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인 글은 나를 세상으로 내보내다.
글쓰기의 힘
나는 보통 사람이다. 보통의 싱글맘으로 산지 15년이 지났다. 먹고사는 일은 공부방 일이 되어 나는 내 삶을 지탱하기 위해 작은 동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 자리를 만들었다. 공부방 일이 끝나면 스탠드 불빛에 기대어
나는 내 감정과 문제를 직면하여 글을 쓰곤 했다. 때때로 아이의 웃음을 기억하고자 글을 썼다.
말보다 글을 택했다. 모든 것을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는 종이 위에 쏟아냈던 시절이기도 했다.
과거로 훌쩍 넘어가 어느 날의 나를 꺼낸다.
2012년, 벌써 8년 전이다. 시간이 꽤 흘렀다. 어느 날 밤 작정하고 어느 카페에 글을 시리즈로 올렸던 적이 있다. 폭탄 같은 글이었다. 그 글은 카페장의 눈에 띄어 베스트 글에 올라 몇 천명은 보게 되는 순간을 맞이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댓글로 심경과 위로를 전하며 내게 힘을 내라고 전했다. 익명의 글이 수많은 사람과의 교감과 소통을 만들어내서 나는 어둠의 방에 있었음에도 힘을 내었다.
누군지도 모를 타인에게서 위로와 위안을 받았으며, 그 뒤로 삶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며 나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였다
하지만, 싱글맘이 되어 산 삶은 더 고되었다. 이혼만 하면 살 것 같았지만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이 나왔으며, 그 산을 넘으면 자갈밭이 나왔던 지난한 삶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나는 삶을 놓지 않았다. 저런 글을 쓰기 전에도, 글을 쓰고 나서도 나를 견디게 하고 내게 힘을 주었던 것은 혼자 쓰던 글이었다.
그 글은 차곡차곡 쌓였고, 결국 나는 스스로 쌓았던 울타리를 허물고 새로운 길목에 나를 세웠다. 삶의 덫은 삶의 길이 되었다. 의지하지 않고 홀로 이 삶을 걸어나올 수 있는 것은 잊고 싶고 잊지 않고 싶은 일을 두번 세번씩 쓰며 수십번씩 읽으며 사는 힘을 키워냈기 때문이다.
지독하게 숨기고 싶었던 벽이 조금씩 힘을 잃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내게 붙은 꼬리표에서 자유로워지기까지 나는 마음을 굳게 수천번을 먹어야 했다.
두려웠다. 지난 날을 회상하며 다시 글을 썼다. 십오년 남짓의 글 속엔 지옥에서 지상으로 나온 내가 들어 있었다. 초고를 다 쓰고 한 달 넘게 쥐고 있던 지난여름이 나는 추웠다. 남들은 더워할 때 나는 한기를 느끼기도 했다. 손에서 글을 놓은 순간 파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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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카페에 족히 2년은 글을 많이 남겼던 시간이 있다. (글을 지우지 말걸 그랬다.)
아들이 6학년 때? 그때 글은 남아있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글을 쓰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글을 쓰면서도 나는 소망하지 않았다.
그땐 단 한 번도 꿈꾸지 않은 일이었기에.
작정하고 준비를 한 것은 작년부터이다. 마음이 언제부터 꿈틀거렸을까 생각해보니 아들이 5학년, 6학년이 되면서부터이고, 나는 무엇으로 나를 살 게 할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나씩 하나씩 시도하면서 나 자신을 다시 만들었다.
나는 여전히 공부방을 하면서 아이들과 삶의 절반을 채우고 있다.
일을 통해 성장도 많이 했다. 아이들에게 독서와 글쓰기 코칭, 자소서 첨삭지도, 영어와 비주얼 싱킹까지 다루면서 나는 아이들의 삶을 고민하는 선생님으로 자리매김했다.
나의 아들은 중2가 되어 밝고 씩씩한 모습으로 자랐다. 수다쟁이다. 키도 내 키를 훌쩍 넘어섰고
손을 잡으면 이제 나의 손을 감싸는 느낌이 드니 가슴이 뜨거워기도 한다.
마음 아팠던 지난 시간을 어찌 다 말로 할까. 잠든 녀석의 얼굴을 보며 숨죽여 울던 날이 셀 수 없이 많지만 어떤 문제든 함께 나누며 삶을 살고 있다. 더 이상 울지 않는다.
또 다른 삶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사는 속도가 느리지만 천천히 거북이처럼 가려고 한다. 지칠 때는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르면 된다.
글을 쓰는 것이 몸을 축나게도 만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시간 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우울증 약을 끊을 수 있던 것도, 심리상담센터를 중단할 수 있었던 것도 글이 나를 살도록 했기 때문이다.
자존하게 되었다. 나와 대화하며 타인과 소통하게 되었고, 글을 통해 사는 지혜를 키웠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부정하고 싶었던 날이 있었지만, 어둡고 부정적인 감정은 흘려보냈다.
스스로 갇혀 살기를 선택하고 오래 그 삶을 살았다.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믿는 나는 사람에게 당하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 마음이 검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우매함은 상처 위에 상처를 내서 나를 휘청거리게 했다. 태풍이 오면 모든 것이 뒤집어지듯이 내 처지가 그랬다. 폐허가 된 뒤 남은 것은 깨지고 울퉁불퉁해진 마음이었으나 상처를 딛고 일어났다. 홀로 삶을 견디고 내게만 머무르던 삶은 회복하게 되면서 조금씩 시선이 타인에게로, 세상 밖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삶의 벽을 뚫고, 울타리를 넘어서기까지 17년, 18년이 걸렸다.
오래 걸렸다. 그 시간이 좀 더 짧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다른 사람은 나보다 덜 아팠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변화되었다. 글은 내 마음 그릇을 키우기도 했다.
불행한 결혼, 혹독한 소송, 동생의 사망, 엄마의 공황장애, 남동생의 슬픔, 아들의 상처와 눈물, 나의 아픔...
통장 잔고 보며 설마 죽진 않을까 고민했던 날들.
모든 일이 실화냐, 소설 아닌가... 여전히 나는 이 말을 듣고 산다.
무너지지 않았다. 잃어버릴 듯했던 나 자신을 붙잡았고 그로 인해 나는 타인을 보게 되었다.
어찌 모든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다만, 삶의 희망을 놓지 않고 내게 주어진 삶을 힘껏 살았다. 또한 길 위에서 만나는 누군가에게 살아갈 힘을 전하면 좋겠다는 소망이 나에게 용기를 내도록 하였다.
숨어있는 싱글맘, 싱글대디 등 삶을 이끌고 가는 사람은 모두 외롭다. 나는 외로움을 뒤로 하고 고독을 내게 주었다. 고독한 시간 속에서 마음에 불을 지폈다. 삶은 뜨거운 용광로와 같아 어떤 삶의 문제든 우리는 해결할 수 있다며 길을 내주었다.
지금도 사는 것이 고단할 때가 많지만 사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영원한 고통도 아픔도 없었다. 부끄럽고 어리석은 일도 두 번 다시 그 일을 겪지 않기 위한 배움이 되었다.
혼자 벌어 자식 키우고 사는 삶은 쉽지 않음을 나는 소리 내서 말한다.
그럼에도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삶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자식의 아픔, 부모의 아픔 등 우린 살면서 여러 가지 문제를 만날 수 있다.
단지 시간 차이가 날 뿐이다.
나는 여전히 싱글맘으로 이 삶을 이끌고 가지만, 더 이상 위태롭지 않다.
혼자여도 괜찮기에.
어떤 삶이든 살 가치가 있다. 정답은 없는데 우린 끊임없이 정답을 찾으려고 하니 마음이 아프다.
다만, 내가 행복할 때가 언제인지, 나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행복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내게 더 오래 머물러 주었다.
잘못된 삶이었을지라도 바로 잡으면 되었고,
그 누구도 내게 힘을 주지 않아도 나는 내게 힘이 있다고 말을 했다.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힘이 있기에 어떤 일이 와도 기꺼이 껴안는다.
깊은 가을이다.
낙엽 지는 길을 걸으며 마음은 자유로이 풀어놓는다.
감정이 살아있다는 것이 진정으로 삶을 사는 것임을 나도 겪고 나서야 알았기에.
나는 조용히 속삭인다.
- 당신에게는 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