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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하 Feb 02. 2021

 떠나라. 깨어나라.

길 위의 사람과 행복

당장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떠나라는 신호가 휴대폰 무음처럼 내게만 전해질뿐이다. 깜박깜박. 미묘한 신호가 전해지면 그 마음을 한 번 들여다봐주는 것이 필요한데 보자기처럼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쉬이 떠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매듭 풀어 훌훌 날아가고 싶은 욕구가 치솟는 날은 자면서도 허공을 헤맨다. 

헤매는 나를 붙잡느라 지난날 여행의 흔적을 기억 속에서 꺼낸다. 흔적 속에서 과거와 현재를 넘나 든다. 시간 여행을 한다. 

내가 거닐었던 곳, 눈에 담았던 그 풍경을 다시 꺼내 보면 그것도 지금 이 순간의 여행이 될 수 있다. 

그 날 새벽 나는 아무도 모르게 무작정 집을 나섰다. 비밀리에 떠났던 그 시간을 이제야 드러낸다.

수년 전 그 길에서 무엇을 보고 싶은 것일까. 

--------------

돌이켜보니 무작정 계획도 없이 떠난 날이어서 묻지 마. 여행이 따로 없다. 투박한 표현이지만 있는 그대로 가슴에 품었던 날이기에 진짜 여행이 되었다.

관광이 아닌 진짜 여행이다. 관광은 체험이고 여행은 경험이다.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은 나이다. 큰 동선만 정하고 이틀이 될지, 사흘이 될지, 나흘이 될지 이것조차도 모른다. 짐은 대충 챙겼다.

트렁크 가방엔 보이는 대로 막 집어넣고, 대충대충 딱딱 반 접어 겹겹이 쌓아서 툭 닫아버렸다.

맞아. 늘 그렇듯 짐 싸는데 20분도 안 걸렸다. 운동복, 운동화는 빠뜨리지 않는다. 물통, 커피, 책 한 권, 그리고 노트북. 끝. 평소의 듬성듬성한 성격이 다 드러난다. 뭐 어때.

뭔가 부족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그렇게 여행하면 되는 거지.


그래도 원피스 두 벌 꺼내서 차 뒷좌석에 걸었다. 대부분 티셔츠에 반바지로 편하게 다니겠지만, 예쁜 바다가 보이면 지금의 나와 다른 모습이 낫겠다 싶은 설렘의 충동이다. 근사하게 넘실대는 파도 앞에서 원피스 자락 흩날리는 나 자신을 보면 너무 근사하잖아. 마음껏 풀어놨다는 순간의 증거로 남을 것이다.


밤 12시. 이제 출발이다. 시동을 걸고 잠시 생각을 한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해가 뜨는 곳이다. 바다 위에서 동그랗게, 발갛게 올라오는 해를 꼭 보려고 한다.

가고자 하는 곳에 일출 시간과 날씨도 확인하며 목적지까지 소요시간을 따져본다.


36세 나이에 처음 해 뜨는 걸 보게 될 것 같다. 꼭 성공해야 할 텐데. 빨갛게 달아오르는 그 해를 너무 보고 싶다. 단 한 번도 해가 뜨는 것은 본 적이 없으니 다가올 아침이 두근거린다. 두근거림도 잠시다. 

설렘으로 시작한 밤 운전이 두 시간 남짓 지나니 급격하게 피곤이 몰린다. 휴게소로 들어가기 위해 차선을 변경했다.

새벽 3시가 좀 안됐다. 휴게소에 도착한 나는 기이한 광경에 갑자기 주차를 하기도 전에 멈췄다. 차를 한편에 두고 한참을 보았다. 내가 모를 세상이 펼쳐졌다. 이 시간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지.

나는 정말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살았구나. 지구가 도는 것만 생각했지 이 세상이 돌아가는 것은 까막눈이었다.





휴게소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크고 작은 트럭들. 너무 거대하다. 그 숫자도 셀 수가 없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 깜깜한 밤엔 잠을 청하는 줄 알았을까.  나의 작은 마음이 파도를 보기 전부터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눈앞에 펼쳐진 이 낯선 휴게소의 모습은 마법을 부려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뜨거운 한 여름밤. 너무 뜨겁게 끓어오르지도 말고 너무 들뜨지도 말거라.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님을 출발한 지 3시간도 안된 내게 이렇게 알려준다. 다시 차를 서서히 움직여 최대한 속도를 늦추어 내 차보다 몇 배인 트럭들 사이에 레고 조각처럼 차를 끼웠다. 시동을 끄고 음악을 켰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30분 정도 잤을까. 다시 정신을 깨워서 창문을 열었다. 밤공기. 내가 평소 느끼던 그것과 다르다.

고요한 듯하면서 바람에서 소리가 난다. 바람에서 멜로디가 들린다. 따라라.... 음.. 라~~ 라~~


다시 가보자. 태양이 도착하기 전에.

힘들지 않아. 저 거대한 트럭 운전기사들도 이 밤을 짊어지고 다니는데 난 태양을 보러 가는 길이잖아.

내게 이 밤은 너무 호사스러운 밤이야.

그래. 너무 감사한 날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300킬로 남짓 달렸다. 해가 뜨는 시간에 도착하려고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도착지점이 얼마 남지 않았는지 저 멀리 수평선, 끝없는 바다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드디어 도착.

울산 간절곶.

일단 이 짙푸른 바다부터 눈에 담자. 이 수평선 앞에, 모든 것 품고도 남을 이 넓은 바다 앞에 나 홀로 서 있다.

아무도 없이 혼자 이 바다를 보고 있으니 눈과 마음이 파도와 박자를 맞춘다.

차 문을 열었다.  볼륨을 높이고 다시 음악을 켰다. 차이콥스키. 파도와 함께하는 협주곡이다.

5시가 조금 넘었다. 태양은 언제 뜨는 것일까? 좀 걸어보자. 어떤 모습으로 태양이 뜨는지. 어떻게 불쑥 올라와 이 세상에 불을 켜는지 걸으면서 생각해보자.

한 걸음. 두 걸음. 조마조마한 마음 붙잡으면서 천천히 걸으며 생각했다.

그 시간에 다른 곳에서 낯선 생활을 경험하고 있는 아이 모습을 떠올린다. 


갑자기 눈앞이 흐릿해진다. 하늘을 바라보며 다시 앞을 바라보는데... 그때 저 멀리 지평선 넘어 하늘을 가른 채 빛이 새어 나오고 있다.


탄성이 비집고 나오는 내 입을 두 손으로 막았다. 그 자리에서 단 한 걸음도 움직일 수가 없다. 

나를 깨우고 온 세상을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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