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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같은 꿈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어릴 때는 누구나 꿈이 있었다. 

어떤 아이는 경찰관이나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했다. 세상은 바뀌고 요즘은 연예인이나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한다. 

  나는 어릴 때 꿈이 무엇이었는지 잘 생각나지 않지만 어느 날 자선 콘서트에서 젊은 성악가와 머리가 희끗한 교수가 함께 노래하는 것을 보았다. 젊은 테너가 실력도 있고 성량도 좋았는데 이상하게 힘없는 교수가 훨씬 멋있어 보였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나이든 성악가의 자신감에서 나오는 여유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해서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되자.’

   2002년 월드컵 때도 여기저기서 많이 보았던 표어도 생각난다.

‘꿈은 이루어진다.’

나도 그렇게 강의 한다. 구체적으로 꿈을 그리고 간절하게 원하고 노력하면 이루어진다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힘을 주어 말한다.

“이룰 수 없는 게 아니라 이루어지라고 있는 것이 꿈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이 꿈을 못 이룰까봐 걱정이 아니라 너무 작은 꿈을 이루고 그 것에 안주하는 것이 더 문제라고 했다. 

‘꿈에 사이즈가 있었나?’ 

‘너무 작으면 꿈이 아닌가?’ 

‘쉽게 이루어지는 꿈은 꿈이라고 할 수 없을까?‘

새삼스럽게 엉뚱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노력해서 금방 이루어지는 것은 꿈이 아니라 그저 작은 소망일지도 모른다. 저 하늘의 별은 우리 손이 닿을 수 없어서 아름다운 것처럼, 이룰 수 없는 것이 더 아름다운지도 모르겠다. 꿈도 사랑도. 나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처음에 내가 작가가 되려고 할 때는 돈키호테의 꿈과 같은 것 이었다. 책 읽기를 좋아해서 언제부턴가 읽기만 하지 말고 나도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작가들은 나와는 다른 세상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나는 이제 작가를 꿈꾼다. 

  나는 동화 속 돈키호테를 엉뚱하고 이상한 기사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세르반테스 원작의 돈키호테는 이상향을 꿈꾸는 진정한 영웅이다. 그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을 했다. 세상의 정의를 위해 길을 떠났다. 기사라는 것이 이미 없어져버린 시대에 진정한 기사가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람들은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무모한 늙은이 돈키호테를 조롱하고 손가락질 했다. 그 때, 그의 시종 산쵸가 말했다. 당신들은 그를 미쳤다고 하지만 그러는 당신들은 정의를 위해 세상에 대고 목청 높여 소리쳐 본적이 있냐고.

  돈키호테가 사랑한 둘시네아는 하찮은 존재였지만 그녀에게도 진심을 다했다.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지만 결국 그녀를 감동시켰다. 요즘은 조건이 맞아야 사랑하고 결혼도 한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름답기보다는 세속적이고 계산적인 것이다. 나 역시 돈키호테가 무모하다고 생각 했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이해가 되어간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무모하게 보일지라도 내가 스스로 작가라고 말하기 부끄럽지 않을 때까지 해보려고 한다. 앞으로 십 년 이상 걸릴지도 모른다. 그 사이에 책을 몇 권 더 낼 수도 있겠지만 책을 냈다고 작가라고 할 수 있을까? 조금 돌아가더라도 돈키호테처럼 열심히 사랑하고 부딪쳐 보고 싶다. 그런 경험과 성찰을 묵히고 삭혀서 진정한 글을 쓰고 싶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요즘 사람들이 내년 계획을 물을 때마다 고민 하게 된다. 회사에서 성과를 내듯이 해마다 거창한 목표를 세워야하나. 내가 원하는 꿈을 위해 묵묵히 가면 안 될까. 

'나는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남들에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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