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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프로젝트

텍사스 프로젝트

                                                                        

  미아리 텍사스, 90년대까지 청량리와 함께 집창촌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영화에서 본 적은 있었지만 가 볼 수는 없던 그곳에서 전시회를 연다는 것이었다. 이름하여, ‘텍사스 프로젝트’. 좀 의외였다.

  친구와 함께 지하철 길음역에서 내렸다. 10번 출구로 나와 쭉 걸어가다가 첫 번째 4거리에서 우회전. 계속 5백 미터쯤 전진한 후 소머리 국밥집이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차 한 대도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길. 두리번거리는데, ‘천신암’이란 점집 간판이 보였다. 거기서 좌회전. 그리고 마주치는 교회에서 우회전. 그러자 평범한 여염집 같은 2층집이 나왔다. 미로를 통과하는 시험을 치른 것 같았다. 기분이 묘했다.

  대문에는 <19개의 방>이란 전시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사진작가 19명이 23개의 방 가운데 19개의 방을 빌려 전시회를 한다는 것이었다. 몇 년 뒤 개발을 기다리는 그 집은 전기도 수도도 다 끊긴 상태였다. 대문을 들어서자 시멘트벽이 완고하게 앞을 가로 막았다. 잠시 주춤했다.

  아래층 길 가 쪽은 통유리로 되어 있었다. 진열장이라고나 할까. 그 안에 여인들이 앉아서 손님을 기다렸으리라. 쇼윈도 안에 진열된 상품처럼.

삐꺽거리는 나무계단을 올라갔다. 작은 방들이 나왔다. 창문이 있어 그나마 빛이 들어오는 방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창도 없는 방이었다. 배의 어두운 선실처럼 답답했다. 게다가 방은 1인용 매트리스조차 들어가기 어려울 만큼 좁았다. 두꺼운 벽면, 감옥의 독방도 그보다 좁지는 않을 듯싶었다. 벽지는 뜯겨져 있었고 속살이 들어난 벽은 거멓게 곰팡이로 얼룩져 있었다. 그들의 삶의 흔적을 보는 것 같았다.

  함께 간 친구들도 말이 없었다. 멍한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데, 한 작가가 와서 우릴 안내했다. 전기가 없어 어떤 방은 랜턴을 켰고 또 어떤 방은 촛불이 작품을 희미하게 미추고 있었다. 엉뚱하게 거기에 빨간 의자가 하나 있었다. 앉아 보았다. 공포 영화 속에 들어온 것처럼 오싹했다. 벽에는 여학생들의 흑백 사진이 액자도 없이 무질서하게 붙어 있었다. 약간 불량끼가 있는 여고생들의 모습이 그곳 주인공들의 지난날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여러 전시실 가운데 인상적인 방이 하나 있었다. 바닥에는 백여 개의 노란 종이배가 떠 있고, 벽에는 서울 시청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하얀 바탕에 노란 리본과 함께 “미안합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세월호 분향소 사진이었다. 그리고 그 위 창문에는 푸른 달이 있는 야경 사진이 걸려 있었다. 거기서 나온 빛이 방안을 푸른 살기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니, 깊은 바다 속을 연상시키고 있었다. 

  바닥에 전시된 종이배에 넋을 빼앗기고 한 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 문득 세월호에 갇혀 아우성을 치고 있는 어린 학생들의 울부짖는 모습 위에 그 방에 갇힌 채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다 꺼져갔을 어린 여자들의 안타까운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사방 시멘트 벽에 갇혀서 하루하루를 지옥처럼 살다갔을 여자들. 그들도 누구의 소중한 딸이고 누구의 소중한 누나이고 동생이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엄습해왔다. 목이 아팠다. 쉽게 돈을 번다는 유혹에 스스로 들어온 사람들도 없진 않았겠지만 그런 사람이 몇이었겠는가. 가족을 위해서 들어온 사람도 있었고, 인신매매로 잡혀온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가난에 의해 폭력에 의해 또는 무관심과 부주의에 의해 인간은 앞으로 또 얼마나 불행해져한단 말인가? 그리고 인간의 욕망의 끝은, 그 바닥은 어디쯤일까? 마음이 착잡했다.

  처음에는 텍사스 프로젝트에 난데없는 세월호 사건을 접목시킨 작가의 의도가 좀  엉뚱하다 싶었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하니 작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사건은 시대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별개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원인은 분명 하나였던 것이다. 어른들의 과욕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말이다. 세월호 선장을 비롯한 당사들의 무책임에 분노하고 포주들의 포악에 분노하면서 우리는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나올 때는 들어가던 길과는 다른 길을 택했다. 사창가를 가로지르는 지름길을 보기로 한 것이다. 사건 현장을 목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영업 중인 미아리 텍사스 골목. 거기서 포주들의 표정을 봐 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입구에는 ‘청소년 출입금지’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낮이라 문이 닫힌 집이 많았지만 문틈으로 그들의 궁색한 살림살이들이 삐죽이 내다보고 있었다. 길가에 의자를 놓고 나와 앉은 포주임에 틀림없는 아줌마들. 나는 살벌한 얼굴을 기대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들도 우리 이웃집 아줌마들처럼 평범한 여인들이었다. 소문으로 또는 영화로 보아왔던 포주는 거기 없었다. 밤의 얼굴과 낮의 얼굴이 다른 것일까?  아니면 살기 위한 최후의 선택이었단 말인가? 품위 있는 삶과 정의로운 삶은 모든 인간이 원하는 바다. 그곳 여인네들도 그걸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살다보니 삶의 막장까지 떠밀려 왔을 뿐이리라. 전에 가졌던 생각과 그때 보고 있는 현실 사이에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선과 악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나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그 혼란으로부터 빨리 도망치고 싶었다. 누가 붙잡는 것도 아닌데 목을 움츠리고 긴 터널을 빠져 나오듯 골목을 벗어났다. 

  미아리 텍사스는 우리 집에서 불과 30분 거리에 있었다. 그러나 그곳까지 내가 가는 데는 몇 십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그리고 거기서 모순투성인 인간을 보았다. 가깝고도 먼 길. 인생이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아이러니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한 동안 가슴이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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