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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하 Feb 03. 2021

바람의 부딪침

길 위의 사람과 행복

내 키를 훌쩍 넘어서고, 손도 내 손보다 더 커진 아들은 부쩍 요즘 자주 내게 다가와 볼을 비비기도 하고, 어깨를 감싸기도 하고, 나를 두 팔 벌려 안아주기도 한다. 열여섯 살이 된 소년의 사랑 표현이 고맙기도 오글거리기도 하니 엄마인 나는 애교 넘치는 성격이 아닌 것이다.

사춘기는 지구 밖 남의 일이다. 옆에서 맴맴 도는지라 나는 되려  엄마의 독립을 외치건만 쉬이 내게 자유를 주지 않는다.

오후에 백화점에 나갈 일이 있어 같이 외출을 했다. 어디 가자고 하면 두 말없이 나서는 이 녀석은 내 손을 놓지 않고 보디가드가 되어준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오늘 문득 2년 전 어는 날이 떠올랐다.

되새김질할 이유가 딱히 있는 것도 아닌 평범한 날, 왜 지난날이 자꾸만 눈 앞을 스칠까.

커가는 속도를 멈추게 할 수도 없고, 흘러간 지난날을 붙잡을 수도 없건만 파편이 된 그 하루에 숨을 불어넣는다.




" 엄마! 나 보러 오면 안 돼요? "


매주 금요일마다 꼬박 보다가 한 주 거를 상황이 되었다. 나도 토요일 교육이 있고, 이 녀석도 이번 주는 학교에 있겠다고 선언했기에 마음을 놓았다. 그런데 교육 중에 전화가 걸려온다. 받을 수가 없다.

'거절' 버튼을 슬라이드로 훅. 밀어버리는데 마음이 울렁거린다.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미안해. 엄마 일하고 있어서 못 받았어. 저녁은 먹었어?"

"엄마! 내일 일 끝나고 나 보러 오면 안 돼요?"


일이 밀려 있다. 며칠 잠을 못 잤다. 몸이 천근만근이다.  이게 무슨 대수인가. 내 아이가 먼저이지.


" 응. 알았어. 갈게. 저녁 시간 잘 보내고 내일 만나자."


일요일 아침이다. 지난밤 집에 들어온 시간은 밤 12시가 넘었다. 하루가 길었다.

아침부터 다시 일을 하고 점심 정도에 일을 중단했다. 몇 시간 일을 하며 시계를 수십 번은 본듯했다. 아이에게 가야 하니 마음이 바빴다.


한 시간쯤 고속도로를 달렸을까. 쭉 뻗은 고속도로가 행여나 차가 막힐까 걱정하며 가는 중이다.

어제 고속도로에선 그저 어디론가 여행하는 듯한 홀가분한 마음으로 운전하지 않았는가.

아이라는 단어 앞에서 심장은 오그라들었다 펴졌다를 그간 수만 번은 했을 텐데 조바심은 줄지를 않는다.  

전화가 온다.


" 엄마! 오고 있어요? 언제 도착해?"

" 응~ 가고 있어. 2시 20분에 도착이야. " 시계는 1시 40분을 가리키고 있다.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아이 생각에 바람이라도 세차게 불어 차 뒤를 좀 밀어줬으면 좋겠다.

그럼 속도 카메라가 봐줄지도. 가끔 이렇게 엉뚱한 생각을 한다.


" 이 녀석아. 다음 주에 엄마 보자고 하더니. 고사이 마음에 바람이 불었어?"

씩 웃는다.

" 엄마! 나 배고파!! "

" 엄마가 니 밥줄이야?"

" 그럼~ 우리 엄마가 내 밥줄이지!!! "



근처 초밥 집에 가서 연어 초밥을 가득 먹고 카페로 향했다.

20분만 운전하면 바다가 있다.

방향을 조금만 틀어보자 싶다.


노래를 듣고, 한 주 있었던 얘기를  한다.

반 친구에게 빨간색 옷이 참 잘 어울린다고 말해줬더니 너무 좋아하면서 빨간색 티를 입고 나왔다고 한다.

친구의 자존감을 자기가 올려줬다고.


" 그래~~?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 내가 이번 주에 책을 좀 봤는데,  말과 생각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엄청 차이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배려심 있는 내가 되려고요."


웃음이 난다. 자신감이 공중으로 치솟는 이 녀석의 말에.

순간 진한 푸른빛 바다가 펼쳐졌다.

" 바다야!!"

고개를 창 쪽으로 돌리더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먼저 아는 체한다. 바람 부딪치는 소리에 정신이 번뜩한다.

바다가 환하게 보이는 바로 앞에 자리 잡은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통유리창을 활짝 열어 둔 카페는 바람이 한없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다. 멋지다.

뜨거운 아메리카노, 차가운 밀크티와 하얀 우유케이크 한 조각을 시켜서 2층으로 올라갔다.

햇살이 내리쬐는 날에만 이 곳이 허락될 듯한 광경이다. 지붕이 없다.

가벼운 천막 하나로 햇살을 절반 정도 막았을 뿐, 사방팔방이 바람벽이다.


10월 중순에 가까워졌다. 바람이 차갑다. 그래도 매섭지 않은 바람이니 바람 부딪치는 소리가 꽤 낭만적이다.

바람 소리가 음악이다. 바람 부딪치는 소리가 일상의 벽을 허물고 있다.

내 손에는 여덟 단어 책이, 열네 살 아들 손에는 부의 미래가 들려져 있다.

바람 소리 들으며, 눈 앞에 푸른 바다 위 통통배와 갈매기를 흘깃거리며 책장을 넘긴다.

잠깐 몇 페이를 넘겼을 뿐이다.

평일과 주말을 빠듯하게 보냈다. 몸은 지쳤고, 피곤이 쌓여 일이 끝나면 낮잠이라도 잘 생각이었다.



" 엄마. 나 보러 오면 안 돼요?"

이 녀석의 한마디는 나의 모든 것을 밀어 제치는 위대한 힘이 있다.

책장을 넘기는 아들 녀석 옆모습에 나는 평온하다.

  

"지난주 책 재밌었어?"

아이는 기억전달자 책을 읽었다.

" 엄마. 똑같은 규칙으로 똑같은 행동을 하며 사는 것은 참 잔인한 것 같아요. "

" 그래.. 맞아. 그렇게 살게 되면 자존감이 없을 거야. 아마. "

아이는 읽은 책의 내용을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해준다. 아이와 눈을 마주한다. 최대한 자세히 바라봐야 한다.

갑자기 뭐가 생각났나 보다.  

" 아참!!! 엄마 장점 쓴 거 있는데.. "

바인더에서 종이 한 장을 빼낸다. 얼마 전 장점 55가지를 적어 생일 선물로 주었는데, 그 뒷면에 엄마의 장점을 적고 있었나 보다.

31번까지 적혀 있다.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오는데 눈 앞이 자꾸 흐려진다.  55번까지 없어서 눈물을 참을 수 있었다.

다 적어서 다음 주에 주겠다고 다시 가져간다.

"고마워. 엄마 너무 감동이다. 엄마가 이런 사람이구나 ~"


꽤 찬 바람을 맞았나 보다. 추워졌단다. 시계를 보니 5시가 훌쩍 넘었다. 가야 할 시간이다.

바다를 바라보니 한가운데 햇빛이 바다를 빛나게 하고 있다. 금가루를 뿌려도 그렇게 빛나지는 않을 것 같다.


" 우리 일요일 오후 너무 멋지게 보냈다. 그렇지?"

손을 잡고 카페를 나왔다.

차를 타기 전 아이는 바다를 한참 바라본다. 아이의 한 발짝 뒤에 서있던 내 눈엔 바다가 아닌 아이의 뒷모습이 먼저 내 눈에 찬다. 눈 앞의 바다가 지금은 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 아이가 이 순간 저 넓고 푸른 깊은 바다를 이긴다.

'날마다 자라는구나.'

사라질 순간이다 싶어 사진을 찍었다.

그렇다.  이 순간이 지나면 모래성처럼 흩어져버린다. 끝나버린 어제도 오늘과 내일에 뒤덮이고 만다.

잠깐의 외출은 우리에게  열심히 살아갈 힘을 잔뜩 불어넣어주었다.

바다를 등지고 돌아온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돌아온다. 아이는 구름의 한가운데에 살짝 걸쳐진 동그란 해를 바라보며 또 하나의 기억을 만든다.


학교 기숙사 앞에 도착했다.


꼭 껴안았다. 등을 쓸어내리며 5초간 말없이 안고 있다.

" 한 주 잘 보내. 금요일 4시까지 올게! "

볼 양쪽을 잡고 뽀뽀를 했다.

" 사랑해!"

열네 살 아들은 씩 웃는다.

"엄마! 조심히 가요~ 운전 조심히 해요! "


기숙사로 들어가는 아들이 사라지고 나니 마음속에 불었던 바람은 어느새 잠잠해졌다.

가끔은 바람 부딪치는 소리를 들어야 일상을 잘 살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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