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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Apr 25. 2021

포기를 주제로 한 시들

포기에도 나름의 용기가 필요하다

안녕하십니까, 제이한입니다. 이번주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이주의 베스트 시간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주제는 포기였지요. 포기란 이루고 싶었던 일을 그만둔다는 뜻의 단어입니다. 스스로의 의지든 다른 사람에 의해서든 목표를 도중에 중단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포기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미련이 남는 포기와 그렇지 않은 포기. 대개는 전자의 경우입니다. 스스로의 의지로 포기하는 사람은 극히 적지요. 조금이라도 못한 일이 있다 싶으면 미련이 남을 수밖에 없는게 사람 마음이니까요.

어찌됐든 포기는 사람한테 패배감과 상실감을 느끼게 하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포기가 과연 패배의 동의어일까요? 저는 포기가 전략적 후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말로는 포기했다고 하지만, 사실 마음 속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거든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재도전하거나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목표를 이루려는 시도는 모두 한번쯤 포기를 한 뒤에 이뤄집니다. 그런데 어떻게 겨우 포기 한번을 패배라 논할 수 있겠습니까.

포기란 잠정적인 휴식입니다. 현실과의 타협이나 굴복이 아닙니다. 도전하는 자의 마음이 회복하기까지시간을 벌기 위해 쉬어가야 하는 휴게소같은 행위, 그것이 바로 우리가 흔히 포기라 칭하는 개념의 진짜 뜻이라 생각합니다.

그럼 이번주 베스트에 오른 작품들을 소개하겠습니다.



1.직화불막창님의 '그냥'

https://m.fmkorea.com/3530394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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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쉬웠어.
의외로 할만 하더라

지레 겁먹고
전전긍긍 했는데.
  

두려웠지만
용기있게 해야 되는 거더라

슬픔 같은 지겨운 감정
조용히 눈 감기고

외롭게 외롭게
똑바로 걸어가는 일


그거 알아?
네 말대로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결코 충동적이지도 않아  

그런 게 될 수가 없어 


나는 말야

내 주제엔

다른 걸 바랄 수 없었어

내 작은 아픔 따위가 있더라도

그냥
모두가 편안해지는 게

이익인 줄로 알고 있어서


그냥 


긴 어두움이 지겨웠어

매년마다 바뀌는 나이가

매일마다 다가오는 밤이

매번 돌아가는 시곗바늘이

날 엉키고 들뜨게 했어


그게 다야

그냥 그래 


뒤 돌아 떠나
가버려요

날 진흙 모래밭에

날 검푸른 바닷속에

툭 던져두고

신경 쓰지 마 어떻게 되든

//////////
시평: 사실은 포기에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먼저 사태를 직시하고, 자신의 힘으론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임을 깨달은 뒤 못한다고 인정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목표가 아닌 포기를 위해 충동적인 힘을 빌립니다. '그냥'이라는 단어 하나로 퉁쳐버리면 모든 것이 다 편한 방향으로 흘러가죠. 책임도 아픔도 고뇌도 없는 포기의 바다로.

잘 읽었습니다.



2. 개브리님의 '포기'

https://m.fmkorea.com/3532349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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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마주보는 사이지만

그 이상 진척되지 않는 그 간격은  

가느다란 선을 두고 있는 것만 같다.

선을 두고 둘만의 불문율이 정해진 것 만치

제자리에서 서로를 바라본다.

참 눈이 맑구나라고 생각하지만  

이내 부끄러워 고개를 돌린다.

선을 넘으면 나란히 설 수 있을까 생각하지만

등돌린 모습을 보게될까 두려워

퇴색되어 가는 풍경화을 옆에 두고 그 시간에 기댄다.

/////////////
시평: 평행선 중 하나를 옆으로 기울이면 선과 선이 맞닿게 됩니다. 사람의 관계가 깊어지는 것은 이 선과 선의 접촉과도 비슷합니다.

하지만 맞닿은 선의 반대 부분은 어떨까요? 오히려 평행했을 때보다 더 멀어져 있습니다. 맞닿음과 떨어짐의 공존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맞닿거나 아니면 아예 멀어지든가. 화자는 선을 맞닿게 하기 위해 방향을 바꿨지만, 만약 상대방이 멀어진 부분을 가리켰다면? 이제 제자리에서 서로를 바라볼 수도 없게 됩니다.

그래서 화자는 변화를 포기하고 평행을 유지합니다. 항상 옆에 있지만 결코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처럼 그저 흐르는 시간에 관계의 길일이 찾아오길 바랄 뿐이죠.

잘 읽었습니다.


3. 파단신님의제자님의 '회중시계'

https://m.fmkorea.com/3534604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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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머니엔


10시를 가리키는 망가진 회중시계가 들어있다. 


헌 부품을 갈고 새 부품을 끼워 넣어


시계를 고칠 수도 있고 


몫을 받아 팔아버린다음 


새 시계를 장만할수도 있지만,


내 주머니 속엔 아직 


10시를 가리키는 망가진 회중시계가 남아있다. 


지나고 나서야 보이고 


남이 되어야 깨닫는 것이 있다고,


이제는 답을 찾아 한층 성장했다 생각하지만


아직 나의 마음 속엔 


미련을 못버린 망가진 회중시계가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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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물건을 버리는 것은 포기와 같은 행위입니다. 이제 그 물건의 쓸모를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해서 버리는 것이니까요.

반대로 망가진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건 포기를 포기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희망적인 재도전을 시도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시의 화자가 시계를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처럼, 포기를 포기하는 사람은 도전도 포기도 하지 않습니다. 축구게임에서 90분동안 공을 갖고 가만히 서 있는 것과 다를게 없지요.

어떤 목표든 간에 이루기 위해선 노력과 계획을 필요로 합니다. 시계를 가지고 다니기 위해선 시계가 작동해야 하고, 망가진 채로 둘거면 차라리 주머니에서 꺼내 서랍에 넣어야 합니다.

화자는 시계를 고칠 마음도 버릴 용기도 없는 겁쟁이에 불과한 사람입니다. 포기할 용기가 없어 현상을 유지하는 사람, 마음이 허전하게 텅텅 빈 사람.

잘 읽었습니다.

/////////////

며칠 전에 몇년 동안 쓰던 전자레인지를 내다 버렸습니다. 새걸 사야할 시기가 왔으니까요. 이게 이번 한주동안 제가 행한 가장 큰 포기입니다. 이주의 주제가 아니었으면 이런 식으로 떠올려 보지도 못했겠지요.

이번주 베스트는 이렇게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주에도 읽어주시길 바라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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