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별이 비가 되어

   별을 보면 설렌다. 가끔 유성이 떨어진다는 뉴스를 보면 새벽에라도 별똥별을 보러 찾아 가기도 했다. 얼마 전에도 새벽 3시에 페르세우스 우성을 보러 갔었다. 생전 처음 보는 커다란 유성이었다.   

   유성을 기다리며 벤치에 누워있는데 몇 년 전에 인도에 갔던 일이 생각났다. 라자흐스탄 지역에 한 마을을 들르게 되었다. 옛날 그 지역의 지주가 살던 집을 호텔로 바꾸어 영업을 하고 있었다. 워낙 오래된 성 같은 곳이라 아름답지만 음습한 곳이었다. 손님이라고는 우리 일행밖에 없어서 조용했다. 저녁을 멱은 후에 캠프화이어를 해 주었다.   

   불 가에 누워서 하늘을 쳐다 보았다. 밤이 되면 주변 수십 킬로 안에는 불빛이 없는 시골이었다. 주변이 어두워서 별이 더 또렷이 보였다. 평생 그렇게 별을 많이 본 적은 처음이었던 거 같다. 그날 밤 보았던 별이 몇 십 년 동안 보았던 걸 다 합친 거보다 더 많았다. 내 얼굴 위로 별이 쏟아질 거 같은 느낌, 딱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다 가끔 별똥별이 뾰로롱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어릴 적 만화에서 보던 요술 공주가 들고 다니던 별 모양 지팡이에서 나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다.   

   사막에 누우면 한 쪽 지평선에서 다른 지평선까지 반구의 형태로 온통 하늘이고, 그 하늘은 별로 꽉 차게 된단다. 그런 걸 바로 밀리언 스타라고 부른다. 밀리언 스타 한 번 보는 게 평생 소원이었다. 재작년 1월 이집트 여정에 하루는 사막 캠핑이 들어 있었다. 흰 소금 사막의 노을은 꿈 속 같았다. 하얀 사막에 노을이 반사되어 온 세상이 노란색과 주황색, 그러다 빨갛게 변했다. 모두들 탄성을 질렀다. 외계인들이 사는 다른 혹성에 불시착한 듯 신기하고 낯설었다.  

   그러나 사막 캠핑의 목적은 밤에 쏟아지는 별을 보는 것이다. 저녁이 되자 이집트 안내인들이 식사 준비를 해 주고 불을 피워 주었다. 해가 지고 달이 뜨자 세상이 파르스름하게 환해졌다. 밤에는 달빛 때문에 별이 잘 보이지 않아 밀리언 스타를 보려면 달이 기우는 새벽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계속된 여행의 피로에 감기는 눈을 억지로 부릅뜨고 잠이 들까 봐 주변을 일부러 걸어 다니기도 했다. 낮에 뜨거웠던 모래 사막은 달빛의 차가움으로 금방 싸늘해졌다. 가져온 패딩 잠바를 입고 목도리를 두르고 모닥불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달이 지기를 기다렸다.   

   새벽이 다가올수록 구름이 서서히 몰려들었다. 이러다 별이 잘 안 보이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새벽 2시가 넘어 언제나 별이 쏟아질까 노심초사 하늘만 바라보고 있을 때 갑자기 별 대신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설마 하고 계속 기다렸지만 빗줄기는 점점 더 굵어졌다. 30분쯤 지나자 바람과 함께 빗줄기는 더욱 세졌고 우리는 모두 텐트 안으로 피신을 해야 했다. 혼자 작은 텐트로 들어간 나는 폭풍 같은 비바람 소리에 불안과 공포로 잠이 싹 달아났다. 텐트를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는 실제보다 훨씬 더 크게 들렸다. 마치 천둥 소리 같았다. 작은 텐트가 바람에 날아가버릴까 머리 위에 텐트 프레임을 있는 힘껏 잡고 떨어야 했다. 축축한 추위는 침낭 안에 붙인 핫팩 두 개로는 어림도 없었다.   

‘아, 빨리 날이 밝았으면.’  

   혼자 기도하듯이 텐트를 붙잡고 앉아서 밤을 새웠다. 어슴프레 새벽이 오자 사람들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반가운 마음에 텐트 틈으로 내다 보니 아직도 비는 내리지만 이집트 안내인들이 빵과 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추위와 두려움에 떨던 밤이 지나가고 이른 아침 사막의 따뜻한 차 한잔은 어느 카페의 그것보다 감격스럽게 맛있었다.   

   아침이 되자 비는 그쳤고 나누어준 생수로 대강 양치질만 하고 사막을 떠났다. 이집트인들도 사하라 사막에 그렇게 비가 오는 것은 생전 처음 보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 많은 별들이 다 비가 되어 내렸나 보다. 밀리언 스타를 보려는 평생의 꿈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떠나는 지프차 안에서도 아쉬운 마음으로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그 별들이 어젯밤 모두 비가 되어 내렸나 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