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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콤플렉스


  오빠는 항상 전교 일등이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반장이나 전교 회장을 도맡아 했다. 엄마에게 늘 자랑스런 장남이었다. 나는 그에 비해 제대로 하는 것 없는 아이였다.  

  엄마는 오빠를 서울대에 보내기 위해 백일 기도를 드리러 절에 다니셨다. 그러나 내가 고3이 되었을 때는 엄마는 절 대신 미국에 있던 남동생을 보러 가셨다. 그래서 나 혼자 여름 방학 내내 집을 봐야 했다.   

  엄마는 늘 오빠와 나를 비교했다. 전교 일등은 아니라도 반에서 일등은 했었지만, 엄마는 나를‘아무것도 잘 하는 것 없는 애’라고 생각하셨다. 한번도 칭찬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엄마에게 인정을 못 받아서인지 학교에서 나는 말도 없고,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존재였다. 고등학교 때도 특별히 말썽을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공부보다는 소설책을 읽거나 혼자 영화를 보러 다니곤 했다.  

   대학교에선 연합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중학교부터 여학교만 다녀서였을까 알 수가 없었는데, 남자 친구들에게 좀 까칠하게 구는 나를 발견했다. 게다가 남자들에게 지는 걸 못 참았다. 동아리 친구들과 놀이 공원을 가면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위험한 놀이기구들을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일부러 태연하게 타곤 했다. 일학년 때는 약해 보이기 싫어서 남자 선배들이 주는 술 다 받아 마시고 화장실 가서 토하곤 했다.물론 돌아와선 멀쩡한 척 했다.   

  그 때는 몰랐다. 내가 남자들에게 콤플렉스가 있다는 것을. 그래서 더욱 이기려 한다는 것을. 나이 들고 철이 들면서 알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아들이 아니라서 당한 서러움을 밖에서 남자들에게 푼다는 것을. 그걸 깨닫고 나니 오히려 내 까칠한 성격이 좀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나의 콤플렉스를 인정해서 일까?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 그냥 남자가 좋아진 걸까? 남자 친구들은 요즘 친절하게 자기들을 챙겨주는 나를 보면 신기해 하며 말한다.   

“지우가 왜 저렇게 변했지? 원 지우 맞아?”   

  하지만 아직도 못 참는 것은 있다. 아들과 딸을 차별해서 키우는 사람들을 보면 소리를 지른다. 서러운 딸들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모양이다. 아들은 어려운 살림에도 유학까지 보내면서 딸은 여자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뭐 있냐고 말하는 사람들 보면 갑자기 흥분한다. 아들 딸이 문제가 아니라 본인이 원하는 걸 해줘야 한다고. 나에게는 아들 하나만 있다. 다행이다. 딸도 있었으면 내가 받은 설움을 보상하려 딸에게만 더 신경을 썼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엄마는 팔십을 훌쩍 넘으셨고 아들이 환갑을 향해가지만 여전히 아들 걱정이 일과다. 딸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하는 것 같다. 간혹 나한테 전화해서 오빠 안부를 묻기도 한다. 내가 잘 모르겠다고 하면 하나밖에 없는 오빠를 안 챙긴다고 불벼락이 떨어진다. 나는 필요할 때만 찾으신다. 그런 무관심이 한편 고맙기도 하다. 그런 무관심 덕분에 나의 독립심은 확고하게 다져졌으니까. 어려서부터 혼자서도 잘 놀고, 결혼해서 남편이 바빠 신경 안 써도 괜찮은 척 하고 잘 놀았다.  

  지나친 엄마의 사랑 탓인지 오빠는 몸도 마음도 약한 편이고 어른이 되어 사업하는데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걸 보면서 나는 아들에게 독립심을 키워주려고 애썼다. 유치원 때부터 밥도 혼자 먹고 목욕도 스스로 하고. 옷을 갈아 입으면 벗은 옷은 빨래통에 갖다 넣도록 했다. 숙제를 못 하거나 준비물을 안 챙겨도 도와주지 않았다. 자기가 못한 것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보고 친정엄마는 독하다고 야단을 쳤다.   

  아들이 미국서 다니던 대학교를 그만두고 전공을 바꿔 한국 대학교로 다시 편입을 하겠다고 했을 때도 그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 남편은 아들이 하던 공부를 그만두고 한번도 해본 적 없는 디자인을 하겠다고 하자 남자애가 갑자기 무슨 디자인이냐며 무척 반대를 했다. 그러나 나는 남들 보기에 폼나는 일보다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결국 본인이 원하는 대로 디자인과로 편입을 했고 7년 동안 대학을 다녔다. 지금도 자기 진로를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에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같다. 힘들어도 부모 탓을 할 수는 없으니까.  

  아들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남자 콤플렉스도 이젠 졸업할 나이가 된 것 같다. 이유 없이 쌀쌀맞고 까칠하게 구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나이가 된 것 이다. 부드러운 여자가 되어야겠다. 아니, 나의 희망 사항대로 편안하고 넉넉한 여인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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