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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자물쇠

사랑의 자물쇠


  지난여름 잘츠부르크에 다녀왔다. 그곳에 자물쇠가 가득 달린 다리가 있었다. 그 다리는 난간이 철망으로 되어 있어서 처음부터 자물쇠를 달 수 있게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다. 아직 빈자리가 많은 것으로 보아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았다. 주변 기념품 상점에서 작고 빨간 색 자물쇠를 팔고 있었다. 주로 관광객들을 위한 것 같았다. 혼자 자물쇠를 하나 채우고 열쇠를 간직했다가 다음에 가면 찾아서 열어볼까 망설이다가 그만 두었다. 영원한 사랑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기를 기원하며. 녹슬어 버릴 자물쇠대신 마음의 자물쇠만 달아놓았다.

 사랑의 자물쇠는 이탈리아 소설 <오 볼리아 디떼>에서 유래 되었다. 두 연인이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자물쇠를 로마 북쪽 폰테 밀비오 다리에 걸고 열쇠는 강에 던져 사랑을 맹세한 것이었다. 그 이전 단테가 사랑하는 여인 베아트리체를 위해서 피렌체 다리 위에 자물쇠를 채우고 열쇠를 아르노강에 던졌다는 전설도 있다. 영원한 사랑을 위한 아름다운 약속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세계 곳곳에서 녹슨 자물쇠들이 흉물이 되어가고 있다.

  먼 나라의 일만이 아니다. 서울 남산 타워 앞에도 사랑의 자물쇠가 늘어가고 있다. 언젠가 남산 한 구석도 무너지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나도 남산에 자물쇠를 달아볼까하다가 포기한 적이 있었다. 만약 자물쇠를 채웠으면 아마 그 열쇠는 가지고 왔을 것이다. 서랍 속에 잘 두었다가 그 사람과 헤어지면 찾아서 풀어 버릴 수 있게 말이다.

  사랑하고 있는 연인들은 지금의 사랑이 영원하길 바랄 것이다. 그러나 서로의 마음을 믿지 못하니까 자물쇠를 채우는 것이 아닐까?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기에 자물쇠라도 채우고 열쇠를 강에 버리는 의식으로 서로 다짐을 하는 것이다.

   <봄날>이라는 영화 대사 한 구절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남자 주인공이 돌아서는 여자한테 절규하듯 외친다. 사랑이라는 추상적 개념은 영원할지 모른다. 변하는 것은 사람이다. 사랑은 안 변해도 그가 변하고, 내가 변한다. 그의 마음이 변했는데도 붙잡으려 하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 되는 게 아닐까. 작은 쇠붙이에 의지하지 말고 내 마음에 충실하고 싶다. 

   얼마 전 들은 얘기가 생각났다. 

“파리 세느강 퐁데자르 다리가 무너졌다.”

 6년 동안 연인들이 매달아놓은 자물쇠가 10톤이 넘어 다리 난간 일부가 무너진 것이었다. 그 숫자가 70만개가 넘는다고 했다. 그 다리에 자물쇠를 채운 70만 쌍의 연인들 중 몇 쌍이나 아직 사랑 하고 있을까? 자물쇠가 순식간에 강물 속으로 수장되어 버렸으니 그들의 사랑도 익사하고 만 것은 아닐까.

  나는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영원한 것이 없다고 미리 미음에 자물쇠를 단단히 잠가 놓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은 지나가려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방패를 들고 있는 것일까. 사랑도 사람도 때가 되면 자유롭게 놓아주고 싶다.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은 나에게 자물쇠는 답답하기만 하다. 사랑의 자물쇠가 아름답기보단 속박으로 보인다. 

  그러나 잘츠부르크에 달아놓은 마음의 자물쇠는 녹슬지 않고 내가 돌아갈 때까지 반짝이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랑의 구속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소박한 기원일 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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