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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Valerie Mar 14. 2019

#2. 지구 반대편에서 만난 내 인생의 멘토

2008년, 루브르에서 만난 내 인생의 멘토.

[이 글은 1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2008년 7월 13일 일요일,


어두컴컴해진 파리 거리를 비추는 건축물들의 벽등을 배경으로 루브르 피라미드를 카메라에 담으니 정말이지 예술이었다. 요리조리 대포 같은 DSLR 카메라로 사진을 찍다 힘들어 잠시 앉을 곳을 찾아 피라미드 앞 의자로 갔다.


뷰파인더로 필요 없는 사진들은 삭제하고 몇 개나 건졌나 확인하고 나니 할 게 없었다. 주변을 서성이며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시공간을 한껏 느끼고 있는데 내 눈에 유모차 한 대가 들어왔다. 아기가 누워 있을 거란 확신에 그 옆에 엄마인지 보모인지 확인도 안 하고 유모차 안에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헉'


그 안에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강아지 두 마리가 앉아 있었다. 지금은 강아지 유모차를 시내 곳곳에서  만날 수 있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국내에서는 상상도 못 할 노릇이었다.


너무도 이상한? 광경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나를 보고 유모차 주인은 아이폰에서 시선을 떼 나를 쳐다보았다.


중년의 아시아 여성이었다. 영어가 굉장히 유창한.


"놀랬어요? 미안해요. 내 아가들이에요!"

"아, 네에. 죄송해요. 강아지가 유모차에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여기 바닥이 울퉁불퉁하잖아요. 아이들이 걷기 불편해 유모차가 없으면 안 돼요.

여행 중인가 봐요?"

"네에.."


파리에서 영어 하는 게 불편하기도 하고 말할 사람이 없어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였는데

유창한 영어를 듣고 나니 이때다 싶어 신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분도 혼자 있던 게 외로웠던지 대화에 별로 관심을 안 두는 척하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어디서 왔어요?"

"한국에서요! 대학 졸업 앞두고 배낭여행 떠나왔어요. 여기 파리에 사세요?”

“아니요. 난 뉴욕에 메인 집이 있어요!”

“메인 집이요?”

“난 뉴욕, 런던, 파리에 집이 있어 일 년에 세 달씩 옮겨 다니며 살아요.”

“네?”


‘세상에 드림시티에 집이 한 채씩 있다고? 이 아줌마가 지금 장난하나?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거야?’


“22살에 배낭여행이라.. 멋진데? 그 나이가 너무 부러워.”


분명 영어에는 반말과 존댓말이 존재하지 않지만,

느낌만으로 아는 그 뭐랄까 친밀감에서 오는 말투는 분명

한참 어린 딸뻘? 인 내게 말을 걸고 있음이 확실했다.


"그거 알아? 너의 그 나이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지금 돈은 없을 거야. 근데 체력과 건강이 있어.

나이가 들면 재정적으로는 여유로워지지. 근데 이미 늦어. 너처럼 세상을 여행 다니기에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게 젊음이야. 젊었을 때 더 넓은 세상을 보고 경험하고 즐겨.

나중에 네가 얼마큼 성장해 있을지 보게 될 거야.

지금 3개월간 혼자 배낭여행 떠난 너의 모습만 보더라도 넌 분명 훌륭한 사람이 돼 있을 거라 믿어."


만난 지 오분만에 내 귀와 눈, 온몸의 모공까지 활짝 열려 이 중년 여성의 말을 흡수하고 있었다.

그런 내가 귀여웠던지 그 중년의 여성은 내게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미술사를 공부한다고 했지? 그럼 뉴욕으로 와!

뉴욕엔 최고의 예술 프로그램이 있는 뉴욕대학교가 있지. NYU만큼 예술 공부하기 좋은 곳이 세상엔 없어. 뉴욕의 문화와 예술을 경험하며 공부까지 할 수 있는 세상의 중심이지."


어릴 적 아버지가 잠시 미국으로 유학을 가시는 바람에 초등학교를 미국에서 다니며 미국은 나의 제2의 고향과 같았다. 여건만 된다면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공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환경적으로 힘들었고 대학은 한국에서 나와야 된다는 부모님의 생각이 확고해 국내에서 대학교에 진학을 했다. 그렇게 학교를 다니다 보니 유학에 대한 꿈은 잊고 산지 오래. 이제 졸업하고 동대학원을 갈지, 어디에 취직할지 고민하며 현실에 안주하려는 내 뒤통수를 아주 세게 연타로 치는 듯했다.


"19살 때 중국에서 집을 뛰쳐나와 미국으로 왔어. 영어 한마디 못했지만 아르바이트하며 영어 공부를 해 UCLA에서 문학을 전공했지. 난 집이 너무 싫었어. 답답하고 평생을 그곳에 살 수가 없었어. 그래서 도망 온 거야. 지금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어. 얼마 전, 정말 사랑하던 남편이 세상을 떠났거든. 지금도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해. 남편을 그리워하며..."


남편과 사별한 지 꽤 오래돼 보였지만,

남편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에 나도 마음이 아파왔다.


그녀와의 대화가 너무 재미있었지만, 이쯤 해서 마무리 지어야 했다.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혼자 여행하며 나름 룰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9시 전에는 숙소로 돌아가야 된다는...


"내일은 런던으로 떠나요. 한 달 정도 여행을 더 하다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말씀해주신 이야기 잘 새겨들을게요. 돌아가서 앞으로의 계획을 다시 생각해 봐야겠어요. 너무 감사해요. 뉴욕 가면 만날 수 있는 거예요?"


"응, 당연하지! 너 이메일 주소 좀 줄래? 지금 바로 이멜 보내 놓을게. 이야기할 상대가 필요할 때 고민들이 있을 때 언제든 이야기해줘. 네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는지 업데이트도 좀 해주고!

아, 내 이름은 나탈리야!"



Natalie 아줌마? 에게 받은 첫 이메일



[3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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