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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처럼 살다 지다

벚꽃처럼 살다 지다  


  웰 빙(well-being)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많이 쓰인다. 그러면서 같이 생각해 볼 말은 웰 다잉(well-dying)이다. 말 그대로 하면 잘 죽는 것이다. 과연 어떻게 죽는 것이 잘 죽는 것일까? 사람이 자기의 죽음을 어떤 식으로든 선택 할 수 있을까? 죽는 시기, 죽음의 방식, 그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닐 게다. 신의 뜻일지도 모른다.   

  어떤 모임이나 종교 단체에서는 죽음을 체험해보는 교육을 하기도 한단다. 유언장을 미리 써보고 관에 들어가 누워 보기도 한다. 관속에 누워보는 것은 꽤나 충격적인 경험이어서 우는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 상상과 반성을 하게 되는 모양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인생의 소중함을 깨닫고, 주위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각오도 다진다고 한다.   

  그런 뉴스를 접하고 나도 상상을 해 본적이 있다. 나의 장례식에 누가 오면 좋을지.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나는 내 장례식에 온 친구들이나 친지들이 울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나라의 정서상 너무 기쁜 일은 아니지만 서럽고 애통한 일은 아니기를. 친구들에게도 미리 말했다. 내 장례식에선 울지 말라고. 한 평생 최선을 다해서 살았고, 후회도 없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주길.   

  사람의 죽음처럼 꽃도 꽃마다 시들어 떨어지는 모양이 다르다. 마를린 먼로나 제임스 딘의 죽음을 돌이켜보면 동백꽃이 떠오른다. 가장 예쁘고 싱싱할 때, 송이째 뚝 떨어져 버리는 동백꽃. 혹은 목련처럼 피었을 때는 신부의 웨딩 드레스처럼 순백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다가, 마지막엔 까맣게 시들고 말라서 떨어지는 죽음. 그렇게 살다가는 인생이 있으리라.   

  나는 벚꽃 같은 죽음이면 좋겠다. 최선을 다해서 수없이 많은 꽃을 피우고, 눈송이처럼 바람에 날리어 다 흩어져버리는. 찬란하게 살다가 아름답게 산화하는 벚꽃처럼 살다 간다면 후회도 없지 않을까?   

  웰 다잉이라는 것은 잘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살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현대 의학의 발달로 수명이 길어지고 백 살이 평균 수명이 될지도 모르는 세상에 살고 있다. 남은 몇 십 년을 나이 듦을 한탄하고 살기에는 너무 아까운 시간이다. 잘 죽기 위해서, 벚꽃처럼 아름다운 최후를 맞기 위해서 잘 살자.   

  나 스스로를 지나친 현실주의자라고 말한다. 지금 이순간이 너무 소중해서 지나간 과거에 매달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은 내가 살아온 날의 마지막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가장 첫 날이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내 남은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을 살고 있다. 그러니 나이 들어 못 한다는 말은 하지 말자. 늦어서 못 한다는 말은 하지 말자. 오늘이 가장 빠른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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