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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서 온 엽서

쿠바에서 온 엽서

     


 작년 한 달 동안 쿠바 여행을 했다. 쓰던 책을 마무리한다는 핑계로 잠수를 탄 것이었다. 쿠바는 인터넷은 물론 핸드폰 로밍도 되지 않았다.  디지털과 잠시 인연을 끊고 아날로그 시대로 돌아가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아바나 중심에 있는 제일 큰 호텔 비즈니스 센터를 찾아가야만 한 시간에 팔천 원 정도의 돈을 내고 인터넷을 쓸 수 있었다. 며칠에 한 번씩 그 곳에 들려 집에 별일이 없는지 확인하는 게 세상과 소통의 전부였다. 

 잠시라도 핸드폰이 손에 없으면 나는 불안했다. 모든 용건은 문자로 하고 종일 sns를 들여다보곤 했다. 그런 스마트폰 중독자가 아바나에 도착한 지 며칠이 지나자 오히려 편안해졌다. 핸드폰은 충실한 비서실장이지만 한편으로는 족쇄이기도 했던 것이다.  빈 손이 주는 불안이 차츰 홀가분한 기분으로 바뀌어 갔다.

 쿠바는 호텔보다 카사라고 불리는 민박집이 많다. 30불 정도면 아침 식사까지 포함된 깨끗한 방을 구할 수 있었다. 내가 투숙한 카사는 안쪽에 주인 식구가 사는 아늑한 집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줌마가 거실 창가에 놓인 식탁에 신선한 과일 주스와 빵과 계란을 놓고 갔다. 가끔 거실에서 주인집 딸이 보고 있던 만화영화를  함께 보기도 했다.

 아침을 먹고 나면 아바나 구도시를 돌아다니며 사람 구경도하고 길거리 어디서든 들리는 살사 리듬에 나를 맡겼다. 그도 지겨워지면 책도 보고, 글도 썼다. 고삐 풀린 말처럼 나는 집시 같은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성당을 구경하러 나갔다가 우체통을 발견했다. 몇 년 전 이집트에 갔을 때  엽서를 몇 장 사서 친구에게 보냈다. 선물대신 엽서를 받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별거 아니지만  요즘에 보기 드문 손으로 쓴 엽서는, 그것도 낯설고 먼 이국에서 몇 달을 걸려 배달된 것들은, 그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 감정은 우리 관계를 더 끈끈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아름다운 쿠바 풍경이 담긴 사진엽서를 샀다. 그러나 친구에게 쓰지 않았다. 나에게 썼다. 카사에서 십분 정도 걸어가는 성당 앞 광장. 그 곳 분수대에서 비둘기 먹이를 주며 뛰어 노는 아이들을 지나가면 구석에 우체국이 있었다. 

 며칠에 한 번씩 그 곳에 찾아가서 무게를 달고, 우표에 침을 발라서 붙였다.  우체국 밖 담벼락에 있는 사자 머리 모양의 우편함. 엽서를 부치려면 사자 입 속으로 손을 쑥 넣어야 했다. 그 때마다 <로마의 휴일>이 생각났다. 정말 팔이 잘릴까 놀라는 얼굴. <로마의 휴일>이 아닌 <쿠바의 휴일>속에서 나도 잠시 오드리 헵번이 되곤 했다. 

 통신 시설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고 한국과 수교도 되어 있지 않은 나라. 그 엽서들이 언제쯤 도착할지는 모를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국제 미아가 되어 영영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분실되지 않으면 다행인 듯싶었다. 그래서 사자 입에 먹이를 주듯 밀어 넣을 때마다 행운의 키스를 덧붙여 보냈다.

‘무사히 들어가기만 해다오’

 엽서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은 마치 내가 현지인이 된 듯 했다. 우편함의 여운과  유럽풍의 옛 건축들, 수십 년씩 된 앤틱 자동차들이 다니는 거리는  60년대 영화 속으로 나를 되돌아가게 해주었다. 

카사로 돌아오며 길가의 카페를 기웃거리다 유명한 초콜릿 카페에서 시원한 아이스 초콜릿을 마시며 창밖으로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으면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았다. 아니, 조금은 외로웠다.

한 달간 쿠바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내가 보낸 엽서들은 집으로 오지 않았다.  한 달 동안 공백은 나를 정신없게 만들었다. 그 동안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고, 미뤘던 일도 처리하고. 어느 새 핸드폰은 수갑처럼 내 손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여행의 흥분도 가라앉고 그렇게 일상에 젖어갈 무렵 첫 번째 엽서가 도착했다. 


감사하자. 지금 내가 여기 있는 것에.

아바나에 오길 잘했다.

사람들은 순박하고, 

풍경은 칼라풀하고, 

언제 어디서나 음악이 들리는 곳.


 흘려 썼지만 낯익은 내 글씨에 뭉클했다. 길을 잃지 않고 수천 마일이나 되는 그 넓은 태평양을 건너 나의 집을 잘 찾아와줘서 고마웠다. 게다가 차츰 희미해지려는 쿠바를 되살려주어 더 고마웠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서 몇 달만에 내 품으로 돌아온 엽서. 그 속에 쿠바 풍경도 카사의 식구들도 있고, 살사 리듬도 들리고, 모히또의 진한 민트 향기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마지막 엽서는 첫 번째 엽서를 받은 후 한 달하고도 보름 뒤에 도착했다.

 그 엽서들을 벽에 붙여놓았다. 엽서를 볼 때마다 나는 또 다른 여행을 꿈꾼다. 이번엔 영영 다시 돌아오지 않을 듯이 그렇게 멀고 먼 낯선 나라로 떠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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