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지기의 발걸음 2편
방랑 소설. J.han 단편집 수록 작품
항구에 배를 정박시키고 육지에 첫 발을 디딘 콜이 가장 먼저 느낀 감상은 '고요하다'였다. 지금은 막 아침이 된 시간대, 다시 말해 뱃사람들과 항구사람들이 사람 반 공기 반으로 부대끼는 때였다. 콜이 어릴 때 읽은 책에서도 대충 풍경이 그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마을이 특이한건가?'
비교군으로 둘 만한 곳이 달리 없었던, 살면서 처음 와본 마을이 여기였던 콜은 무엇이 특이한지도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선착장에서 부둣가로 나온 콜을 반겨준 풍경은 곧바로 그에게 이질감을 가지게 했다. 뼈만 앙상하게 드러난 시체가 거리에 즐비해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섬에 떠밀려 온 배의 잔해와 함께 있던 그 물체를 콜은 떠올렸다. 그리고 또 한가지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여기는 이제 사람이 살지 않는구나.'
확인을 할 필요도 없었다. 시체를 치우는 산 사람은 고사하고 인기척조차 나지 않았기에. 코를 찌르는 악취에 얼굴을 찡그리던 콜은 텅 빈 자루로 코를 감싸서 막았다. 헛구역질이 올라왔지만 토할 정도는 아니었다. 단지 처음으로 밟은 육지에서 받은 첫인상이 시체냄새로 남게 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콜이었다.
불행 중 다행, 콜이 마을을 둘러본 뒤에 내린 결론이었다. 이 마을에 살아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 말인즉슨 이 마을의 식량은 모두 콜이 챙겨도 아무런 불상사가 없다는 뜻이 된다. 걱정 없이 식량을 확보해도 될 것 같았다.
사실 콜에겐 육지에 와서 식량을 어떻게 얻어야 할지가 골칫거리였다. 할아버지가 하던대로 물물교환을 하면 1년치 식량은 어림도 없고, 노동을 해서 얻은 돈으로 식량을 사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가능하면 빨리 섬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콜에겐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식량을 훔칠 수는 없었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할아버지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었으니. 그래서 콜은 마땅한 해결책도 없이 뱃길에 올랐던 것이다.
그런 고민이 해소되었으니 콜은 어깨가 한결 편해짐을 느꼈다. 그는 찬장에서 간식거리를 꺼내먹듯이 주인도 모르는 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당연히 인사도 경악도 없는 조용한 집안이 콜을 맞이했다. 콜은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겨 식재료나 식량이 있을 법한 곳을 닥치는 대로 뒤지기 시작했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콜의 손에 통조림 하나가 들어왔다. 자루는 여전히 빈 상태다. 이 마을에서 얻은 첫 수확, 생선이 그려진 통조림 한 캔.
"이런 썅. 이걸 누구 코에 붙여."
육지에서 뱉은 첫 음성은 공교롭게도 욕설이었다. 눈치를 살필 할아버지가 없었으니 소리도 무척 컸다. 그러나 그 욕설이 콜의 공복감과 기분을 달래주진 못했다. 식탁에 놓인 칼로 통조림을 딴 그는 단숨에 내용물을 입 안에 털어넣었다. 할아버지가 가끔 가져왔던 음식이라 친근했다. 이 마을에서 처음으로 느낀 맛은 고소함이었다. 그 다음에 바로 비릿함이 찾아왔다. 비릿함마저도 콜의 주린 배를 자극했다.
가히 마중물을 집어넣은 펌프와도 같았다. 이틀만에 음식 맛을 본 콜은 다음 집으로 향했다. 지붕이 다소 무너지긴 했지만 안은 멀쩡했다. 이번에는 좀 얻는게 있겠지. 콜은 그런 기대를 품었다. 품었다가 실망했다. 이미 누군가가 다녀간 흔적이 주방에 남아있었다. 식량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겨우 2번의 실패였다. 다음 집으로 향했다. 결과는 아까와 똑같았다. 또 다음 집으로 향했다. 소득은 없었다. 결국 마을에 있는 모든 집을 다 뒤진 콜이 얻은 것은 비릿하고 고소한 통조림 하나가 다였다.
'낭패다. 아예 다른 마을로 가봐야 하나?'
마지막으로 뒤진 집 근처의 그늘에 앉은 콜은 애써 냉정히 사태를 파악하려 했다. 생각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고가 나름대로 체계를 갖추는 중이었다. 다음 마을이 어디에 있는지는 안다. 할아버지가 그린 지도가 콜의 바지주머니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엄습해오는 불안감. 콜은 그 불안감이 제발 현실이 아니길 바라며 일어섰다. 그 순간,
"너, 어디 출신이야? 바다냄새가 나는걸 보니 우리 쪽은 아닌것 같은데."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