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고난이 혼재하는 캠핑카여행
스코틀랜드 스카이 섬에서 프랑스 몽블랑이 있는 샤모니 까지는 바로가도 2000Km가 넘으며 관광을 곁들여 구불구불 돌아가면 3000km 정도로 먼 거리이다. 8.25일 스카이섬을 떠나 9일 후인 9.3일 독일의 뒤셀도르프에서 새로움 멤버를 픽업해야 하고 또 2주 후에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새로운 멤버로 교체한 후 알프스를 가기로 되어있다. 9일 후 뒤셀도르프에만 가면 되므로 기간 동안 자유롭게 목적지를 정하면 된다. 어디를 가도 스코틀랜드 만한 곳이 없으므로 스코틀랜드의 대자연에서 3일을 더보내고 이틀에 걸쳐 도버해협으로 가며 도버해협을 건너 프랑스에서 2일을 보낸 후 뒤셀도르프로 가기로 했다.
스카이 섬을 나와 글랜코 자연보호구역과 영국에서 가장 크다고 하는 로몬드 호수를 들르기로 했다. 글랜코로 가면서 중간에 있는 포트 윌리엄에 들러 주유와 식품을 구입하고 도시를 걸었다. 조그마하지만 참 예쁜 도시이고 배낭을 둘러맨 관광객이 많았다. 우리는 대기줄이 길게 늘어선 맛집을 찾아 점심을 해결했다.
글랜코 국립공원 주변의 캠핑장을 찾으니 빈자리가 없다. 게다가 일행들이 어젯밤 추위로 감기몸살기가 있다고 하여 캠핑장 대신 호텔에 들어가서 쉬기로 했다. 구글과 호텔앱으로 뒤지니 좀 먼 거리 이긴 하지만 5성급 호텔이 4성급 호텔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나와있다. 서둘러 방을 예약하고 구글지도를 보면서 호텔을 찾아갔다. 한참 가다 보니 1차선인 외딴길로 들어선다. 아무런 인적이 없는 심심산골길이다. 앞에서 차라도 오면 비낄자리 마저 없는 외통수 길이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뒤로 갈 수도 없어서 계속 갔다. 약간의 공포심마저 느껴진다. 이거 귀곡산장으로 가는 거 아냐? 20분쯤 가니 민가가 하나 나오는데 거기에 Hotel이라고 적혀있다. 캠핑카 진입이 어려운 좁은 길을 조심조심 들어갔더니 쓰러져가는 축사와 농기구들이 널브러져 있고 그 앞으로 석조로 된 오래된 건물이 하나 보인다.
석조건물 문을 두드리니 꼬부랑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온다. 여기 호텔 맞단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내부는 세련되게 치장되어 있다. 귀곡산장 같은 민가가 5성급 호텔로 인가되었다니 어안이 벙벙하다. 감기기운 있는 두 명은 호텔로 들어가고 나는 차에 그대로 남았다. 호텔로 들어간 두 명은 편안해서 좋았고 차에 홀로 남은 나는 조용해서 좋았다. 캠핑장이 아닌 곳에서 밤을 보낼 때면 가급적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행여 배터리가 방전되면 냉장고 음식이 상하기 때문에 밤에는 촛불을 켜고 지낸다. 으스스한 곳에 주차하고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타들어 가는 촛불을 보면서 혼자 와인을 마셨다. 이상한 곳에 홀로 앉아 와인으로 알딸딸 해지니 저절로 철학자가 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가? 다음날 아침 호텔조식을 함께 했다. 건물 밖은 귀곡산장이지만 내부는 깔끔하다. 아주 맛깔스러운 아침식사를 했다. 호텔에서 잔 두 명이 아주 좋았다며 하루 더 머물자고 한다. 그동안의 강행군으로 몸도 피곤하고 감기기운이 있으니 하루 더 쉬기로 했다.
오전에 비가 그치자 주변을 걸었다. 이름 없는 시골길인데도 몹시 아름답다. 제주도의 비자림처럼 이끼가 잔뜩 끼고 배배 꼬인 울창한 나무들 그리고 사이사이 야생화가 우거진 숲길을 걸었다. 시골길 주변의 야산에는 방목하는 양들과 소들이 가득했다. 유럽식으로 건축된 농가건물이 없다면 몽고나 키르기스스탄의 벌판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목가적인 풍경이다. 걷다 보니 많은 묘로 둘러싸인 교회가 나온다. 들어가서 묘비를 봤더니 일이백 년 전 묘들이다. 그 동네 사람들의 공동묘지인데 묘지 군데군데 돌로 된 의자가 있다. 일행들이 거기서 준비해 간 간식을 먹자고 한다. 서양 귀신들 사이에서 먹는 간식이 별미였다. 나는 하룻밤 더 귀곡산장 마구간 앞에서 타들어 가는 촛불을 바라보며 나 홀로 와인을 마시면서 철학자가 되었다.
다음날 아침 스코틀랜드의 또 다른 국립공원인 글랜코 자연보호구역으로 갔다. 하이킹 코스가 좋기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빗줄기가 거세어 하이킹을 포기하고 마지막 숙박지인 로몬드 호수 캠핑장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나타난 멋들어진 산들과 광활한 평원은 눈을 즐겁게 했다. 몇 번이나 차를 세우고 밖에 나와 광대한 평원을 감상했다.
오늘밤 묵을 캠핑장은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호수인 로몬드 호수에 접해있다. 호수를 바라보는 뷰가 아름다우며 인근에 각종 수상스포츠 시설이 많아 해양스포츠 마니아들이 많다. 캠핑장 인근에는 작지만 매우 아름다운 마을이 있고 레스토랑과 호텔등 관광객을 위한 시설이 많다. 호수와 접한 예쁜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고 조그마한 호텔 레스토랑에서 훌륭한 저녁식사를 했다.
로몬드 호수까지는 아름다운 스코틀랜의 대자연 속을 다녔지만 이후는 페리선을 타고 프랑스로 가기 위해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긴 거리라서 중간에 하루 숙박해야 한다. 지금까지 여행 중 가장 긴 거리인 600Km를 운전하여 영국 남부에 있는 캠핑장으로 갔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경로상에 이름 없는 캠핑장을 들어갔는데 의외로 시설이 좋고 경관이 수려하다. 파란 들판이 아름답고 바비큐 할 수 있는 조건이 좋았다. 여행 중 처음 바비큐를 했다. 다음날은 도버해협 인근의 캠핑장에서 영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낸 후 페리선을 타고 프랑스로 돌아왔다.
지금까지 2주일 정도 여행하다 보니 캠핑장 찾고 예약하는데 익숙해졌다. 미리 예약하면 숙소가 확보되어 안정감이 있는 대신 예약한 숙소에 반드시 가야 해서 여행의 융통성이 없어져 버린다. 8월 말 휴가철이 지나서인지 예약 없이 가더다도 캠핑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후 캠핑장은 당일 점심쯤 제반 상황을 고려하여 예약하고 예약이 안되면 그냥 찾아갔다.
3일 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새로운 멤버를 만날 때까지 프랑스 북부에 있는 국립공원 캠핑장에서 이틀을 보내기로 했다. 위도가 낮아지니 날은 다시 푸근해졌고 숲 속에 있는 캠핑장은 아름답고 조용해서 쉬기에 좋았다. 그러나 프랑스 숲은 평지에 조성되어 오르내림이 없어 밋밋하고 풍경 역시 한국과 유사해서 신선함이 없다. 며칠 전 걸었던 스코틀랜드의 아름답고 이색적인 풍경에 익숙해서 인지 하이킹이 시시하고 재미가 없다. 운동삼아 몇 시간 걷고 캠프에서 바비큐를 즐기고 일행들과 카드놀이를 하면서 오랜만에 망중한을 즐겼다.
여행 16일 만에 세탁기로 대규모 세탁을 했다. 그동안은 속옷이나 작은 옷만 손세탁해서 드라이기로 말려서 입고 다녔는데 이번에는 겉옷과 시트까지 한꺼번에 세탁했다. 건조기가 고장 났는지 전혀 건조가 안된다. 차 안에 세탁물을 널어놓을 공간이 부족해서 급한 것만 널고 나머지는 봉투에 넣어 두었다. 며칠 후 보니 봉투 속 세탁물이 미끄덩거리고 쉰내가 나서 버려야 했다. 여행 내내 힘들었던 일중 하나가 세탁물 처리였다. 캠핑장에서 나무에 줄을걸고 옷을 말리고 싶었으니 아무도 빨래를 널지 않는다. 우리만 널어놓기가 찝찝해서 차 안에서 말릴 수밖에 없었다. 세탁물을 차 안에 널면 빨래가 마르지 않는다. 속옷 일부만 드라이기로 말려서 입고 나머지는 젖은 옷을 입고 다니기도 했다.
프랑스 공원캠프에서 이틀을 보낸 후 새로운 멤버를 만나기 위해 독일로 향했고 도중 벨기에의 수도인 브뤼셀로 들어갔다. 도시 관광을 마치고 출발하다가 사고가 발생했고 유럽인들의 속 터지는 사고처리로 인해 5일간 브뤼셀에서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언제 수리가 될지 모르는 캠핑카를 포기하고 봉고차를 렌트하여 독일로 갔으며 독일에서 새로운 캠핑카를 렌트하여 여행을 계속했다. 이 과정에서 힘든 시간이 있었지만 오히려 많은 추억거리가 생겼고 여행이 다이내믹 해졌다.
캠핑카 사고 이후 9일 만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새로운 캠핑카를 렌트하여 남쪽에 있는 알프스로 향했다. 알프스로 향하는 도중 독일 슈바르츠발트 국립공원 캠핑장에서 3박 하면서 독일의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기로 했다. 슈바르츠발트는 검은 숲을 의미한다. 빼곡한 나무들 때문에 하늘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검은 숲이라고 하며 울창한 나무들 덕분에 공기도 맑고 산책하기도 좋은 곳이다.
캠핑장은 국립공원 중앙부에 있는 커다란 호수 옆에 위치하여 경관이 수려하다. 인근에 조그마한 예쁜 마을이 있으며 하이킹 코스도 많다.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머무는 기간 비가 자주 내렸다. 날씨 좋은 하루만 슈바르츠발츠의 숲 속으로 들어가 하이킹을 했고 비가 오는 날에는 우의를 입고 호수 주변을 걷고 예쁜 마을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비 오는 밤에는 할 일이 없다. 캠핑카 안에서 저녁을 먹고 와인을 마시며 밤새 카드놀이를 하다가 잠을 청한다. 4명이 쭈그려 앉아 있기에도 비좁은 공간에서 서로 얼굴 쳐다보면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카드로 하는 훌라가 최고이다. 훌라에 맛을 붙이자 다른 일정이 방해받을 정도로 훌라에 몰두하기도 했다.
슈바르츠발트 캠핑장을 떠나 스위스 레만호수 인근으로 갈 계획인데 캠핑장이 예약이 안된다. 무슨 행사가 있었던지 레만호수와 제네바 인근 캠핑장이 만석이다. 계획을 수정하여 제네바에서 가까운 프랑스의 휴양도시 안시로 방향을 돌렸다. 독일에서 출발하여 스위스를 통과 한 후 프랑스로 들어가는 고속도로는 주변 경치는 아름답지만 차가 많아 정체가 심하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느지막이 안시에 있는 캠핑장으로 들어갔다.
사전 계획 없이 갑자기 가게 된 프랑스 안시는 무척 아름다운 호반 도시이다. 프랑스인들이 은퇴 후 살고 싶은 도시 1위라고 한다. 안시호수는 길이 15km 폭 2km 내외인 호수로 주변의 알프스산맥으로부터 흘러온 눈 녹은 물로 색깔이 청량하며 호수 주변의 산이 무척 아름답다. 캠핑장은 안시호수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하이킹 코스가 많아서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게 되었다. 다음날 호수 주변과 산을 하이킹하면서 본 풍경은 여행 시작 후 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모습도 예뻤지만 호숫가에 들어선 형형색색의 별장들이 자연과 어우러져 수채화처럼 아름다웠다. 우리는 호수 주변 산을 하이킹하
고 호숫가를 걸으며 프랑스 안시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겼다.
안시에서 이틀을 머물고 제네바로 향했다. 2주일 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합류했던 멤버가 추석을 쇠러 제네바 공항에서 한국으로 귀국하고 또 다른 멤버가 추석 휴가를 받아 제네바에 입국했다. 우리는 제네바 공항 인근에서 하루 묵으며 두 멤버를 교체했다. 중간에 새로운 멤버가 추가될 때마다 한국 음식을 보급받았다. 김치와 라면이 떨어질만하면 보급품이 도착해서 여행 내내 김치는 풍족했으며 마지막 며칠은 남는 김치를 없애기 위해 김치비빔밥에 김치찌개를 먹는 사치를 했다.
제네바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유명한 도시이지만 볼거리는 별로 없다.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며 도시를 관광하고 레만호 주변에 있는 공원과 볼품없는 꽃시계 앞에서 사진을 찍은 후 제네바를 떠났다. 벌써 한 달이 넘게 유럽을 여행하고 있는 우리 일행은 눈이 높아져서 웬만한 풍광에는 감흥이 없다. 내 경우 프라하, 에든버러, 브뤼셀등 아름다운 도시가 내 기준이 되어있어서 제네바에서는 아무런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다만 제법 유명한 맛집에서 먹은 퐁듀는 기억에 남는다.
다음 목적지는 알프스이다. 알프스에서도 가장 멋지다고 하는 프랑스의 몽블랑과 스위스의 융프라우 그리고 필라투스 산을 갈 예정이다. 제네바를 떠나 먼저 몽블랑이 있는 프랑스 샤모니로 향했다. 여느 때처럼 마트에 들러 식품을 구입하고 샤모니 시내에서 가까운 캠핑장으로 들어갔다. 해질 무렵 구름 속으로 아스라이 나타난 몽블랑이 모습이 가슴을 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