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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호수에  내려놓다

하늘 호수에  내려놓다    


 2009년 6월 하던 일을 모두  그만두었다. 갤러리 10년, 주얼리 디자인 20년.  그동안 한 번도 일을 안 하고 살아본 적이 없었다. 제일 먼저 걱정되는 게 매일 어디 가서 누구랑 점심을 먹나 하는 거였다. 혼자도 잘 지내는 성격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점심을 매일 혼자 먹는 것은 우울할 것 같았다. 전업 주부로 있는 몇몇 친구들은 매일 만나 점심 먹고 수다 떨고 재미있게 지내는 듯 보였지만,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수명은 자꾸 길어지는데 인생을 다시 정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주변에 코칭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상담 실습을 해야 한다 길래 나부터  코칭해보라고 자청했다. 두어 번 만나 상담을 하고 그가 내린 결론은 일단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그냥 쉬라는 것이었다.   

 그래 몇 달은 쉬어도 괜찮겠지. 사람들한테 일 년 동안 안식년을 갖겠다고 선언하고 놀기 시작했다. 그런데 성격상 노는 것도 열심히 놀아야 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시간이 아깝다는 강박 증상이 있었던 것 같다. 계속 머리 속에선 무얼 하며 살아야 하는지 고민이었다. 쉼 없이 살아온 탓일까. 머리를 비우는 것은 내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그러다 인터넷에서 티베트 여행 광고가 눈에 띄었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과 순박한 사람들, 하늘과 가까운 곳. 인생을 고민하기에 적당한 곳인 것 같았다. 무턱대고 신청을 했다.   

 작은 카메라 하나 달랑 챙겨서 낯선 사람들 틈에 끼어 티베트로 향했다. 비행기로 중국 시안을 거쳐서 티베트의 수도 라싸에 도착했다. 해발 3650미터. 출발하기 전부터 고산증에 대비하라는 여행사의 주의가 있었지만 처음엔 느끼지 못했다. 작은 공항 앞마당 같은 곳에서 버스에 올랐다. 의사와 간호사가 함께 탔다. 의사를 보니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버스 안에는 작은 산소통과 물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버스는 공항을 출발해서 라싸 시내로 달리기 시작했다. 한 20분쯤 지나자 멀미가 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하나 둘 안색이 안 좋아지고 의자에 눕기도 했다.   

 트래킹을 할 때는 천천히 걸어 올라가기 때문에 3천 미터 이상 올라가도 고산증세가 그리 심하지 않은데 우리는 비행기로 날라 라싸에 뚝 떨어졌으니 증상이 더 심했다. 등산도 인생과 같은 모양이다. 한 걸음씩 노력을 해서 얻는 것이 내 것이 되나 보다. 갑자기 얻은 행운은 부작용이 생기는 것처럼.   

 호텔에 가기 전에 라싸에서 가장 크고 유명하다는 조캉 사원에 들렸다. 설명을 조금 듣고 각자 사원과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산증이 심해졌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속이 메슥거리는 게 점차 심해졌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사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사원 광장에서  패스트푸드 점을 찾아 들어갔다. 시원한 콜라를  하나시켜서 자리를 잡았다. 내 컨디션을 스스로 조절해야 할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시들해졌다. 우리는 서둘러 호텔에 들어갔다. 저녁도 먹기 힘들었다. 나도 속이 안 좋아 야채만 좀 먹을 수 있었고, 아예 방에 누워서 못 나오는 사람도 몇 있었다. 저녁 먹고 방에서 좀 쉬다 보니 나는 조금 나아졌다. 그런데 옆 방에는 의사가 들락거렸다. 고산증세가 심하면 호텔 의료진이 와서 링거 주사를 놔주는 것이었다. 주사를 맞으면 그 다음날은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 그런 줄 모르고 참고 있던 어떤 분은 증상이 심해져서 일어나지 못했고, 다음 날 사람들 관광 나갈 때 안타깝게 혼자 호텔을 지켜야 했다. 조금씩 고산증에 적응이 되긴 했지만 천천히 움직이고 항상 조심을 해야 했다. 높은 곳에 올라갈 때는 당나귀 같은 조그만 말을 타야만 했다.  

 티베트에 도착한지 닷새  째쯤 내가 기다리던 ‘남쵸’에 도착했다. ‘남’은 티베트어로 하늘이고 ‘쵸’는 호수다. 이름하여 ‘하늘호수’.  오래전에 읽었던 류 시화 시인의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이란 책이 떠올라 더욱 기대가 되었다. 버스를 내려서 조랑말을 타고 호숫가에 도착했다.   

 호수가 아니라 바다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는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해발 4700미터,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호수. 고개를 들면 내 머리 바로 위에 하늘을 이고 있는 것 같았다. 멀리 수평선이 하늘과 함께 있었다. 호수가 하늘이고, 하늘이 호수였다.   

 다른 사람들은 전경을 보겠다고 호수 옆 동산에 올라가기도 하고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호수를 천천히 돌아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았다. 물가에 쭈그리고 앉았다. 물 속을  들여다보았다. 거울처럼 맑은 물 속에 내가 보였다. 일을  그만두고 쌓였던 서러움도 아쉬움도 보였다. 모두 욕심이었다. 모자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호숫가 자갈밭에 누웠다. 내가  그곳에 간 이유와 살아야 할 이유에 대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하늘 호수가 내가 티베트에 간 이유였다.   

 호숫가에 한참을 멍하고 하늘 한번 보고 호수 한번 보고. 여행에서 해답을 찾은 게 아니라 비웠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머리도 비우고 마음도 비우고. 남쵸 호숫물처럼 깨끗하게. 세상이 내 마음에 비춰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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