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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un Kim Apr 19. 2020

비바리움(2019) -  후기

굉장히 신선했던 예고편을 보고서 곧장 보게된 영화 비바리움. 간단히 후기

예고편

https://www.youtube.com/watch?v=OwxcZXq3Kdg&feature=emb_title


줄거리

큰 줄거리는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곧 결혼을 앞둔 톰과 젬마는 신혼집을 알아보는 도중 ‘마틴’이라는 중개사가 일하는 사무소에서 ‘욘더’라는 교외 단지를 소개받습니다. 곧장 욘더로 향해 집을 둘러보던 중 마틴은 사라지고, 젬마와 톰은 욘더에 갇히게 됩니다. 둘은 욘더를 탈출하려 하지만, 미로처럼 설계된 그곳에서 벗어날 방법은 보이지 않습니다.


(스포주의)

예고편에서도 보이듯, 젬마와 톰은 이내 집 앞으로 배송된 아이를 발견하게 되는데, 상자에는 아이를 키우면 이 집을 벗어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적혀있습니다. 매일 맛도 느껴지지 않는 음식물, 생필품들이 집앞으로 배송되고 아이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성장합니다.


톰은 담배를 피우던 중 담뱃불이 집 앞 잔디를 기괴하게 태우는 모습을 보고 엄청난 끈기로 삽질을 시작합니다. 톰은 자라나는 아이를 적으로 간주하고 젬마에게 그를 돌봐주지 않을 것을 요구하지만 젬마는 이를 거부합니다. 톰과 젬마는 멀어지고, 아이와 젬마는 가까워지는 듯 합니다.


어느 날, 아이는 집 밖으로 나가 누군가를 만나고 돌아옵니다. 아이가 늘 자신과 톰을 따라하는 것을 아는 젬마는 집 밖에서 만난 누군가를 알아보려 시도하는데, 아이가 따라한 ‘누군가’는 목이 개구리처럼 부풀어오르는 기괴한 모습이었습니다. 젬마는 울부짖으며 집으로 돌아가게 해달라 울부짓지만, 아이는 ‘이곳이 우리의 집이야, 엄마’라는 대답을 남깁니다.


시간이 지나 아이는 성인이 되고, 톰은 고된 삽질로 인해 쇄약해질대로 쇄약해집니다. 젬마와 함께 처음 만난 때를 떠올리던 톰은 결국 숨을 거두고, 아이는 어디선가 시체를 담는 백을 가져와 톰을 담고, 톰이 파놓은 구덩이로 밀어넣습니다. (근성으로 자기 무덤을 판 톰… 톰이 마지막으로 파놓은 지점에는 사람의 시체가 한 구 놓여있었습니다…)


톰을 잃은 젬마는 아이를 공격하는데, 급습을 당한 아이는 집 앞 보도를 들어올려 기괴한 공간으로 도망칩니다. 젬마도 그 공간에 따라들어가게 되는데, 이내 자신들과 같은 처지로 욘더에서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기괴한 경험 끝에 다시 욘더로 돌아온 젬마. 젬마도 이내 숨을 거두고, 아이는 젬마도 백에 담아 톰이 판 구덩이로 던져넣고 구덩이를 메웁니다.


톰과 젬마를 정리하고 아이는 세상으로 나갑니다. 영화 초반에 등장한 부동산 사무소로 찾아간 아이는 죽어가고 있는 마틴을 시체 백에 담고, 마틴이 달고 있던 명함을 빼다 자기 옷에 끼웁니다. 새로운 마틴은 새로이 욘더로 향할 젊은 부부를 맞이합니다.


후기

처음 영화를 봤을 땐,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회의론을 다룬 영화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내용을 곱씹어볼 수록, 이 영화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혼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었던 톰과 젬마는 자신들의 아이가 아닌 ‘욘더’의 아이를 키우다 생을 마감합니다. ‘욘더’의 시스템(영화에서는 prospect properties라는 기업명)은 톰과 젬마에게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갖가지 필요한 물건들을 전달해주지만, 결코 그들이 밖으로 나갈 방법을 제공하지 주지 않습니다. 언뜻보면 아이를 키우는 행복한 젊은 부부의 모습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톰과 젬마는 그런 허울 좋은 겉치레에 갇혀 생을 낭비하다 죽음을 맞이합니다. 톰과 젬마가 욘더에서 한 일은 욘더의 시스템을 지속하기 위한 노동착취를 당한 것에 불과합니다.


영화의 막바지 장면


사회 시스템은 일개 개인의 손으로 바꿀 수 없는 성질을 띱니다. 현대 사회의 개인은 사실상 시스템에 종속된 존재이고, 개인의 삶은 시스템이 설계해 놓은대로 어느 정도 고착화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욘더의 시스템에서 엄마는 아들을 세상으로 내보내주는 사람이며, 아빠는 무언가에 몰두하여(전통적 부모의 모습을 투영하면 일이겠죠) 가족과 멀어지는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말마따나 톰은 집을 얻은 뒤 죽어라 일만 하다(삽질만 하다) 삶을 마감했고, 결국 자기가 무언가 해냈다고 생각한 곳에 허무하게 묻히고 맙니다.


욘더의 운영 주체는 어떤 존재들인가…

젬마가 아이를 공격하고 접어든 기괴한 세계에서는 다른 부부들이 자신들과 똑같은 상황에 놓여있음을 표현합니다. 감독은 모두가 같은 시스템 속에 갇혀 있으며, 이 시스템 속에서는 누구도 다른 미래를 그릴 수 없다는 매우 염세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무서운 것은 개개인으로선 도저히 그 시스템의 의도, 의미 등에 대해 잘 알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영화에서도 젬마가 욘더의 운영자를 다룬 책을 발견하긴 하는데, 이 책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문자와 그림들로 이뤄진 탓에, 이로부터 탈출을 위한 그 어떤 실마리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new 마틴’은 또 다른 부부와 만나고, 그들에게 욘더를 소개해줍니다. 그 뒤로 있을 일은 더 말하지 않아도 뻔한 내용이겠죠. 이렇듯 시스템은 현대를 살아가는 개개인의 삶 속에 이미 깊숙히 침투해 기생하며, 그 생명력을 지속해나간다는 결말인 셈이겠죠.


영화의 이러한 메시지는 사실 초반 도입부에서부터 드러납니다.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를 보여주는데, 영화는 의도적으로 그 모습을 매우 기괴하고도 혐오스럽게 묘사했습니다. 아기 뻐꾸기는 다른 새의 둥지에서 어미의 진짜 자식들이 먹어야 할 음식을 탐하며 성장을 하게 되구요…


욘더 단지의 모습


내용과 별개로 이 영화는 굉장히 훌륭한 비주얼과 아이디어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특색없어 보이지만, 매우 인공적인, 그래서 더 무서움을 자아내는 단지 디자인이라던지, TV를 켜면 등장하는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알 수 없는 메시지라던지… 감독은 대놓고 공포를 유발하는 장면을 배치하지 않고도, ‘익숙하지 않음’에서 기인하는 공포를 연출하기 위해 이러한 장치들을 적절히 잘 활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맥락에서는 작년에 개봉했던 미드소마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영화는 초반부를 제외하면 모두 욘더 내부의 모습만을 보여주는 터라, 전개는 다소 지루하고 답답하다는 인상을 주긴 합니다. 다만, 이는 어느 정도 영화가 의도한 내용이라 여겨지기에 크게 비판할 지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보실 분이 계시다면, 이 부분은 참고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P.S. 참고로 비바리움의 사전적 의미는 '관찰이나 실험을 목적으로 동물이나 식물을 사육하는 공간'이라고 합니다. 다소 진부하긴 해도, 늘상 시스템 내의 인간을 묘사할 때 자주 사용되던 느낌을 갖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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