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2025.1월 중 라오스 수도인 비엔티안에서 한달살이 했다. 그동안 한달살이 했던 8개국 도시중 가장 볼거리 할 거리가 없는 무미건조한 도시이다. 역사유적도 없고 휴양지도 아니고 도시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곳도 아니다. 그러나 1월에도 야외수영이 가능할 정도로 따뜻하고 물가가 저렴한 것이 장점이다. 겨울만 되면 피부건조증, 알레르기, 디스크, 감기로 고생했던 나로서는 이곳의 따뜻한 날씨와 저렴한 물가 만으로도 만족하며 한 달을 지낼 수 있었다.
볼거리 할거리 없는 이곳이지만 한국 관광객은 어느 외국도시 보다 많다. 지역이 좁아서 인지 가는 곳마다 한국인이 북적거린다. 이상하게도 은퇴한 6070 남자가 특별히 많으며 관광지마다 북적거리는 5060 여성이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한 달을 지낸 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비엔티안에서 레지던스 호텔에 묵었다. 1주일에 두 번 청소와 침구를 교체해 준다. 방에 있을 때 직원(청소부)이 오면 나는 함께 청소한다. 직원이 침구를 교체하는 동안 나는 봉걸래로 바닥을 밀고 직원이 화장실 청소할 때 나는 물을 뿌려준다. 직원이 자기가 하겠다고 말려도 내가 함께 청소한다. 이것은 오랫동안 내 몸에 밴 행동이다. 퇴직 전 제법 높은 직급에 있을 때도 청소부가 내방 청소하러 오면 함께 청소하곤 했다. 나의 이런 행동이 호텔 여직원을 감동시켰던 모양이다. 나만 보면 활짝 웃으며 인사한다. 나도 활짝 웃는 여직원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해외살이 하면서 여러 곳에서 글을 쓰다 보니 웬만한 주제는 이미 다 써버려서 새로운 글감을 찾아야 한다. 라오스에서는 호텔 여직원과의 대화를 통해 이곳의 여행객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찾아보기로 했다. 꼼꼼하게 청소하는 여직원들에게 감사표시로 저녁을 사겠다고 하고 여직원 오토바이 뒤에 타고 현지인들이 가는 맛집을 찾아다녔다. 첫날은 여직원 2명과 함께했고 이후에는 영어를 조금 아는 활달하고 매력적인 한 명과 더 깊은 대화를 나누며 라오스 여인들의 삶을 알아갔다.
여직원이 영어단어를 100개 정도 알고 있다. 영어단어 한두 개와 표정, 몸동작으로 웬만한 대화는 할 수 있다. 뜻이 안 통하면 통역앱을 이용했다. 옆에 없을 때는 왓앱(카톡과 유사한 앱으로 라오스에는 주로 왓앱을 사용)으로 추가적인 대화를 했다. 주로 내가 궁금한 것을 영어로 물으면 여직원은 번역앱을 사용하여 영어로 답을 했다. 한국어와 라오스어를 직접 번역하면 번역오류가 많아 봉창 두들기는 답변이 와서 영어를 매개로 대화했다.
여직원은 37세 이혼녀이며 초등학생 자녀 2명을 홀로 키우고 있다. 2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백화점에서 회계를 하다가 공무원인 남편과 결혼했다. 3년 결혼 생활 후 이혼했으며 이혼 후 5년째 호텔에서 청소를 하고 있다. 호텔에서 일하는 여직원 대부분이 이혼녀이며 자기 또래 여자 중 절반 이상이 이혼할 정도로 이혼율이 높다고 한다. 이혼사유는 대부분 남자의 바람기 때문이며 자기도 전 남편의 바람 때문에 이혼했단다. 재혼할 계획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애가 둘이라서 재혼하기 어려우며 남자들이 자기처럼 나이 많은 여자는 좋아하지 않는단다. 본인 역시 라오스 남자는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없어서 애들을 데리고 재혼할 생각이 없으며 이혼해서 혼자 사는 자기 주변여자들도 재혼을 생각하지 않고 혼자 살아간다고 한다.
37세가 뭐가 나이가 많냐고 했더니 남자들이 25세 이하 어린 여자들만 찾기 때문에 35세 이상인 여자는 남자 만나기 힘들다고 한다. 2017년 기준 UN에서 발표한 한국의 평균수명은 83세였으며 라오스는 56세이다. 편균수명이 56세로 짧은 나라에서 37세는 이미 삶의 절반을 훌쩍 넘긴 나이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무게를 느끼게 했다.
나는 67세이지만 30년을 더 살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여직원은 37세인데 앞으로 20년 정도 더 살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라오스의 열악한 평균수명이 사람들의 의식에도 영향을 준 듯하다. 한국은 1965년 평균수명이 56세였다. 1965년 당시 한국은 지금의 라오스와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애 둘 딸린 37세 된 싱글녀가 재혼한다는 것은 시골 부자 영감들의 첩으로나 가능했던 시대였다. 당시 먹고살만한 시골 영감들이 첩을 두는 것은 공공연한 일이었다. 애가 둘인 37세 돌싱 여직원이 자신은 나이가 많아서 라오스 남자와 재혼이 어렵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월급은 20만 원 정도이고 팁과 수당을 합해 한 달 30만 원쯤 번다고 한다. 그 돈으로 초등학생 2명 키우며 살아가기 힘들다고 하소연이다. 내가 매일 마사지받는다고 하니 자기가 내 방에서 마사지해 줄 테니 비용을 자기에게 달라고 한다. 돈이 절박한 여직원을 위해서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내 방에서 마사지를 하도록 했다. 직원은 전문 맛사지사에 비해 좀 서투르지만 내 표정을 봐가면서 아주 정성스럽게 해 준다. 나중 알고 보니 나에게 마사지해 주려고 자기 애들을 눕혀놓고 유튜브 보면서 마사지를 연습했다고 한다. 매일매일 마사지 실력이 늘더니 내가 라오스를 떠나기 전 마지막 마사지 할 때는 전문 마사지사급으로 발전했다.
점심시간에 내 방에서 마사지하느라 식사를 하지 못한다. 점심을 거르는 여성이 안쓰러워 햄버거를 사놓고 그녀에게 먹도록 하고 가끔은 애들 갖다주라고 과자도 사줬다.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여직원을 감동시킨 모양이다. 내가 비엔티안 한달살이를 마치고 프놈펜으로 떠나는 날 여직원은 나를 환송하며 내 손을 잡고 눈물을 보였다.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이상해졌지만 75세가 될 때까지 유랑민 생활을 할 나로서는 감정에 휘둘릴 여유가 없다. 10일 정도에 불과하지만 매일 여직원에게 마사지를 받고 대여섯 번 여직원 오토바이 뒤에 타고 맛집을 찾아 식사하는 시간은 특별했다. 나 홀로 해외살이의 적적함을 해소시켜 주는 즐거운 시간이었으며 밋밋했던 라오스 비엔티안 한달살이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2025.1.14일 비엔티안을 떠나 프놈펜에 도착했다. 또 다른 한달살이를 시작하고 있는데 여직원으로부터 왓앱으로 연락이 왔다. 방 청소할 때 함께 해주고 항상 웃으면서 자기를 편하게 해 주고 마사지할 때 항상 햄버거를 준비해 놓는 등 자신을 배려해 준 것이 너무 감사하단다. 나처럼 마음이 따뜻한 사람을 처음 봤단다. 내가 떠난 후 내방을 지나갈 때면 눈물이 난다면서 나에게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한다. 이혼 후 10년간 애 키우느라 바빠서 남자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런 감정 처음이라고 진심 고백한다. 보고 싶으니 라오스에 또 와달라고 부탁한다.
해마다 와서 자기를 경제적으로 도와 달라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기분은 좋다. 혹시 저 처자가 정말 나에게 사랑에 빠진 것은 아닐까? 여러 가지 상상이 떠오르며 마음이 혼란스럽다. 어쨌거나 30살 어린 처자가 나를 사랑한다면서 매일 눈물을 흘린다고 하니 이 아니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를 사랑해 줘서 고맙고 나도 네가 참 사랑스럽다고 덕담을 해줬다. 대화가 좀 더 진행되니 자기와 결혼해 달라고 한다. 힘들게 세계 돌아다니지 말고 라오스에 와서 자기 집에서 함께 살자고 한다. 그녀의 말에서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닌, 고된 삶을 벗어나고 싶은 절박함이 느껴져 마음이 먹먹해졌다. "나는 앞으로 10년간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니며 살 것이므로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다"며 그녀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거절했다.
삶이 얼마나 힘들면 저런 얘기를 할까 안쓰럽다. 최근 몇 년간 은퇴한 한국 6070 남성들이 라오스에 밀려 들어와 한 달 이상 장기체류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남자들이 라오스 남자들에 비해 건강하고 동안이고 여성들에 대한 배려심이 많고 경제력이 월등하기 때문에 많은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라오스 여성들이 한국남성들에게 구애하나 보다. 라오스에 왔다가 젊은 처자로부터 내가 받은 것 같은 구애를 받게 되면 누구나 마음이 흔들릴 것이며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인생 뭐 있어?" 하면서 겨울마다 라오스를 찾게 될 듯하다. 작년 치앙마이에서 만난 캐나다 은퇴자가 10년째 겨울마다 치앙마이에 와서 애 셋 딸린 싱글녀와 함께 지내는 것처럼 말이다.
여행은 나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물한다. 그리고 그 경험들은 다시 나의 글감이 된다. 이번 라오스에서 만난 그녀와의 시간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삶의 무게와 진심 어린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했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초지를 찾아 이동하겠지만, 라오스에 두고 온 따뜻한 마음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녀의 삶에 평온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조용히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