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섬과 하이랜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일주일 동안 1500Km 운전하여 스코틀랜드에 온 것은 광활한 대자연을 보고 즐기기 위함이다. 영국은 한국처럼 남북으로 길쭉한 나라이다. 한반도로 치면 평양정도에 위치하는 에든버러를 기준으로 북쪽은 스코틀랜드이고 남쪽은 잉글랜드이다. 지금은 한나라이지만 과거 수백 년간 서로 경쟁하는 다른 국가였으며 지금도 두 지역은 앙숙처럼 으르렁거린다.
두 지역은 지형지세가 확연히 다르다. 남쪽의 잉글랜드는 유럽의 여느 국가처럼 높은 산이 없고 얕은 구릉이 파도처럼 이어지며 지형이 완만하고 부드럽다. 반면 에든버러 북쪽의 스코틀랜드 지역은 지형이 주름치마처럼 접혀서 높은 곳은 험한 산이 되고 낮은 곳은 길쭉한 호수가 되어 스코틀랜드 전역이 산과 호수로 이루어져 있다. 바람이 거세어 산정상 쪽에는 나무가 없고 잡풀만 무성하며 낮은 지역에만 나무가 자란다. 기상변화가 심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비가 내렸다 개었다를 반복하여 날씨를 종잡을 수가 없다. 수시로 내리는 비로 인해 강수량이 많아 개천과 호수가 많고 수량이 풍부하며 바람이 약한 지역에는 숲이 우거져있다.
이런 험한 지형지세와 척박한 땅은 사람들의 기질에도 영향을 끼친다. 스코틀랜드 남자들은 험한 지형만큼이나 거칠다고 한다. 중세시대 용병 중 가장 용감하고 야만스러운 용병이 스코틀랜드인 이었으며 미국에 이민 간 스코틀랜드 남자들도 총칼로 무장하고 지역의 분위기를 살벌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척박한 땅에서 자라다 보면 강하고 용감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독특한 지형지세로 인해 스코틀랜드 대부분의 풍광이 독특하고 아름답다. 그중에서도 스카이 섬, 케언곰스 국립공원, 글랜코 자연보호구역, 루스호 주변이 특별히 멋지다고 하여 네 곳의 캠핑장에 열흘간 머물면서 대자연을 즐기기로 했다. 에든버러를 출발한 우리는 첫 목적지인 케언곰스 국립공원캠핑장으로 향했다.
케언곰스 캠핑장은 국립공원에 붙어있는 숲의 일부분이다. 뒷문으로 나가면 바로 하이킹 트레일과 연결된다. 캠핑장에 자리를 잡자마자 뒷문으로 나가 하이킹했다. 여행 시작 1주일 만에 1500Km 이상 달려와 우리의 목적지안 스코틀랜드의 광활한 자연 속으로 들어갔다. 케언곰스는 낮은 구릉지대이지만 나무가 우거지고 개천과 호수가 많아 마음이 편안해지는 힐링 코스이다. 소나무가 꽉 차있는 숲 사이사이로 온통 보라색의 꽃이 만개해 있으며 바람이 강한 고지대는 나무 하나 없이 잡풀만 우거져있다. 지금까지 봐왔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이색적이다.
케언곰스 둘째 날은 본격적인 하이킹을 했다. 오전에는 캠핑장 주변의 하이킹 코스를 따라 두세 시간 걷고 오후에는 차로 이동하여 또 다른 코스를 걸은 후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두 번 모두 호수를 한 바퀴 도는 코스인데 호수 주변의 나무와 식물이 특이하다. 다양한 나무들 사이로 고사리와 각종 이끼류가 두껍게 덮여있다. 두꺼운 이끼류로 인해 땅바닥이 푹신푹신하다. 어제 걸었던 하이킹 트레일과는 또 다른 색다른 모습이다.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광경을 보는 것이다. 새로움은 가슴을 설래이게 한다. 어제 하이킹 트레일도 처음 보는 새로운 풍경이었는데 오늘 걸은 호수 두 개 모두가 또 다른 풍경이다.
지금까지 1주일간 줄곧 이동하느라 바빴는데 케언곰스에서는 2박을 하면서 주변 하이킹만 하고 돌아오니 좀 여유롭다. 저녁을 일찍 먹은 후 준비해 온 카드를 꺼내어 훌라 놀이를 했다. 주사위 놀이인 야찌와 휴대용 바둑판에서 오목도 두어봤지만 3~4명이 좁은 캠핑카에서 놀이하기에는 카드로 하는 훌라가 가장 간편하고 즐거웠다. 우리는 이후 자주 훌라를 하면서 밤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케언곰스를 떠나 스카이 섬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인버네스에 들러 스카이섬에서 지낼 동안 필요한 식품을 쇼핑했다. 인버네스는 스코틀랜드 북단 하이랜드의 최대도시이며 호수에 접한 아름다운 도시이다. 들어가서 관광하고 싶은 유혹을 받긴 하지만 여행목적이 대자연을 즐기기 위해서 이기 때문에 시외곽에 있는 대형마트에 들러 1주일치 장만 보고 스카이섬으로 향했다.
여행 중 캠핑장에 들어가기 전에는 항상 마트에 들러 식품을 구입한다. 캠핑장이 마을과 가까우면 마을에 가서 식사할 수 있지만 주변에 마트나 식당이 없는 외진 곳 이 많아서 먹을 것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구입한 식품은 물, 빵, 계란, 우유, 요플래, 과일, 파프리카, 치즈, 와인이 기본이었고 바비큐 할 경우에는 야채와 스테이크를 추가했다. 유럽 모든 나라가 외식비는 비쌌으나 마트 식품은 한국보다도 저렴하다. 우리는 마트에서 구입한 식품과 한국에서 준비해 온 음식을 적절히 배합하여 식사했다.
영국 전 지역의 국도가 폭이 좁고 갓길이 없어서 운전할 때 조심스럽다. 캠핑카는 승용차 보다 폭이 넓어서 더욱 신경이 쓰인다. 스코틀랜드에 진입하니 도로 폭은 더욱 좁아진다. 커다란 캠핑카끼리 교차하려면 사이드 미러가 서로 닿을 정도로 도로 폭이 좁다. 심지어 꽤 많은 지역은 차 한 대 지나는 좁은 도로이다. 군데군데 교행지역을 설치해서 앞에서 차가 오면 기다렸다가 지나가야 한다. 해가지지 않았던 대단한 국가에서 이런 후진스러운 도로가 있다는 게 놀랍다. 스코틀랜드가 주름치마처럼 산과 호수가 많아 도로공사의 어려움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더 열악한 지형에서도 도로를 만드는 우리나라에 비교하면 참 초라해 보인다. 네스호를 가는 길 중 상당 부분이 왕복 1차선이다. 앞에서 차가 오면 넓은 교행지역에서 기다렸다가 앞차가 지나간 후 가야 하니 불편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여기 사람들은 그런 길에 익숙해서 인지 하이빔으로 서로 신호하면서 잘 지나다닌다.
네스호는 계곡사이에 있는 기다란 호수이다. 폭은 2Km 내외인데 길이는 36Km가 넘는다. 최대 230미터인 깊이와 오랜 세월 물속에 가라앉은 나뭇잎 성분 때문에 물이 검은색에 가깝다. 이런 거무튀튀한 물 색깔 때문에 네스호는 괴물이 있다는 괴담이 생긴 모양이다. 네스호는 지금도 가끔 괴물을 봤다는 사람이 나오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해저레이더 탐사를 하기도 하는데 이 모든 것이 관광객을 불러 모으기 위한 쇼라고 한다. 네스호를 잠시 관망한 후 스카이섬으로 향했다.
스카이 섬은 제주도 보다 약간 큰 섬이다. 스카이 섬과 연결된 다리를 통과해 예약한 캠핑장을 찾아가는데 주변경관이 제주도, 남해안과 별차이가 없다. 1주일간 1500Km를 운전하여 찾아온 곳이라 기대가 컸는데 약간 실망이다. 허긴 바다는 어디를 가나 동일한 모습이니 바다에서 특별한 모습을 기대한 내가 문제일 것이다. 한국에도 제주도 울릉도 홍도처럼 아름다운 섬이 많이 있다. 미국사람이 제주도와 스카이섬을 모두 방문한다면 제주도가 더 멋있다고 할 것 같다.
하지만 한국 풍경에 익숙한 나에게는 스카이섬의 풍광이 참 이색적이다. 쭈굴쭈굴한 스코틀랜드의 지형, 강한 바람, 변덕스러운 날씨, 많은 강수량 등으로 특이한 풍광을 보여준다. 쭈글쭈글한 지형이 강한 바람과 많은 비로 인해 산이 몽실몽실하게 깎였고 계곡과 폭포가 많으며 풍부한 수량으로 물소리가 요란스럽다. 들판에는 거센 바람에도 버틸 수 있는 덤불과 잡풀이 깔려있어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이색적인 모습이다. 바닷가는 험한 파도에 깎여 절벽이고 높은 절벽으로부터 폭포가 쏟아진다. 몇몇 산은 강한 비바람에 말랑말랑한 부분은 침식되고 딴딴한 바위만 위태롭게 남아 있어 멋진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제주도를 가면 서귀포의 폭포, 한라산, 성산 일출봉 등이 멋진 관광포인트 이듯이 스카이섬은 울산바위처럼 생긴 Old man of Storr, 평지를 흐르는 계곡인 Fairy fall, 성산일출봉 비슷한 Quiraing, 서귀포 폭포 비슷한 Kilt rock, Lealt fall, 황량한 평원이 멋진 슬리가찬 등이 유명하다. 우리는 슬리가찬에 있는 멋진 캠핑장에 4일간 머물면서 관광과 하이킹을 했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다르겠지만 스카이섬에서 가장 좋았던 곳은 슬리가찬이다. 다른 곳은 한국이나 다른 국가에서도 볼 수 있는 기암괴석이나 계곡이지만 슬리가찬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풍경이었다. 사시사철 강한 비바람으로 인해 나무 한그루 없이 키 작은 잡목과 덤불과 잡풀로 꽉 차있는 넓은 평원 그리고 그 끝에 서있는 황량한 산은 묘한 신비감을 주었다. 이런 곳에서는 사막처럼 인간이 살 수 없어 보인다. 오랜 세월 인적이 없이 황량하게 남겨져 있는 평원의 모습은 시베리아나 아마존 같은 원시의 모습으로 보인다.
캠핑카를 몰고 명소를 찾아가는 길이 험난하다. 영국남부에서는 길이 약간 좁다 싶었는데 북부인 스코틀랜드에서는 더 좁아지더니만 스카이 섬에 들어오니 엄청 좁아진다. 포장도로 밖으로 갓길은 없고 포장도로만 벗어나면 바퀴가 빠져 차가 넘어질 것 같은 곳이 수두룩하다. 2차선 도로가 좁아서 캠핑카 두 대가 교차할 때면 부딪칠까 봐 조마조마하다. 실제로 사이드미러가 부딪치기도 했다. 한 대만 다닐 수 있는 길도 많다. 교행지점이 있어서 교행 할 수는 있지만 그것마저도 멀리 있어서 불안 불안하다. 산골짜기 외진 곳이라면 이해하겠는데 수많은 차량이 오가는 관광지 길을 이따위로 방치하고 있는지 한심하다. 어렵게 명소에 도착하면 비 오는 주중인데도 주차할 곳이 없다. 볼 것도 별로인 Fairy fall에서는 캠핑카를 주차할 곳이 없어서 한 시간을 빙빙 돌았다. 현지인에게 물었더니 자연을 최대한 보존하고 너무 많은 관광객이 오지 않도록 일부러 길을 불편하고 위험하게 방치하고 있단다. 그럴리가!! 망가저 가는 늙은 제국의 민낮이겠지.
1주일 전 프랑크푸르트에서는 반소매를 입어야 하는 더운 날씨였는데 에든버러에서는 가을날씨 정도로 차가워지더니 이제 스코틀랜드 북부는 초겨울 날씨로 접어든다. 8월 22일 인데도 일중기온이 5~13도 정도로 추워졌다. 게다가 수시로 비가 오고 바람이 강해서 체감온도는 더 떨어진다. 해지고 나면 겨울옷으로 무장해야 한다. 잘 때는 운동복에 양말까지 신고 침낭으로 몸을 돌돌 말고 자야 했다. 5~10도는 추운 정도는 아니지만 며칠 전까지 더웠다가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니 몸이 적응을 못한다. 차에는 Gas 히터가 있으니 Gas를 최대한 아껴야 해서 난방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Gas가 떨어지면 충전하면 되지만 독일에서 렌트한 Gas통과 영국 Gas통 규격이 달라서 충전이 불가하다. 식사준비에 문제가 생길까 봐 난방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전기밥솥과 쌀, 누룽지를 가져온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 캠핑장에는 전기를 연결하여 밥을 할 수 있었고 식사 후 남는 밥은 아침에 밥솥에 넣고 끓이면 훌륭한 쌀죽이 되었다. 쌀쌀한 스코틀랜드 아침에 뜨끈한 쌀죽 한 그릇은 몸을 따뜻하게 해 주고 속을 편하게 해주는 최고의 식사였다.
4일간의 스카이섬 체류를 마치고 다음 목적지로 떠났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알프스이다. 알프스를 가기 위해서는 영국 남쪽으로 내려가 페리호를 타고 프랑스로 가야 하며 이후 벨기에, 독일을 거쳐 프랑스 몽블랑과 스위스 융프라우로 가게 된다. 가는 경로상 좋은 곳에 숙박하면서 자연을 즐기기로 했다. 또다시 먼 길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