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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하 Apr 29. 2021

글 속에 삶의 본질이 있어서(1)

글쓰기의 힘


-- 62년, 꽃바람 (2016년 4월 14일)

     

영감. 더 아프지 말고 편히 가소.

이제 나는 무엇을 하며 살꼬.

영감. 그동안 잘 살았소.  

   

할머니- 62년을 함께 한 할머니는 그렇게 무덤을 쓰다듬으며 할아버지를 하늘로 보내셨다. 할머니는 몸의 기능을 잃어버린 할아버지 대소변을 받아내며 젖은 바지를 툭하면 갈아입혔다. 자신의 몸도 고된 날은 다시 이불을 적신 남편에게 타박을 주기도 했다.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도 이미 병이 들어 있었지만 할아버지 밥상만큼은 본인 손에서 놓지 않았다. 고생을 그리 했으면서도 나 고생하지 말라고 이리 먼저 가냐며 답이 없는 당신의 남편을 부르고 또 불렀다.  

스무 살 꽃 같은 나이에 시집와 꽃잎 날리는 푸른 봄날 62년의 세월이 그렇게 끝이 났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 모습은 늘 다정했고, 죽을 때까지 두 손 붙잡고 다니며 오순도순 삶을 지켜냈다.  

   

큰며느리- 38년 동안 며느리였던 나의 엄마는 아버지, 아버지, 가서 빈이 찾아 손잡고 다니소.

아버지. 이제 나를 누가 알아줄꼬. 아버지. 미안하오. 내가 미안하오. 울부짖다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이를 악물고 절대 울지 않을 거라는 엄마는 가장 서럽게 울었다. 가슴을 쳤다. 이미 멍들 대로 멍든 그 가슴을 때리고 또 때렸다. 울부짖는 목소리에 한이 맺혀 모든 이를 다 울게 만들었다.

     

할아버지 그리고 자식들 -

쇠약해진 엄마 마음을 엄마 가슴을 쓸어내리며 네 한을 어찌할까 하며 더 노쇠한 몸으로 죽을 때까지 정이 어미를 찾았다. 귀가 멀어 다른 사람 말은 못 알아들어도 큰며느리 말은 다 알아들었다.

작은 아들 내외가 큰아들, 큰며느리보다 백배 천배를 잘해도 할아버지는 정이 어미만 보면 눈물을 흘렸다. 작은 아들은 단지 자신의 엄마 아버지라는 이유로 몇십 년 동안 아버지께 입히고 먹이고 해온 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았다.

어느 집은 부모가 병이 들면 서로 네가 해라. 나는 못한다. 딸 아들 며느리가 서로 등 돌리고 그런다는데 4형제는 그 누구도 장남 차남 막내, 딸 아들 구별이 없었다.

‘우리 엄마, 우리 아버지니까 잘해야 하고, 잘하는 거다.’ 이 한마디로 누구 하나 생색냄도 없었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자식들의 효도를 받았고, 그중에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눈을 감을 때까지 헌신을 다 했다.

삼촌은  할아버지가 한 줌 재가 되어 나오는 시간을 기다리며 내 손을 잡았다. 어찌 살고 있냐며 나의 삶을 물었다. 그간 있었던 일을 털어놓으며 서러움의 눈물을 쏟아냈다. 미안하다. 삼촌이 헤아리지 못해서 미안하다.

하늘로 가는 마지막 날. 할아버지는 그렇게 자식들, 손자, 손녀를 한 데 모아서 핏줄은 이런 것임을 내게 확인시켰다. 나는 다시 나의 공간으로 돌아가면 아무렇지 않은 듯 내 삶을 살겠지.

11살, 2살, 50일 된 증손주까지 모두 할아버지를 배웅했다. 평생 따뜻했던 할아버지는 작년 봄날. 정 없는 큰 손녀의 손을 잡고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라며 눈물을 흘리시더니 그 모습은 못 보셨다.

     

장지로 가는 길-

이 좋은 봄날. 꽃바람이 부는 이 봄날.

들판과 길에는 너울너울 산들산들 하얀 꽃 분홍 꽃이 만개하였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은 알록달록 무지개를 펼치고 있다.  꽃이 피는지 지는지, 봄이 오는지 겨울이 가는지, 야속한 세월 속, 어두운 방구석에 갇혀있는 엄마를 나오게 하였다. 꽃바람 맞으며 꽃구경하라고 이 좋은 봄날.

그리고 평생 자랑스러워하던 6.25 참전 용사 배지, 흰 모자, 즐겨 입던 옷 한 벌, 구두 하나만 챙겼다. 이제 나 갈게. 하며 손녀가 콧노래 부르며 먼저 기다리고 있는 저 하늘로 가셨다. 정 없는 큰손녀에게 이 세상 어찌 살아갈지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게 하고 가셨다. 슬픔은 예고 없이 몰려와 금보다 귀중한 것들을 내게 알려주고 슬픔 속에 머무르지 말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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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할아버지 장례식장에 다녀와서 쓴 글이다. 그 일이 일어난 것보다 그 일이 일어나고 난 후 내가 어떤 느낌이었는지, 내가 무엇을 생각하였는지 기억하고 싶었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각자의 하루를 사느라 분주하다. 고군분투하다가 죽음을 결국 만날 것이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삶을 뻔히 알면서도 사는 것만 생각한다.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한 것도 장례식장에서 서 있는 나를 통해서였다. 나는 여러 번 장례식장을 드나들며 숨겨야 한다고 여겼던 것들도 털어놓을 힘을 키웠는지 모른다. 조각조각 남겨진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면 더 빛을 발할 것이다. 그것이 삶의 본질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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