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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하 Mar 18. 2022

진심을 다하면 나쁜 사람이 된다

단지 몇 번 찔렸을 뿐 


" 정체불명의 사랑이로구나, 사랑의 깊이가 깊든 얕든, 사람에 대한 도의를 가지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


이십 대부터 삼십 대까지 몇 차례 치옥스런 이별 후의 지난한 삶은 J에게  강인함과 적당한 독립성을 선물로 주었기에 마냥 의존하고 기대는 그녀가 아니었다. 적당한 사람 관계에 능숙한 그녀는 어지간한 일은 맞추는 성격이고, 사람과 마주하면 심플하다. 복잡하지 않다. 물론 당참은 사라진 지 오래이고 파혼과 배신, 사기 등 고통의 터널을 지나오다 보니 적당히 수동적인 삶이 된 것도 사실이다. 상처의 경험이 많으면 마음을 내는 속도가 느려지고, 마음을 여는 정도는 좁아지고, 마음을 믿는 힘은 약해진다. 그런 자신을 재건이라도 하듯 J는 그 남자와 부딪히고 있었다. 그가 어딘가에 존재하던 러버가 아닐지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짧게 안부를 전하며 간간히 맥을 이어왔던 만남은 6개월도 채 안되어 끝났다. 시간이 느려진 토요일 밤이다. 커피 한 잔을 들고 멍 때리던 고요한 시간, 요란하게 진동벨이 울린다.  

반가운 그녀의 목소리를 기대하며 나도 잠긴 목소리를 한 옥타브 높게 끌어내려고 하는데, " 또 속았어."라는 한탄스러운 목소리가 나를 무장하게 한다. 무슨 일이 생기면 혼자 삭히지 못하는 성격이니 들어줘야 한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 사랑의 끝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확실하게 끌리는 감정은 없었다. 호감은 분명했지만 서로가 아쉬워서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닐까. 결코 사랑한다는 단어를 단 한 번도 쓰지 않으면서 그 허기를 채우기 위해 만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하지 않았던가. 시간이 지나 보면 알 거야. 하며 일단 가고 싶은 곳까지 가보라고 했던 나의 몹쓸 말에 자책하고 있다. 그녀의 잠긴 목소리에 어떤 위로를 건네야 할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따뜻한 말 한마디가 쉬이 떠오르지 않는다. 


믿지 않는다 하면서도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평범한 온정을 건넸다. 일상을 재잘거리기도 했고, 우스꽝스러운 이모티콘으로 태생이 무뚝뚝하다던 그에게 깨방정을 떨기도 하며, 그의 태도와 감정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여행을 떠나기도 하면서 보통의 연애와는 조금 다른 연애를 했다. 

왜 조금 다른 연애를 칭하냐 하면, 가끔씩 그와 주고받던 톡을 볼 수 있었는데, 관심이나 애정이 담긴 말을 나는 눈곱만큼도 느낄 수 없었다.  '좋은 아침, 즐점심! 굿밤'이라는 그 남자의 짧은 말이 마지못해 하는 인사말로 보였고, 도대체 무슨 얘기를 주고받는지 궁금하여 물어보면 만날 장소를 정하거나 주식이나 코인 근황 말고는 별다른 대화가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다정한 말을 좋아하는 그녀의 성격도 나이 들어 메마른 것인지 이런 대화를 몇 달 동안 주고받고 있다는 그 상황이 놀랍기만 했다. "야! 이거 괜찮은 거야?"라고 물으면 이 사람 성격이 원래 이렇다며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말에 한 마디 핀잔을 주기는 했다. 

" 원래 그런 사람이 어딨어. 좋아하면 안 하던 말, 못하던 말도 하기 마련이야." 

말도 안 되는 호르몬이 온몸을 지나다니는 순간이니 당연히 그럴진대,  미지근한 언어를 주고받는 그들이 묘하기만 했다. 그래도 뭔가 하나는 맞는 구석이 있겠지 하며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사실 사랑이라 하면 구석으로 기어들어가는 사람이 나 아니던가. 어찌 됐든 그와 그녀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연애를 하였는데, 두서 달이 지났을 때쯤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며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면서도 심증으로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며 그 만남을 유지해나갔다. 세 번째 계절의 중턱에 왔을 때, 그녀의 나쁜 예감은 맞았다. 

찰나 J의 눈에 들어온 또 다른 여자의 이름과 마지막 문자 메시지 "힘내요" 이 세 글자가 눈동자에 박혔다. 그로부터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던 세 글자의 정체를 알기 위해 틈을 노리던 그녀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현실을 확인했다. 

그 사람은 자신에게 진심을 다하는 여자를 만나면서 또 다른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있었다. 자신을 떠나지 말라는 말, 제 때에 밥을 잘 챙겨 먹으라는 따뜻한 말로 가득한 문자를 보며 파르르 떨었다. 

원래 무뚝뚝하고 표현이 없다는 그 사람은 그곳에선 밤하늘이 빛날 정도의 말을 건네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무렇지 않게 그녀와 여행 계획을 세우고, 손을 잡고 걸었으며 밤을 보냈다. 

그의 문자를 넘겨보며 입을 다물었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헤어지자마자 내게 전화를 걸어 흐느꼈다. 사람을 선택한 대가는 차갑고 살을 에린 듯 스미는 통증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겉과 속이 같음을 드러내면 상대는 화살을 겨눈다.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은 생채기로 나쁜 사람이 되고, 진심인 척했던 사람은 조용히 물러나며 좋은 사람이 되는 현실 속에서 누구를 탓하랴.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휘청인다. 떨리는 마음을 애써 누른 채 웃으며 말했다.

"어딘가에 좋은 사람이 있다고 하는 말, 진짜인가 봐. 그 사람은 아니라고 알려준 거잖아. 이걸 알아내다니! 멋지다. 야. 이쯤에서 우리가 한 번 보고 넘어가야 할 그림이 있잖아. 프리다 칼로에게 좀 기대자." 

문득 프리다 칼로의 <몇 번 찔렸을 뿐>의 그림이 떠올랐다. 그토록 사랑하던 남편 디에고는 자신의 여동생과 바람을 피우는데, 프리다 칼로는 가장 믿고 의지하던 두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그림 속에 고통스러운 감정을 남김없이 담아냈다.


그저 몇 번 찔렀을 뿐. 그리고 몇 번 찔렸을 뿐. 상처는 그렇다. 베이고 긁히고 부러지고. 그저 몇 번의 상처일 뿐인데 상처 입은 사람은 망가진다. 상처를 준 사람은 난처할 순 있어도 아프진 않았다. 

가슴이 찢기는 순간에 프리다 칼로를 떠올리며 지탱했던 때가 있다. 프리다 칼로는 지독한 현실을 그림에 투영함으로써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림을 볼 때마다 고통이 전해지니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나와 상관없는 척, 외면할 수 없었다. 사실 우아하게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 불편하다. 그래도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찾아보는 것은 함께 아파하는 마음과, 상처 투성이 현실을 살아내려고 했던 프리다 칼로의 강인함을 배우고, 그가 마지막에 남긴 <삶이여, 만세>의 수박처럼 나만의 색깔과 삶을 되찾고 싶은 염원을 키워내고, 현실을 딛고 또 기꺼이 부딪치는 용기를 냈기 때문이다. 


메시지로 건네 준 그림을 보더니 씩씩해졌다. 예전의 그녀가 아니다. 두 번 다시 사랑도 사람도 안 믿는다 했던 그녀의 입에서 다른 말이 나온다. 

"응! 계속 시도해볼게, 억울해서 이대로 못 죽어, 그러니까 말이야. 언니 너도 사랑을 믿어봐. 미친 것처럼" 

생뚱맞게 내게 사랑을 권하는 그녀, 그래, 나도 그럴게! 몇 번의 상처는 이젠 덜 아픈 건지, 주르르 눈물 한 번에 다시 일어나는 그녀에게 내가 위안을 받는 밤이다. 

이 삶에 진심을 다하자. 나쁜 사람이 또 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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