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척하지 말자

척하지 말자  


  잘난 척, 아는 척, 있는 척. 소개팅을 나갔던 여자들에게 가장 꼴불견인 남자스타일을 꼽으라면 1위가 잘난 척하는 사람이란다. 친구간에도 주는 거 없이 미운 사람들 꼭 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아는 척하거나 있는 척하는 애들이다. 얄팍한 지식으로 다 아는 양 우기는 사람도 꼭 있다.  

  나는 척하는 거 안 하려고 노력하지만 말투가 딱딱해서 오해도 많이 받는다. 잘난 척 안 했는데도 건방져 보이기도 하고. 어렸을 때 외모에서부터 사람들이 가지는 편견으로 상처를 많이 받다 보니 고등학교 때부터는 담담하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한가지 척하는 것이 있다. 괜찮은 척. 힘들어도 안 힘든 척, 외로워도 괜찮은 척.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그렇게 씩씩하게 살려고 애를 썼다. 왜 그랬을까? 어줍잖은 자존심이었을까?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었는데 남들 보기엔 내 속이 어떤지, 내 맘이 어떤지 표시가 잘 나는 모양이다. 어떤 사람은 얼굴에 집안일이 다 보이기도 하는데. 회사에 출근해서도 아침에 부부싸움을 했는지, 은행 잔고가 비어가는지 얼굴에 씌어 있다.   

  어떤 이는 외로움은 타의에 의한 것이고, 고독은 자의적이라고 말한다. 나는 외롭고 싶지 않아서 고독을 선택했나 보다. 고등학교 때는 다른 애들은 공부해야 하니까 혼자 책보고 음악 듣고, 영화도 혼자 보려 다녔다. 결혼 후에도 일만 아는 남편이 바빠도 나도 일한답시고 그냥 내 감정 같은 거 무시하고 살았다. 일부러 외로움이라는 생각을 안 하려고 더 바쁘게 살았나 싶다. 무엇이든 혼자 하는 거에 매우 익숙해졌다.   

  내가 힘들어도 위로해 줄 사람도 없고, 징징거리느라 시간을 낭비하면 그 만큼 내 인생만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항상 괜찮은 척, 씩씩한 척, 그렇게. 그렇게 살았다.  

  한 친구랑 우연히 술을 마시다가 옛날 얘기, 집안 얘기를 하게 되었고, 그 누나가 죽은 사연을 듣고 내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게 되었다. 그 3년 전쯤, 지금부터는 5년 전 자살한 동생. 그랬더니 그 친구는 너무 놀라며 물었다  

“3년 전이면 그 때도 우리가 계속 만나지 않았나?”  

“그랬겠지? 한 달에 두세 번쯤은 만났으려나?”  

“그런데 나는 왜 몰랐을까?”  

“내가 말 안 했으니까 당연 몰랐지. 다른 친구들도 몰라”  

그러자 그 친구는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너 정말 독하다. 말 안 해도 그렇게 큰 일이 있으면 얼굴에 나타났을 텐데 표시도 안났단말이야?”  

  심지어 식구가 없어서 혼자서 장례를 다 치르고, 그 다음날 갤러리 개관기념전시 오프닝이라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수십 명의 손님 접대를 해야 했다. 웃으며 인사를 하고 전시 설명을 하고 작품을 팔고. 오히려 정신 없이 바빠서 슬프다거나 힘들다고 생각 할 겨를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감정 표현 안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려고 발버둥 쳤나 보다. 그러나 문제는 참고 참았던 감정들이 그냥 순화되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내 속에 어딘가 꽁꽁 쌓여서 언젠가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봇물처럼 터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괜찮은 척 안 하고 슬프면 펑펑 울고, 힘들면 옆 사람한테 기대고. 속에 쌓여서 썩는 것 없이 다 풀어가며 살고 싶다. 그런데 남 얘기 들어주고 상담하는 게 직업인데, 내 얘기는 누가 들어줄까?

작가의 이전글 하늘 호수에 내려놓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