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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하 Feb 04. 2021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그녀

길 위의 사람과 행복


공덕역 근처 카페이다.


뜨거운 아메리카노와 에그 샌드위치가 먹고 싶어서 들렀다. 용산역에서 기차를 타야 하는데, 조금 여유가 있었다. 급하지 않다. 어제 오전과 오후에 연달아 미팅이 있었고, 오늘은 연수가 있다.

몇 달째 주말도 평일도 구별 없이 일을 했다. 이 일의 끝은 어찌 될지 모르지만, 어떤 경험이든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무모하게 덤빈 나이다.  그 덕에 얼음 위를 걷는 듯했다.

안 해 본 일을 능숙한 것처럼 해내려고 하니 선두로 달리는 차 꽁무니를 쫓아가는 격이다. 뒤쫓아가다 방향을 잃을까 봐 걱정하며 초조하던 몇 달이기도 했다.


오전 미팅은 세종, 오후 미팅은 신도림, 오늘 연수는 수원.

머리를 쥐어짜다 천안아산역에 차를 버리고 기차를 탔었다.

하루 일정이 무사히 끝나고 밤 10시 반쯤 되어서야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들어갔다. 너무 늦은 시간에 일이 끝난 것도 있지만 혼자 호텔 방 들어가는 것이 내키지 않은 지난밤이었다.

돈 낭비하는 것이 싫었다고 표면적인 이유를 대지만, 속으로는 바람이 휑, 적적함과 공허함이 감도는 내가 더 싫었다고 고백한다.

즉흥적인 선택은 가끔 나를 환기한다.


갑작스러운 게스트하우스 입장이었던지라, 그것도 밤 10시에 전화를 걸어 잠을 잘 수 있냐고 물었으니 주인은 어쩌면 내가 꽤 급한 상황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여러 명이 자는 방, 도미토리에 침대 하나가 비었다고 괜찮냐고 묻는다. 괜찮은 것을 넘어서 너무 다행이었다. 침대 하나 내게 내어주는 것만으로도 안도감이 찾아들었다. 방 문을 슬며시 밀었다. 학생 두 명과 인사를 했다.

자연스럽게 "안녕하세요!" 인사와 소개도 하게 된다. 활달하고 앳된 모습의 여학생들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마음에 냉기가 빠지고 온기가 찾아든다.

인사로 가볍게 끝날 것 같았는데 말이 꼬리를 문다. 대학생 두 명은 오늘 갔던 곳을 죽 늘어놓으며 맛있게 먹었던 음식과 눈에 스친 광경을 지금 있는 일인 것처럼 쏟아낸다. 한 번씩 핑퐁처럼 내게도 질문을 한다.

나도 설렘에 괜히 그들의 대화 속도에 나를 맞춰 본다.


'왜 이렇게 재밌는 거야.' 그러면서도 이내 힘이 빠진다. 몸 상태는 소모된 휴대폰 배터리 같으면서도 재잘거리는 두 사람에게 자꾸만 귀가 열린다.

스무 살 초반의 중국인 학생과 해외봉사를 떠나는 학생 두 명이었다. 중국인 학생은 우리말을 기차게 잘해서 중국인인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당차다.


해외 봉사는... 어디로?  캄보디아로 봉사를 떠난다니! 또 당차다.

난 그때 그런 생각은 하지도 못했는데, 중국인 학생은 우리나라가 좋아서 무작정 와서 말을 배우고 공부를 했다고 회고하듯 내게 처음과 지금을 드라마처럼 전한다. 멋지게 한국과 중국을 연결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호기롭게 꿈을 전한다.


나의 속마음. ' 참 좋겠다. 부럽다.' 나의 이십 대는 빛없는 사막이었기에 더욱 그 마음이 커졌다. 어두운 그날이 떠오르던 찰나 그중 한 명이 내게 묻는다.

"여행 중이세요?"

아니. 그럴 리가. 일 때문에 서울에 왔다가 늦어져서 갑자기 여길 왔다니 까르르 웃는다.

"몇 살이세요?"

이십 대는 역시 거침이 없다.

"당신들 나이의 곱하기 1.8?" (앞자리 4를 말하려고 한 순간 2 배수 같기에 순발력이 발휘됐다. 쓸데없이)


잠이 쉬이 들지 않는다. 삶의 변화, 고난, 두려움의 한 복판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내가 저들처럼 용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가슴 깊숙이 솟아오른다.

늘 이도 저도 분간 안 되는 임계점에 내가 있는 것 같다. 나는 나를 언제쯤 알아보고 찾을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되뇐다.

할 수 있다.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되뇐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할 수 있다고 되내어본다.

게스트하우스에 기도를 할 줄이야. 두고두고 잊지 못할 밤이다.

저들을 보고 나도 할 수 있다고 되뇌는 이 상황이 웃기지만, 눈을 감고 입술을 오물거리며 내게 속삭인다. 두시가 넘어 잠든 듯 하나 얕은 잠에 안갯속을 끝없이 걸은 것 같다.


다시 아침이다. 또 다른 곳에서 진한 아메리카노로 시작한 이 하루가 내게 1미터 나가는 하루가 되길 소망해본다. 길 위의 사람에게서 나는 희망을 얻는다.


몇 년 전 그날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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