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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세처럼 돌아오다’

여행의 의미

여행의 의미 ; ‘까세처럼 돌아오다’    

 여행은 나에게 막연히 ‘떠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여행 중에 나에게 엽서를 보내기 시작했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한참을 기다려야 내가 보낸 엽서가 나에게 돌아왔다. 그 나라의 우체국 소인과 함께. 까세cachet란 불어로 우체국 소인을 말한다.

 쿠바에서 보낸 엽서는 내가 돌아오고도 한 달이나 지난 후에야 다시 나를 찾아 왔다. 쿠바의 향기를 담고서. 여행지에서 온 엽서를 받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여행의 의미가 떠나는 데 있는 것만이 아니라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오는 데 의미를 둘 수도 있겠구나.’라고. 

 여행 사진을 정리하며 그림을 그리다보니 그 생각이 더욱 선명해졌다. 어딘가로 떠나는 것에 설레어 여행을 계획하지만 그것은 결국 내 삶으로 잘 돌아오기 위해서라는 것을.

 사람들은 인생을 여행이라고도 한다. 흔히 인생을 여행에 비유한다. 힘들고 고단한 인생길을 조금 쉬어가는 것이 여행이고, 새로운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 또한 여행이다. 여행을 통해서 세상도 배우고 인생도 배운다. 

 여행을 좋아하긴 했지만 현실적으로 가고 싶다고 다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정도 있고 직장도 있으니 시간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떠나기가 쉽지 않다. 나도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혼자 여행을 가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사람마다 사정이 다르니 같이 갈 사람도 마땅치 않았다. 선뜻 혼자 가기 어려운 곳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단체 여행을 따라 가기도 했다. 

 오래전 이집트도 그랬다. 사진작가와 함께하는 여행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어서 일정이 그리 빡빡하진 않았다. 사진작가들에게는 여행지에서 한 시간 정도 각자 사진을 찍을 여유를 주기 때문에 나는 그동안 충분히 구경을 다닐 수 있었다. 혼자 신청을 했으니 혼자 방을 쓸 수 있었고, 아는 사람이 없으니 신경 쓸 사람도 없어서 좋았다. 

 그중에는 나보다 젊은 사람도 있었지만 나이가 드신 분들도 있었다. 대부분 부부동반으로 오신 분들이었다. 그들은 혼자 온 내가 이상한 모양이었다. ‘40대 중반을 훨씬 넘은 가정주부가 어떻게 혼자 여행을 다닐까’하는 곱지 않은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궁금증을 못 참고 물어오기도 했다. 

 “젊은 엄마가 애는 어쩌고 왔어?”

“애는 다 커서 미국에 잘 있어요.”

나중엔 남편 없이 혼자 다니는 나를 부러워하였다. 한 분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남편 수발 안 하고 편하겠다. 혼자 여행하니 생각 할 시간도 많지?”

 “생각하지 않으려고 여행하는데 생각을 왜 해요?”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나는 생각을 하려고 여행을 간 것이 아니었다. 서울에서의 골치 아픈 일들, 스트레스 받는 일들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간 것이었다. 그때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왜 여행을 하지? 생각하기 위해 여행을 하나?’

나는 생각을 비우려 여행을 한다. 쓸데없는 생각을 비우고 새로운 에너지로 채우기 위해. 

 생각을 하려고 떠난 여행도 있었다. 2010년 티베트가 그랬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생각해야만 했다. 티베트가 그런 고민을 하기에 어울리는 장소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티베트 여행 중 나는 고민하지 않고도 답을 얻었다. 바로 욕심도 마음도 내려놓는 것이었다. 

 나는 책을 통해서 자라고 성장하는 법을 배웠고 여행을 통해서 비우는 법을 배웠다. 백세 시대라 할 만큼 수명이 길어졌다. 잘 나이 들기 위해서 더 가볍게 살려고 한다. 나의 노년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몸과 마음은 가볍게 하고 정신과 지적 능력은 더 계발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소유는 줄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해야 한다. 물질적 가치보단 경험이나 관계에 더 가치를 두려고 노력하고 있다.  

 떠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 여행이었다. 소중한 나의 삶으로 잘 돌아오기 위해서 오늘도 나는 새로운 여행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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