살이가 가능한 것도 아니다. 한국을 떠날 수 없는 상황이 없어야 한다. 내 어머니는 2년전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 6년 정도 요양병원에 계셨는데 가끔 병원에서 어머니 위독하다고 연락이 왔다. 4시간 거리를 운전하여 급히 내려가면 병세가 좋아져서 다시 올라오곤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마음이 불안해서 장기간 해외여행은 곤란하다. 어머니 돌아가셨는데 장남이 노느라 장례식 참석도 못하는 불효를 저지를까 봐 해외살이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지금은 부모님 모두 돌아가셔서 편안한 마음으로 해외살이를 하고 있지만 2년 전만 하더라도 아무리 시간이 많아도 해외살이는 할 수 없었다. 내 또래 부모님이 생존해 계신다면 모두 90 이상이다. 90넘은 부모님이 생존해 계신다면 누구라도 불안해서 해외살이가 어려울 것이다.
나는 장남이라서 부모님 제사와 추석, 구정 차례를 집에서 모시고 있다. 작년에는 추석, 구정, 제사 때 한국에 있도록 기간을 조정하다 보니 해외살이와 해외여행이 꼬여 버렸다. 고민 끝에 올해 구정과 추석 차례는 아들이 모시도록 하고 제사 때만 내가 와서 모실 예정이다. 독립해서 미혼으로 살고 있는 아들보고 집에 와서 차례 지내라고 했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아들이 못하겠다고 하면 내가 구정, 추석 때도 한국에 와야 할 상황인데 다행이다. 주변에서는 구정, 추석에는 호텔에서 차례를 지내던지 생략하라고 하는데 아직까지는 그러고 싶지 않다. 혹자는 웃기는 얘기라고 하겠지만 구정, 추석, 제삿날에 돌아가신 부모님께 식사대접 하지 못하면 돌아가신 부모님이 슬퍼하실 것 같다.
베이비부머 퇴직자 중 현재 해외살이를 하고 있는 퇴직자도 많이 있으며 해외살이에 관심 있는 사람도 많이 있다. 내가 브런치에 올린 해외 한달살이 글에는 많은 사람이 매일 접속한다. 해외살이에 대한 관심 때문일 것이다. 해외살이 하고 싶은 퇴직자라면 돈, 시간, 건강, 외로움, 부모님 문제가 해결되면 해외로 떠나면 된다. 고민할 것 아무것도 없다. 제주도 한달살이 한다는 생각으로 떠나면 된다. 외국어를 못해도 상관없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외국어를 잘해야겠지만 돈을 쓰러 가기 때문에 외국어 못해도 전혀 문제없다. 물가 싸고 한국사람 많은 동남아시아 국가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